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最古의 부자 법칙
요즘 돈만 맡기면 돈을 벌어준다는 펀드가 무척 많다. 어림셈을 해봐도 2006년 7월말 현재 약 1만여 개가 넘는다. 그중 주식형 펀드만 해도 1천여 개, 해외펀드까지 합하면 손발 다 합쳐 수효를 헤아리기는 진작에 포기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렇듯 목돈만 있으면 돈 벌어주겠다는 곳이 많으니 부자 노릇 톡톡히 할만 한데 정작 큰손은 다 빠지고 푼돈 굴려 목돈 만들어보겠다는 사람만 득실거린다.
부자 되고 싶은 심정이야 청빈을 삶의 지표로 하는 남산골 샌님이 아닌 바에야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아니 조국 독립을 위해 해외망명을 해야 하는 독립운동가의 사물함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도 <부자 되는 비결>이다. 개인의 온전한 삶이 조국의 식민지 현실과 상충된다고 해서, 어찌 부자의 꿈을 버릴 수 있을 것인가.
1920년대 일제 강점기 미국의 어느 한인 독립운동가의 소장물에는 안중근, 장인환, 민영환, 이재명, 윤태호 등 독립지사의 사진과 독립문의 정경, 그리고 윤치호의 <국민가>(애국가) 등을 담은 사진이 있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상황경계가(狀況警戒歌) 즉 <부자 되는 비결>이라는 문건이다.
부자 되는 비결
1. 쓸데없는 일에는 결코 돈주머니를 열지마라.
2. 시간은 곧 금전이라 1분 동안이라도 경솔히 보내지 마라.
3. 신의를 굳게 지키지 않으면 가산을 지키기 어렵다.
4. 절용만 하는 것보다 먼저 사치한 마음을 금하라.
5. 백만 원 부자가 되더라도 일 원이 귀할 때 옛 생각을 잊지 마라.
6. 남에게 의지하는 마음은 집을 망하게 하는 칼이다.
7. 마차 탈 신분이면 전차 타고 전차 탈 신분이면 걸어 다녀라.
8. 주색잡기나 혹 광대구경 가자고 끄는 자 있거든 어리석은 체하고 도망하라.
9. 돈은 돌아다녀야 이익이 생기나니 붙잡고 썩히지 마라.
10. 이익을 탐하는 것보다 용도를 줄여라.
11. 재앙 없을 때에 재앙을 예방하여야 재앙이 오지 않는다.
12. 한 때의 실패를 당한다고 마음까지 죽이지 않으면 재물은 다시 살아온다.
13. 참고 견디는 것이 성공의 기초가 되니 잠시라도 인내력을 잊지 말아라.
* 미국 샌프란시스코 梁柱殷씨 소장(국사편찬위원회)
그렇다면 부자 비결의 더 근원은 없을까. 고전 문헌을 뒤져 단편을 엮어 묶는다 해도 사마천의 <열전>과 <대학(大學)>의 각론은 아무래도 현실과 열 걸음은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허나 위 문건의 원본은 1908년 2월 서북학회지*에 <치부격언(致富格言)>으로 발표되었으니 <부자 되는 비결>의 원형이다. 물론 <십팔사략> 등의 내용까지 정리해 법칙화했지만 "부자가 되더라도 첩을 얻지 마라, 가옥은 임치 물건이니 자기 물건으로 생각하지 마라" 등 오늘날의 정서와 투자관념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부자 되는 비결>의 현재적 유효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은 놀라울 따름이다.
치부격언(致富格言)
一. 無益한 事이면 決코 財囊의 口를 開치 마라.
이익이 없는 일이면 결코 돈주머니의 입을 열지 마라.
二. 光陰은 金이라 一分 一秒라도 輕忽치 마라.
시간은 금이라 일분일초라도 소홀히 여기지 마라.
三. 信義를 堅固치 아니면 永久히 家産을 保키 難함.
신의를 견고하게 하지 않으면 영구히 가산을 보존하기 어렵다.
四. 節險을 守함보다 먼저 奢侈의 心을 禁함이 可함.
절약을 지키기보다 먼저 사치하는 마음을 금해야 한다.
五. 百萬?의 富를 致하더라도 一?時節의 身을 忘치 마라.
백만환의 부를 얻더라도 일환 시절의 몸을 잊지 마라.
六. 人에게 依賴하는 心은 家屋을 亡하는 劍戟으로 知하라.
남에게 의뢰하는 마음은 가옥을 망하게 하는 무기로 알라.
七. 馬車 탈 身分이면 人力車를 타고 人力車를 탈 身分이면 徒步하여 行하라.
마차 탈 신분이면 인력거를 타고, 인력거를 탈 신분이면 걸어 다녀라.
八. 娼妓家나 演劇場에 가자고 勸한 자 있을진대 頑者니 愚物이니 하는 嘲笑를 受하더라도 無滯히 逃歸하라.
창기가나 연극장에 가자고 권하는 자가 있을 때는 무딘 놈이니 어리석은 놈이니 하는 비웃음을 받더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도망하라.
九. 巨富가 되더라도 妾을 置치 마라.
거부가 되더라도 첩을 얻지 마라.
十. 災殃은 都統 酒色雜技中으로부터 來함을 知하라.
재앙은 대개 주색잡기에서 오는 것임을 알라.
十一. 自己의 厭한 바를 먼저 하고 好한 바를 後로 함은 轉禍爲福의 妙法이라.
자기가 싫어하는 바를 먼저 하고 좋아하는 바를 뒤로 함은 전화위복의 묘법이다.
十二. 貨幣로 하여금 囊底에서 腐敗케 마라.(運用하야 利益을 生케 함이 第一이라.)
돈을 주머니 안에서 썩히지 마라. 운용하여 이익을 낳게 함이 제일이다.
十三. 利益을 貪함보다 消費를 約함이 最良한 法이라.
이익을 탐함보다 소비를 줄임이 최선의 방법이다.
十四. 家屋은 暫時任置한 物로 하고 己物로는 思치 마라.
가옥은 잠시 빌리는 물건으로 하고 자기 물건으로 생각지 마라.
十五. 好酒하는 友를 親近히 交際치 마라.
술 좋아하는 친구를 가까이 사귀지 마라.
十六. 禍없는 時에 禍를 念慮할진대 畢竟 禍가 없느니라.
화 없는 때는 화를 염려할 때 필경 화가 없다.
十七. 一時에 或 失敗하더라도 心柱를 虛浪히 動치 마라.
한때 혹 실패하더라도 심지를 헛되이 움직이지 마라.
十八. 忍耐力은 成功의 基礎이니 一日片時라도 忘却치 마라.
인내력은 성공의 기초이니 하루 잠시라도 잊지 마라.
단언컨대 근 100년을 경계로 한국 최고(最古)의 부자 법칙은 이 문건이 아닐까.
* 한말 도산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북선(北鮮)지역 지식인들이 펴낸 애국계몽 월보(1908년 2월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