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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착증 환자, 김정일의 ‘복잡한 여성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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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과 ‘변태행위’로 점철된 김정일의 사생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받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은 북한에서 중세 봉건왕조 시대의 왕처럼 신격화돼 있다. 이 때문에 김 부자의 출생은 물론 가족관계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왔으며 피비린내 나는 이들의 권력 장악 과정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프리존뉴스>는 연재 기획 ‘김정일 정권을 해부 한다’의 열한 번째 순서로 ‘강간과 변태적 성행위로 점철된 김정일의 사생활’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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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언론인 재스퍼 베커는 김정일이 ‘섹스광’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전 안기부 북한조사실 단장을 지낸 송봉선 인하대 교수는 김정일이 친구의 형수인 성혜림을 데려와 이혼시킨 사례 등을 들어 김정일에게 성도착증세가 있음을 지적했다.ⓒ poplicks.com
미 중앙정보국(CIA)에는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들과 정치학 교수들이 동원되어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 대한 정신분석과 통치 스타일을 연구하는 ‘인성·정치 행동 분석 센터’가 있다.

이 연구센터를 지난 21년 동안 지휘해온 제럴드 포스트(Jerold M. Post·심리학자)박사는 최근 영국의 일간지인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의 심리 상태를 ‘극단적 자아도취증’, ‘과대망상증’, ‘편집증’, ‘방어적 공격’ 등으로 요약한 바 있다.

그러나 김정일의 정신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성도착증’ 환자다. 여기서 성도착증이란 비정상적인 성적 욕구와 행위를 나타내는 심리적 장애를 뜻한다.

영국 언론인 재스퍼 베커 “김정일은 섹스광”

김정일과 수십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했던 영국의 언론인 재스퍼 베커(Jasper Becker)는 김정일이 ‘섹스광’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전 안기부 북한조사실 단장을 지낸 송봉선 인하대 교수는 김정일이 자신의 친구인 이종혁(현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의 형수인 성혜림을 데려와 이혼시킨 사례 등을 들어 김정일에게 성도착증세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김정일을 거쳐 간 여자들의 수는 어느 정도일까. 결론부터 말해 셀 수도 없이 많다고 해야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영희: 김정일과 가장 오랫동안 동거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온 인물은 지난 2004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암 치료 중 사망한 고영희(김정일의 네 번째 처)가 있다.

고영희는 북한 상층부에서 김정일의 공식 부인으로 인정받으며, 김정일과 함께 살았던 여자다. 코가 커서 ‘방치코’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녀는 김정철, 김정운, 김일순 등 2남 1녀를 낳았다. 이들은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의 이복동생들이다.

고영희는 프랑스로 떠나기 전 강원도 원산·황해도 신천·평안북도 창성·양강도 삼지연·함경남도 함흥 등지에 관저를 갖고 있었다. 귀순 무용수인 신영희씨는 고영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고영희는 유명한 무용 배우였고 김정일의 마음에 들었다. 김정일은 이따금 연습실까지 찾아와서 그녀의 연습을 지켜볼 정도로 열을 올렸다고 한다. 고영희는 이목구비가 반듯한 얼굴로 키도 크고 스타일이 좋은 미인이었다. 춤 솜씨도 뛰어나고 무대에서의 인상도 화려해 주변에서 높은 평판을 받고 있었는데, 김정일도 그런 점에 주목한 듯하다.”

김정일, 홍일천(김형직 사범대 학장)과는 이혼

성혜림의 조카로 지난 97년 2월 김정일이 남파한 암살범에 의해 피살된 고(故) 이한영씨는 고영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1975년부터 고영희라는 무용수가 언제나 김정일의 파트너를 맡게 됐다. 그녀는 1953년 일본에서 태어나 60년대 전반 가족 전원이 북한으로 귀국한 재일(在日) 조선인으로 72년에 만수대 예술단에 무용수로 입단했다. 1977년 들어 고영희는 연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다. 김정일에게서 철봉리에 있는 별장을 받아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그녀는 79년 후반인가 80년에 창광산 관저에 들어가 그 곳의 ‘안주인’이 됐다.”

▲홍일천: 김정일은 정부호위총국 지도원으로 있을 당시인 1966년 홍일천과 결혼해 딸(김혜경)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성질이 괴팍했던 김정일은 그녀를 업신여겼으며 다른 여성들과 바람을 피우거나 손찌검까지 예사로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은 결국 파경에 이르러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북한 정무원 총리인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1994년 5월 탈북)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68년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내각 사무국 지도원 한 사람을 지명해 주었다. 귀여운 여성이었다. 약혼 단계까지는 진전된 것 같은데 결혼까지는 못 간 듯하다. 현재 그녀는 어느 초대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북한 전문가들은 강 씨가 언급한 귀여운 여성이 바로 김일성 종합대학 러시아문학부를 졸업한 김정일의 제1 부인인 홍일 천으로 결론짓고 있다. 그녀는 1966년 가을 김정일과 결혼해 68년에는 혜경이라는 딸을 낳았으나 3년 후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일천은 김정일과 이혼 후 1980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 정무원 보통교육부 부부장(문교부 차관)을 거쳐 지금은 김형직 사범대학 학장이자 범민련 북측본부 중앙위원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혜림: 다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서방으로 망명소동을 일으킨 성혜림이다. 성혜림은 북한의 유명한 영화배우로 김정일이 조직지도 및 문화예술을 담당하고 있을 당시 알게 된 인물이다. 그녀는 1955년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입학, 56년에 이 평의 딸을 낳은 유부녀였다. 그녀는 1959년 ‘경계선의 마을에서’라는 영화에 출연해 배우로 데뷔했다.

당시 김정일은 남산고급중학교 친구인 이 평(월북 작가로 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이었던 이기영의 아들)의 집에 자주 놀러 다녔는데, 그 친구의 형수가 바로 성혜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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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가장 오랫동안 동거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온 인물은 지난 2004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암 치료 중 사망한 고영희(김정일의 네 번째 처)가 있다.ⓒ kbs.co.kr
유부녀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나온 김정남

이와 관련해 성혜림의 조카인 고(故) 이한영씨는 “숙모는 이 평과의 사랑 없는 결혼에 실망하고 있었고 68년경부터는 김정일과 비밀 데이트를 즐기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성혜림은 68년 ‘어느 자위단원의 운명’을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나 69년부터 김정일과 함께 살게 되는데 당시 그녀는 33살이었고, 김정일은 5살 연하인 28살이었다.

김정일은 중앙당을 통해 이 평을 강제로 이혼시켰다고도 하지만 성혜림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자 200평 정도의 ‘15호 관저’를 세워 그녀를 본처로 대우했다. 김정일이 성혜림과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 결혼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1년 5월10일 성혜림은 고관 전용인 봉화진료소에서 아들 김정남(김정일의 장남)을 낳았다. 김일성이 김정남의 존재를 안 것은 4년 뒤의 일로, 그 때까지 김정일의 아들은 극비로 취급되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성혜림은 마음고생이 많아 73년에는 모스크바 크렘린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74년 봄 평양에 돌아온 성혜림은 다시 15호 관저에서 생활을 시작했으나 모스크바에도 아파트를 갖고 평양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살았다. 이후 그녀는 96년 서방으로 망명, 스위스와 러시아에 장기간 머물며 요양하다가 2002년 모스크바에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영숙: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김정일 앞에 또 다른 여성이 등장하는데 그녀가 바로 김영숙(당 선전·선동부 타자수 출신)이다. 남한에서는 김정일의 공식 부인으로 알려진 김영숙은 현재 두 딸과 함께 북한 호위사령부 초대소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숙은 혁명가 집안에서 태어나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타이피스트로 일하던 시기에 김철만 장군의 소개로 김정일을 만났다. 이와 함께 김영숙에게는 설송 외에도 1남1여가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김정일의 본처는 타이피스트 출신의 김영숙 이외에 김혜숙(김애숙·1955년생)이라는 설이 있어왔다. 김혜숙은 함경북도 회령군 출신의 미인으로 부친은 청진사범대학 학장이다. 김정일과 김혜숙이 결혼한 해는 1972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둘 사이의 자녀도 있다. 한편, 이한영씨는 김영숙과 김혜숙의 생년월일이 거의 일치하며, 같은 인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손희림, 김정일에게 강간당해 두 딸 낳아

이와 관련, 이씨는 “1988년 소련의 예술가가 출연한 어떤 연회에 김정일은 부인과 딸을 데리고 나타나 일등석의 리더에게 소개했다. 김정일과 처자식은 6시간이나 연회에 참석했으며, 11∼13세로 보이는 딸은 일제 비디오로 계속 녹화를 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극동연구소의 알렉산드르 제빈 소장도 김영숙과 김혜숙을 동일인물로 보고 이 같은 사실을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김정일에게는 다수의 애인이 있다는 정보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확인 불가능한 정보들이다.

▲손희림·홍영희·정혜순·우인희: 김정일은 북한 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손성필의 여동생인 손희림(1950년생, 당시 32세)을 강간(强姦), 두 명의 딸을 낳았다. 손희림은 그러나 지난 91년 김정일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다.

한편, 북한의 이름난 여배우인 홍영희의 경우 김정일의 측근 간부가 김정일에게 상납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홍영희는 김정일의 애첩이 됨으로써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을 맡아 북한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그녀는 김정일을 가까이서 시중들다가 86년 김정일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의 정보를 정리하면 김정일은 제1부인 홍일천 과의 사이에 딸(김혜경)한 명, 제2부인인 성혜림과의 사이에 아들(김정남) 한 명, 제3부인 김영숙과 1남2녀(김설송과 남동생 및 여동생), 제4부인인 고영희와의 사이에 1남(김정철) 1녀를 두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리고 여기에다 손희림과의 사이에서 나온 2자녀가 추가된다.

참으로 복잡한 여자관계에 배다른 아이들을 줄줄이 알사탕처럼 낳았다. 이런 인간을 북한에서는 신으로 떠받들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김정일의 엽기적 연애행각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김정일의 쓰레기 같은 인생에 정혜순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또 나타난다.

정혜순은 지난 91년 5월 평양의 중앙방송에서 방영한 극영화 ‘종달새’의 주인공 향미 역을 맡았던 신인 여배우. 김정일은 정혜순이 생모인 김정숙과 너무 닮았다고 여겨 그녀를 애첩으로 발탁, 평양 교외의 대성산에 있는 별장에 기거시키면서 특별번호를 부착시킨 고급벤츠 승용차를 하사해 초호화판 생활을 시켰다.

이와 함께 김정일은 전 마다가스카르 대사 출신인 이형연의 처 이상진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으며, 외국 여성도 선호해 미모의 러시아 여가수와 악단을 초청, 엽색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배우 출신인 우인희와 가진 엽색행각도 가관이다. 우인희는 60~70년대 중반 북한 영화계의 톱 스타였다. 그녀는 영화감독 유호선을 만나 결혼,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김정일, 우인희와의 불륜 드러나자 총살형 지시

그러던 중 70년대 후반 우인희는 김정일과 불륜관계를 맺게 된다. 그녀는 이 와중에 재일 교포 청년과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되는데, 어느 날 두 사람은 관계를 가진 후 차 안에서 온풍기를 켜고 잠들었다 청년이 질식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세간에서는 우인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그녀가 조사받는 와중에 최고 지도자를 찾는다는 소식이 김정일에게 들어가자, 김정일은 즉각 총살 지시를 내렸다. 그녀는 영화인들이 보는 앞에서 ‘인민 배우 우인희는 부화 방탕죄를 범했으므로 인민의 이름으로 총살형에 처한다’는 소리가 끝나자마자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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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김일성이 즐겨 먹던 음식을 대물림해 산천어·칠색송어 등 담수양어를 비롯, 상어 지느러미, 사슴 힘줄, 약초 먹여 키운 송아지 등을 먹는다. 물론 여기에는 남성의 스테미너에 좋다는 뱀술도 포함되어 있다. 사진은 납북된 영화배우 최은희씨(오른쪽)가 김정일(왼쪽) 주최의 오찬장에서 뱀술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신상옥·최은희 비록
한편, 지난 80년대 귀순한 북한 외교관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에게 농락당한 여성들 가운데에는 버림을 받아 자살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70년대 말 평양예술단 소속의 독창가수 한 명이 유서를 남기고 대동강에 투신자살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정일이 벌이는 엽색행각의 극치는 ‘기쁨조’와 벌이는 술잔치다. 얼마 전 일본의 대중 잡지인 ‘주간현대’는 김정일의 새 애인 이야기를 크게 다뤄 관심을 집중시켰다.

주간현대가 북한 관계자들과의 밀착 취재를 통해 확인했다는 이 여성은 20대 중반의 기쁨조원으로 이름은 옥희(玉嬉)다.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인 고영희(50)와 마찬가지로 옥희는 고전적 이미지를 풍기는 전형적인 동양 미인으로 춤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기쁨조란 말 그대로 북한의 고위 간부들에게 성적 기쁨과 유희를 주기 위해 조직된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위안부를 뜻한다. 기쁨조의 시작은 70년대 초 김정일이 김일성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북한 전역에서 미모를 갖춘 여성을 선발, 김일성 별장에 이들을 배치하면서 부터다.

구체적으로 1983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김정일을 위한 기쁨조가 생겨났는데 공연조·희극조·중주조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쁨조는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그때그때 충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 왕조는 기쁨조 선발을 위해 유급 초급 당 비서 이상의 당 간부들에게 기쁨조의 선발기준 표준지표를 비밀리에 제시, 이를 수행해왔다.

기쁨조, 선발 이후 처녀성 검진

표준지표에 따른 기쁨조의 표준모델 수치를 보면, 얼굴형은 16세 때 버들잎형(타원형)이어야 하고, 신장은 16세 156cm, 20세 160cm, 24세 162cm 이상이어야 하며, 하체는 좌골부터 뒤꿈치까지 길이가 앉은키보다 5cm 이상이어야 한다.

기쁨조는 김정일의 충원지시가 있으면 조직지도부 서기실을 통해 평양시와 도당 간부부로 지시가 하달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른바 ‘5과 대상자 선발지시’(중앙당 5과가 선발 담당)다.

5과 대상자는 얼굴이 예쁘고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 각 도에서는 선발지시에 대비해서 미리 예쁘고 건강한 여학생들을 예술전문학교에 뽑아 놓는데 예술적 소질이 있든 없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이 학생들 중 골라서 위로 올린다.

대략 200~300명 정도가 1차 선발되면 이중에서 100명 정도를 추려낸다. 이들은 평양 남산병원에서 정밀 신체검사를 받는데, 이 중에는 산부인과 검진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처녀성 검사다. 이윽고 50명 정도의 기쁨조 여성들이 최종 선발 된다.

마지막으로 김정일의 결재를 받은 50명의 여성들은 선발 후 6개월 정도의 교육을 받게 되는데 ‘만족조’는 성적 봉사에 필요한 예절과 기교를 익히고 ‘행복조’는 물리치료전문의로부터 안마, 마사지, 지압 등의 피로회복 전문기술을 연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만족조의 훈련은 인권말살의 극치를 보여준다. 북한을 탈출해 지난 2000년 남한으로 입국, 현재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기쁨조 출신의 이정란(가명)씨의 증언에 의하면 만족조는 남성을 접대할 때 스타킹 착용을 절대 금물로 한다고 한다. 만족조의 경우 대부분의 실습이 동료들과 함께 2인 1조가 돼 여성 교관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진다.

김정일 제거해야 북한인권 문제 해결

이들은 키스법을 연마할 때도 구강의 타액을 교환하는 프렌치 키스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교육을 받는다. 키스를 하다가 실수를 하면 교관이 OK할 사인을 보낼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가장 수치스런 ‘오럴섹스’도 실습을 통해 연마한다. 이를 습득하기 위해 ‘만족조’는 기본적인 키스 기술은 물론 오럴섹스를 할 때의 손·발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훈련을 받는다.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이 벌이는 ‘쓰리섬’(threesome)도 배우는데 두 여성의 역할분담에 관한 훈련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를 임신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피임도 필수인데 주로 정자를 죽이는 약인 ‘살정제’를 이용한다.

이와 함께 기쁨조원들은 매월 임신과 성병 검사를 받아 임신했을 경우에는 곧바로 낙태수술을 받고 일정 기간의 요양이 지나면 다시 현역으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10대의 어린 기쁨조 여성들과 벌이는 엽기적 연애행각은 여성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행위다. 북한 인권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도는 김정일을 제거하는 것이다.

김정일을 제거하면 인권문제의 해결은 물론, 북한 주민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애국세력은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국제사회와 호흡을 같이 해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인권 개선 압박을 한층 강화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3 Comments
뿔따구 2007.09.09 17:32  
다리도 짧은 놈이 다리 긴 여자와 자세나 나오려나요?
어여쁜 나 2016.12.23 12:37  
김정일의 첫번째여자인 성혜림은 알다시피 우리기준으로 절대 미인이라고 부를수없는 평범한얼굴인데 김정일이 어렸을때 어머니 김정숙을 여의자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있던지라 그래서 성혜림을 좋아할수밖에 없었죠~!!!! 김정은의 생모이자 김정일의 세번째여자인 고용희도 재일교포인 동시에 무용배우였는데 그 여자역시 절세미모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웃는모습이 예뻐서 김정일이 좋아했다나요?
어여쁜 나 2016.12.23 19:20  
북한 최고위층들과 그 일가족들을 몽땅 탈북시켜 우리나라 얼짱미녀들을 구경시켜주면 정말 좋을텐데.....!!!! 한마디로 우리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얼짱미녀들이야말로 북한의 5과소속이나 기쁨조소속의 아가씨들보다 훨씬 예쁘다는것을 깨달아주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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