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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부자는 사람을 남긴다

fabiano 0 1209  

“기업은 사람을 남기는 것”이란 말은 경기가 좋을 때 쓰는 입발림에 불과할 때가 있다. 정작 기업이 힘들면 품삯을 낮추거나 사람을 쫓아내는 구조조정이 자반뒤집기보다 손쉽게 이루어진다. 기업이란 게 사람을 모아 조직을 짜고, 일을 벌려 돈을 번다. 당연 사람에게 투자하고 사람을 남겨야 좋은 기업이다. 기업의 지속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 사람일터. 횡재한 돈으로 사람을 남겨 다시 이익을 얻은 정춘삼 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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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철종 때 일이다. 전주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곳에 가난한 마을이 있었다. 30여 호 남짓 되는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전주 아전* 장 이방의 빚을 지고 있어서 장 이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정춘삼은 나이 서른에 상처를 하고 어린 아이들만 데리고 사는 곤궁하기 짝이 없는 처지였다.


'에라, 씨름판 구경이나 가보자.'
7월 백중날을 앞두고 닭 서너 마리를 붙잡아 구럭망태에 옭아매고 읍내장에 나갔다. 닭을 다 팔고 돌아서려는데

“자, 이 잡백계** 표 한 장 사오. 이 표 한 장에 닷 냥을 내고 사서 내일 백중날에 와서 산통을 뽑으시오. 일등이 나오면 대번 2천 냥, 날이면 날마다 있는 게 아니요.”
하는 계원의 소리가 들렸다.

잡백계라면 7월 백중날에 흔히 유행하는 천인계라고도 하는데,  한 명이 닷 냥씩 천 명 즉 5천 냥을 모집해 산통 흔들기를 한다. 다시 말하면 추첨을 해서 당첨된 사람에게 1등엔 2천 냥, 2등엔 2백 냥, 3등은 2십 냥을 몇 사람이 나눠 타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계표를 자꾸 사라고 하니까 춘삼은 닭 판 돈 닷 냥을 내고 표 한 장을 샀다.
헛일 삼아 산 것이지만 다시 장엘 와서 추첨결과를 구경하게 되었는데

“1등 7통 25번 정춘삼이!”

2천 냥짜리 1등표가 춘삼이 앞으로 빠졌다는 발표가 아닌가. 2천 냥이라면 한 턱 내라고 덤비는 어중이떠중이들한테 뜯길 대로 뜯기고도 남은 돈으론 집도 사고 논밭도 사고 장가도 들 수 있는 큰 돈이었다. 이런 횡재가 생긴 춘삼이는 얼떨떨하기만 했다.

“인사합시다. 나 포교 아무개요.”
“축하하오. 난 부상(負商) 두목 아무개요.”

하고 결국 한턱 얻어먹자는 눈치로 덤벼드는 사람들 등살이 심하였다. 춘삼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날 탈 수 있는 곗돈을 그대로 둔 채 집으로 도망쳐왔다. 동네사람들에게는 곗돈 얘기는 기색도 하지 않은 채 하룻밤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이튿날 새벽엔 엉뚱하게 읍내 부자 장 이방을 찾아갔다.
“우리 동네 사람들 전부한테 영감이 받으실 채금(債金)이 얼마나 되는지 문서를 봐주십시오.”

“이 사람이 일이 없나? 그건 왜 물어.”
“아니올시다. 꼭 좀 계산해 주십시오.”
“......”
“제가 채무를 전부 갚겠습니다.”
“삼혼칠백(三魂七魄)이 다 녹아내렸나. 식전부터 무슨 헛소리인가. 자네가 대체 무얼로 그 많은 돈을 갚겠단 말인가.”
장 이방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핀잔까지 했다. 그러자 춘삼은 읍내 장에서 잡백계 돈 2천 냥을 타게 된 이야기를 해가며
“그 돈으로 제가 우리 동리 사람의 빚을 일단 청산해주고 나서요, 그 채권 문서를 제가 찾아다가 동네 사람들한테 두고두고 변리를 붙여서 받아먹겠습니다.”
여기에서 장 이방이 깨닫기를
‘이런 맹랑한 놈을 보게. 남의 빚을 갚아주고 제가 대신 채권자가 돼 떵떵거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한번 쳐보려는 미친놈이군.’
“그, 그러시게.”
하고 마지못한 척 승낙을 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서 받을 빚을 계산해보니
“자네까지 30호에 꼭 2천 2백 냥이네. 용하게 돈머리가 그러니 2백 냥을 감해줌세.”

“그렇습니까? 그럼 저하고 가서 잡백계 돈 2천 냥을 영감께서 직접 영수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동네 사람들한테서 받으실 빚 문서는 꼭 저를 주십시오.”
급기야 이 날 장 이방은 30여 호 한 동네에서 받을 빚을 모두 받아버렸고, 춘삼은 차용증서 한 뭉텅이를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난 동네사람들은
“쳇, 춘삼이! 자네가 빚쟁이가 되어 우리를 꺾어 눌러볼 셈인가?”
“그래, 빚 놀이 해 큰 부자가 되겠다고?”
“장 이방에게 머리를 숙이는 게 낫지. 미친놈에게 머리 숙이긴 싫어.”
이렇게 투덜거리는 눈치를 춘삼이는 한 사흘을 두고 구경했다. 그러다가 나흘이 되는 날 아침 아들을 시켜 동네 사람들을 모두 집으로 모이게 했다.
“오긴 왜 오래. 빚 갚을 기일도 아직 안 되는 걸. 벌써 권리를 쓰나.”
겨우 십여 명이 모인 사람들도 입은 댓발이요, 꼴은 뚱하니 부어있었다.
“자네, 곗돈 탔다며?”
“그랬지.”
“그 돈을 장 이방에게 갖다 주고 동네 빚 문서를 모두 찾아왔다며?”
“그랬지. 그 문서가 여기 있네.”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 잃을 짓을 왜 했나.”
“그건 차차 이야기하리다. 좌우간 좀더 여러 사람을 모아주오.”
한 식경이 지나서야 모두 모였다.
“자, 여러분. 내가 잡백계에서 돈 2천 냥을 탄 것을 아시지요? 그런 공짜로 생긴 돈을 혼자 먹으면 탈이 난다는 이치도 여러분을 아실 겁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여러분에게 그 톡톡히 한 턱을 내려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한턱보담 여러분의 고질인 빚을 갚아드리는 게 더 좋을까 싶어서요.”
“......”
“그래 그 돈을 장 이방에게 줬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빚 문서를 여기 찾아왔는데 자, 이 문서를 이 자리에서 태워버리겠습니다.”
“아, 아니 왜?”
하고 여러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
“왜가 아니라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빚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억지로 줘도 안 받겠습니다.”
묵직한 문서뭉치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릴 사이도 없이 활활 태워버렸다.
“이제 안심하시고 살림들을 부지런히 하시오.”
이러자 춘삼이를 오해했던 동네 사람들은
“우리가 이 일을 범상히 여기고 은혜를 잊는다면 개 아들놈이여. 고맙네.”
“춘삼이, 활불(活佛)이 따로 없네.”

그 일이 있은 후 마을 사람들은 춘삼이를 제 부모 떠받들 듯 모시게 되었다. 이 소식은 인근 동네에게까지 퍼져 무슨 명절이나 잔치에는 춘삼이를 먼저 청해 상좌에 앉혀 놓지 않고는 못하는 줄 알게 되었다. 어떤 모임이나 공론 자리에서 춘삼의 말과 의견이라면 무조건 찬성이었고, 백리나 천리 밖 사람들한테까지도
“우리 동네에 장한 생불(生佛)이 있소.”
하고 춘삼이를 자랑하기에 바빴다.

춘삼의 집에서 모를 심거나 밭을 매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호미를 모아 으레 가서 도와주는 줄 알고, 몸이 아프다면 약을 지어다 주는 사람, 먹을 것을 해가지고 곁에서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 등 춘삼의 살림을 동네 사람들은 성심껏 보살펴주었다. 춘삼의 신세와 사는 맛이란 잡백계를 탄 돈으로 집을 사고 땅을 산 것보다 훨씬 흥성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홀아비란 것뿐.

 

어느 날 읍내 부자인 장 이방의 마누라가 시장에 구경나갔다. 마침 출타 중이던 자기 영감이 길목으로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멀찌감치 발견했다. 그때 장터에 모인 사람들마다

“영감, 어디 갔다 오십니까? 강녕하십니까?”

허리를 굽실굽실하더니, 장 이방이 멀리 돌아서서 가는 뒤꼭지를 보고는

“에잇, 잡아 묶어서 도수장(屠獸場)에 데려가면 3백 근은 너끈하겠는걸.”

장 이방을 돼지로 여기고 저마다 욕지거리를 해댔다.

이 소리를 들은 마누라는 사지를 와들와들 떨렸다. 영감의 뒤를 따르기조차 부끄러워 슬그머니 딴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번엔 주막 집 문 앞을 지나는데 거기에 춘삼이가 와 있었다. 촌 농사꾼밖에 안되는 춘삼이를 수십 명의 동네 사람들이 옹위하고 부축하고 야단이었다.

“춘삼이! 나 허구 가세. 내 술 한 잔 먹세.”

“아니야 춘삼이! 이리 오게 점심 자셔야지. 시장하겠네.”

“저녁 때 내가 모시러 가겠소.”

“이보우! 이 양반들이. 정 서방이 누군 줄 아쇼. 동네 장변 2천 냥을 자기 돈으로 선뜻 갚아준 활불(活佛)님이시네. 우리 시골의 호걸이라구…”

장꾼들은 춘삼이를 옹위해주는 모습을 본 마누라는 '제길! 사람이 저런 팔자로 살아야 사는 맛이지. 우리 영감님은 남의 절을 백 번 받아도 그 절이 죄다 욕이로구나.'

이방 마누라는 장탄식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눈시울을 붉히며 그 보고들은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다.

“여보, 좋은 생각이 있어요. 그렇게 인심을 얻을 춘삼이 같은 사람을 우리 사위로 삼아야 세상 욕을 덜 먹지. 그렇잖다가는 나중에 당신 처신(處身)이 누구한테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요.”

“그렇게 하면 내 집 가문이 좀 보호가 될까?”

무남독녀로 길러온 그의 딸을 만석꾼 부호나 수령 감사의 첩으로 주려던 참이었는데 마누라의 말을 듣고 보니 그의 꿈이 허무한 것임을 깨달았다.
‘춘삼이처럼 가난해도 인정과 의리를 아는 사람이 만석꾼이나 고관대작의 세력보다 낫구나.’
이것을 깨달은 장 이방이

“뜻대로 그리합시다.”

마누라의 말에 선뜻 승낙한 장 이방은 그의 외동딸을 춘삼에게 시집을 보내는데, 살림 밑천을 위해 2천 냥도 함께 보냈다더라.

 

 

* 전주 아전의 횡포는 성깔있는 흥선대원군도 조선 3대 폐악의 하나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급관리이면서도 세습 권력을 이용해 온갖 송사에 끼어들어 축재(蓄財)를 했다.
** 잡백계 : 만인계, 천인계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복권의 원형이다. 

 

 

출처 : 한국경제 > 커뮤니티 > 경제in > 김송본 칼럼1515063734547056.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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