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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빙허, 이육사

fabiano 2 3240  
동트기 직전의 어둠이 짙듯, 우리의 이름난 항일문인들이 광복을 목전에 두고 일제의 엄혹한 압제에 희생이 되어
잇달아 ‘순절’했다.
해방 두 해 전인 1943년 4월25일 시인 이상화, 소설가 현진건이 각각 42세와 43세를 일기로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병사했고, 12월 8일에는 한글학자 이윤제(李允帝)가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4년 1월16일에는 시인 이육사가 갓 마흔 살에 역시 북경감옥에서 옥사하고, 6월 29일에는 승려시인
한용운(韓龍雲)이 영양실조로 열반에 든다.

해방의 턱 밑인 45년 2월 16일에는 후꾸오까 형무소에 사상범 혐의로 갇혀 있던 시인 윤동주(尹東柱)가 일제의
야만적인 약물실험에 희생되어 숨진다.

이들 중 이상화와 현진건은 대구태생이고, 이윤제는 경남 김해 출신이나 대구 계성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또 이육사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으나 기자시절의 청년기를 대구에서 보냈고, 대구에서 항일과 옥고도 치러,
대구사람이나 진배없었다.

그러므로 43년, 44년 두 해 사이에 한뫼 이윤제를 제외하고도 상화, 빙허(憑虛. 현진건), 육사 등 대구의 세 문인들이
일제의 직접 간접적인 탄압에 희생되어 불혹의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만 셈이었다.

이로 인해 넓게는 우리의 항일문학사에서, 좁게는 대구의 문학인물사에서 한 순간 항일정신의 맥이 꺾인 것처럼 비쳤다.
상화의 병은 위암이었고, 빙허의 사인은 폐와 장의 결핵이었다.

경위야 어쨌든 두 사람 다 대구의 계산동과 서울의 제기동 자신의 안방에서 가족들의 애도 속에 임종을 했으니,
이국 땅 북경의 감옥에서 외롭게 숨진 육사에 비해선 ‘와석종신(臥席終身)’했다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두 사람 역시 일제 하의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압제에 저항하며 자학하다 속 골병이 들어
요절한 것과 다름없었다.

‘술 권하는 사회’(빙허의 소설)에 견디다 못해 시름시름 죽어가던 육신이, 4월 25일에 이르러 마침내 종언을 고해,
둘이서 마치 ‘이중의 사망’(상화의 시)을 약속한 듯 같은 날에 가버렸던 것이다.

문학예술인들로선 짧은 생애보다 긴 예술이 보람일터라, 고종명(考終命)을 못 했다고 해서 애석해야할 필요는 없겠다.

비록 이승의 삶은 불우했다 쳐도, 운명의 타이밍만은 ‘오묘’했다고 하면 고인들을 섭섭하게 하는 해석일까.

2-3년 이상 더 생존해 해방을 맞았다고 치자. 감격도 잠시, 동강 난 나라와 상잔의 겨레를 보며 통절해하기 얼마였을까.

세 사람의 작품성향이나 교우관계로 보아 정지용이나 김기림 이태준처럼 문학가동맹에 들었다가 온갖 속앓이 끝에
어영부영 월북했을 개연성이 지극히 높다.

특히 육사는 아우인 평론가 이원조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했을 공산이 누구보다 크다.그랬더라면 이들의 문학적 위상은
반 세기동안 남쪽에서 매몰되었기 십상이다.

또 월북했다 쳐도, 김남천이나 지용, 상허(이태준), 여천(이원조)처럼 목숨은커녕 북한문학사에서마저 깡그리
지워지고 말았을 것이다.

상화와 빙허는 지금 북에서도 지극히 추앙받는 인물로 가름되고 있다.

남에서 숭앙받는 이순신이나 정다산이 북에서도 숭앙받는 것처럼 두 인물은 남과 북 양쪽에서 기림 받고 있는 현실이다.

비록 저항정신은 높았을망정 이들이 광복 후 남쪽에서 생존했더라면 북의 문학사는 언급조차 안했기 분명하다.
‘미제스파이’로 몰려 옥사한 이원조의 형이란 한 가지 이유 때문인지 육사의 업적은 한 줄도 쓰지 않는 북한의 문학사가
이를 반증한다.


자연인 이상화, 현진건, 이원록(육사)의 요절은 안타깝지만 문학인 상화, 빙허, 육사로선 ‘박수칠 때 떠난 것’처럼
되어버린 종신의 시점이야말로 험한 꼴을 보기 전에 타계한 그들을 위해서나 숭모하는 후대들을 위해서도 어쩌면
다행이었다 할까.

(매일신문  정영진의 대구이야기 2006.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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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의 李尙和(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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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李陸史)와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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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李陸史)와 친구들.


 

2 Comments
리버룸 2008.01.19 23:44  
이육사님이 앉은 분일까요...아버지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fabiano 2008.01.20 00:12  
육사선생이 안경을 썼으므로 앉아 있는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친의 모습과 같으시군요. 젊은 날, 미남이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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