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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수기] 구덩이 속에서 지낸 10일

fabiano 0 1277  
1961년 3월 22일 문바우골을 향해 먼 길을 떠난 적이 있다. 교통이 무척 불편했던 시절이라 당시 서울 숭인동에 있던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아침 일찍 횡성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오후 1시께나 되어 그곳에서 하루 두 번 다니는 서석행 버스를 갈아타던 생각이 난다.

장가든 지 두 해가 되던 해라 첫 돌을 바라보는 귀여운 딸의 재롱도 잠시 미루고 신혼여행 때 쓰던 가방에 그분의 한복 한 벌과 양말 서너 켤레 그리고 명동 태극당에서 산 과자 한 상자를 담아들고 서석에서 내렸다. 그 분의 아들인 김학성씨가 벌써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그 분의 72회 생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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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3월 23일 내 생명의 은인이신 김자 중자 경자이신 어르신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이 필자.
대소 집안 어른들이 집 안팎으로 분주했고 전 부치는 기름 냄새는 산골마을 가득히 배어 있었다. 북으로 올려다 보이는 문암산은 아직도 많은 눈을 이고 있었고 개울가 버들강아지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릴 차비를 차리고 있었다.

그 분 아들의 손에 이끌려 생명의 은인이신 '김'자 '중'자 '경'자이신 어르신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렸던 그때 그 감격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후 14년이 지난 1975년에 또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그 분이 작고하신 지 7주기여서 그 분의 영정 앞에서 흐느끼며 향을 피워야 했다. 그때 잊혀지지 않는 슬픔은 더욱 내 가슴에 남는다.

이 분과의 인연은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10개월이 되던 1951년 봄이었다. 강원도 인제 남동쪽 현리라는 곳에서 우리 국군은 한국전에 개입한 중공군에 포위를 당했다. 작전상 후퇴를 택한 수많은 아군 병력은 눈물을 머금고 북녘하늘을 흘겨가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남으로 또 남으로 집결지 창촌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쓰러질 듯 지친 몸을 질질 끌면서 방태산 개인산 명현봉 등 표고 1000미터가 넘는 험산 준령을 오르내리면서 때로는 비어 있는 어느 민가에 들어가 솥바닥에 남아 있는 강냉이 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했고 적군의 눈을 피해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는 산 속을 걸어 집결지 창촌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어느날 저만치 바라다 보이는 들판에 서서 피곤에 지친 몸을 잠시 풀려는데 어디선가 적군이 쏘아대는 AK소총 소리에 그만 혼비백산하여 외나무 다리를 건너던 수많은 전우들이 내린천 급류로 뛰어들어 떠내려가던 그 비통한 참상은 지금도 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다.

남과 북은 형제인데 누가 우리를 이렇게 갈라놓았단 말인가. 우리는 같은 피가 흐르는 한겨레이건만 누가 이렇게 우리가 서로 총뿌리를 겨누게 했단 말인가. 3개 사단이라는 엄청난 병력이 포위망을 헤쳐 남으로 후퇴했다. 저쪽 산등성에서 아군 보병이 엄호 사격을 하고 야광탄은 밤하늘을 수놓았다. 교전하는 총성 그리고 부닥치는 총탄의 불꽃 그리고 조명탄이 하늘에서 대낮처럼 불을 밝혔다.

아! 어느 불꽃놀이가 이토록 장엄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전장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참전용사들만의 특권이다.

어느 날이었던가. 나는 두 전우와 같이 문암산 밑 어느 민가에서 아침을 얻어먹고 얼른 몸을 피해 그 집이 내려다보이는 가까운 산 속에 숨어 있었다. 한낮쯤 되었을까. 중공군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깜짝 놀라 수풀을 헤치고 우리가 아침을 먹고 나왔던 그 집을 내려다 보았다.

무전기를 등에 진 중공군 서너 명이 그 집 안 마당에 버티고 서 있었다. 얼마 있으니 집안에서 그 집 식구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온다. 중공군들은 사정없이 그 집 구석구석을 따발총으로 갈겨댔다. 아마 국방군이 있었다는 정보라도 들었나 보다. 중공군들은 그 집 식구들을 끌고 저 아래 산모퉁이를 돌아 내려갔다.

그 순간 앞으로 닥칠 불길한 예감이 우리들 머리를 스쳐갔다. 10분이 10년 같은 길고도 긴 시간이 숲 속에서 숨어 떨고 있는 우리들의 가슴을 쥐어 뜯었다. 참으로 오랜 시간만에 나무 그림자가 길게 뻗어 나가더니 굼벵이 같은 저녁 해가 문암산을 마냥 넘었다. 해가 지고도 어두워질 때까지 우리들은 가슴을 졸이다가 마침내 숲속 탈출을 시도했다. 서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금살금 문암산을 기어올랐다.

그런데 달빛은 어쩌자고 이렇게 교교하단 말인가. 온 몸이 노출되어 적군에게 곧 발각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달빛을 피해 숨을 죽이고 오르고 또 올랐다. 우리는 아마도 사자밥을 지고 저승길을 오르나 보다.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그런데 거의 산 중턱쯤 올랐을 때였다. 달빛이 갑자기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산 속은 금세 어두워지고 장대 같은 빗줄기가 문암산을 두들긴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늘이 우리를 도우셨나보다. 우리 세 사람이 비범벅이 되어 문암산을 넘었을 때 달은 또 다시 검은 비구름을 열고 전율이 맴도는 어느 으스스한 마을을 비쳐주었다.

저기 음침한 호롱 불빛이 어느 초가에서 새어나왔다. 잔뜩 긴장한 시야에는 정적이 감돌고 가끔씩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가 우리 세 사람을 더욱 움츠리게만 했다. 우리는 숨을 죽여가며 호롱불빛이 새어나오는 초가 앞으로 갔다.

나는 검지 손 끝에 침을 발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토담집 문 창호지를 뚫었다. 그리고 뚫린 구멍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안에는 촌로 한 분이 입에 물었던 장죽을 손에 쥐고 목침을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방문을 벌컥 열고 방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 국군을 보고 놀란 촌로 앞에 엎드려, 갈수록 적중 탈출이 난감함을 설명하면서 우리들의 은닉을 호소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촌로가 입을 열었다.

"이 사람 같으면 옷을 갈아입고 내 아들 행세를 해도 괜찮으련만…"하면서 한 전우의 거친 손을 잡았다. 그 전우는 농촌 출신이었다. 피부나 몸매가 그분 아들 행세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전우가 혼자 남기를 거부하자 그 촌로는 비장한 어조로 우리 모두 생존할 수 있는 묘안을 우리들에게 제시했다. 적중에서 우리 국군을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리는 그 즉시 촌로의 집을 나와 숲 속으로 몸을 피해 손톱이 이지러져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맨손으로 우리 세 사람이 들어갈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구덩이 위를 덮고 구덩이 속에서 뜬눈으로 무릎을 맞대고 쪼그리고 있었다.

동이 틀 무렵 인기척이 나면서 중공군들이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우리들은 깜짝 놀라 모두 초죽음이 되어 숨도 쉬지 않았다. 지난밤 어둠 속에서 급히 서두르다 그만 구덩이를 길가에 팠나 보다. 아침 햇살이 구덩이를 덮은 나뭇가지 사이로 밤새 안녕했느냐는 듯이 쪼그리고 있는 우리 세 사람을 들여다 보았다.

얼마 있더니 멀리서 쇠방울 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면서 그 촌로의 헛기침 소리도 들렸다. 우리들의 위치를 알리라시는 암호였다. 나는 구덩이를 덮었던 나뭇가지를 제치고 목을 내밀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펴보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우리들의 위치를 알렸다.

소를 몰고 구덩이 앞으로 다가온 촌로는 한참동안 서성거리다 얼른 망태기 하나를 던져 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망태기 속에는 풀잎에 잘 싸인 강냉이밥과 고추장이 들어 있었고 다른 주머니 하나에는 볶은 콩이 들어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이 먹을 양식인 것이다.

이러기를 며칠이 지났다. 언제 살아서 나가리라는 기약 없는 구덩이 속의 목숨들이 되고 말았다. 언제 아군의 반격이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어쩌면 적군에게 발각되어 세 사람 모두 한 구덩이에 묻혀 종종 산새들이나 찾아와 울어줄 아무도 모를 무덤으로 남아 버릴지도 모른다.

그 촌로의 가족 역시 국방군을 숨겨준 이적죄로 처참한 죽음을 맞고 억울하게 구천을 맴돌아야 할 비운이 닥칠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참으로 가슴 졸이며 구덩이 속에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살아남는 길보다 저승길이 더 가까운 길목에 앉아 오늘도 그 촌로가 던져 줄 망태기 하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서 그 며칠이 지났던가! 멀리서 미풍에 실려 냄비 속에서 콩 튀는 듯한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더니 이번에는 우리들의 머리 위를 지나 바람을 가르고 북쪽으로 날아가는 105mm 포탄 소리를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구덩이 속에서 서로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군의 반격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적군에게 발각이 되지 않는 한 생존할 확률이 있었다. 구덩이 속에서 햇빛도 못 보고 세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쪼그리고 있은 지도 벌써 일곱 날이 넘었다.

멀리서 교전하는 소총 소리가 더 가깝게 들려왔다. 슬피 우는 부엉이 울음소리에 생명에 대한 애착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드디어 적중 잠복 10일! 우리가 구덩이 속에서 지낸 지 열흘째 되던 아침이었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중공군이 다 물러갔다고 크게 소리 질렀다. 촌로의 아들이었다. 우리는 소스라칠 사이도 없이 그간의 악몽을 떨쳐버리고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4월의 햇살이 따사로웠다. 지게를 지고 앞서 가는 촌로의 아들을 따라 그 집 안 마당에 이르렀다. 마당이 넓었다. 촌로 내외분과 식구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 넓은 마당이 흠뻑 젖도록 흐느껴 울었다.

생명의 은인 앞에서 갚을 길 없는 감격의 울음이었다. 촌로가 안으로 들어가 농주를 바가지 하나 가득히 퍼가지고 나와 우리들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받았다. 이렇게 살아 돌아가는 순간에 축배까지 내려주시는 어르신의 깊은 사랑을 우리 가슴 가득히 마셨다. 그저 쏟아지는 눈물 뿐 드릴 말씀이 없었다.

문암산을 넘어 오기 전부터 적지 민간인들은 언제나 우리 국군을 도와주었다. 나는 큰 바가지를 입에 대고 크게 마셨다. 한 모금 두 모금 바가지 속의 막걸리가 위아래로 출렁인다. 내 영혼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우리는 그 어르신 내외분께 눈물로 작별을 고하고 집결지 창촌을 향해 내 생애에 다시 없을 즐거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집 아들이 지게를 지고 또 앞장을 섰다. 그토록 전율이 맴돌던 산하는 아름다운 강원도의 절경을 자랑하고 개울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지저귀는 산새들의 노래 소리는 마치 살아 돌아가는 우리들을 전송이라도 하는 듯 정감이 넘쳤다. 어느 산모퉁이를 돌아 흐르는 개울가에 떠 있는 징검다리를 딛고 나는 고개를 돌려 뒤돌아 보았다.

여린 솔잎 사이로 문암산이 보였다. 저 문암산을 넘어오던 날 억수같이 쏟아지던 빗속에서 절규하듯 내 가슴 속에서 울부짖던 내 기도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우리는 개울을 건너 산허리를 돌아 시야가 확 트인 언덕에 서서 그 집 아들과 헤어졌다.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창촌을 바라볼 때는 나도 모르게 벅차 오르는 뜨거운 눈물이 내 볼을 적시고 있었다.

저 아래 아군 탱크들이 준엄한 자세로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아! 내가 정녕 살아 돌아가는 것인가. 온몸에 피가 끓어오르고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여기 저기 골짜기, 골짜기에서 우리와 같은 전우들이 세 명씩 다섯 명씩 짝지어 걸어왔다. 저들은 또 어디서 저토록 저들의 승리를 위해 잠복해 있었단 말인가.

이렇게 문암산 문바우골은 아군의 잠복지였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적지에서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데는 아군을 도와준 문바우골 사람들의 숨은 공이 있었다.

창촌이 가까워졌다. 어서 가서 내 소속 부대를 찾아야 하고 헤어졌던 전우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어 전선으로 다시 향할 내 늠름한 모습을 그려가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약동하는 봄은 벌써 나뭇잎에 푸른 옷을 입히고 산천은 이미 생기에 가득 차 있었다.

                                                                                                                                 김경환(injada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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