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간이역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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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의 추억

fabiano 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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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 찾아간 역들은 급행이 잘 서지 않는 곳이다. 완행열차가 오래 서는 곳이다.
삶의 삽이 한 자루 꽂혀 있고 그 삽처럼 홀로 서있는 조그만 역은 문경역이다.
이곳에선 뼈마디 쑤시는 아픔과 함께 가슴 아린 아픔이 저탄창고와 막장 속에 숨어 있다.
건널목에 붉은 등이 켜지면 열차는 쏜살같이 사라지고, 연탄 한 장 새끼줄에 달고 가는 삶의 고달픈 하루가 있었다.
 ‘미로(迷路) 찾기’ 같은 삶과 달리 역에는 마침표가 없다. 단지 쉼표, 느낌표, 물음표, 말없음표만 있을 뿐이다.
역은 이렇게 현재진행형이다.

비 오는 주말, 게으름의 방문을 열고 나서라. 죽도록 그립거나 외로우면 기차를 타라. 기차를 타지 못하면 전철이라도 타라. 전철도 막차를 타면 역을 찾아가는 길처럼 고달픔과 함께 그리움을 만날 수 있다.

내 어린 날 삶의 한 일면은 대구역 철도 관사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를 그리워하는 추억이다. 친구의 집에서 처음 본 전축, 기차 장난감, 증기기관차의 모습은 내 마음에 아직도 남아있다. 긴 테이프가 있는 녹음기가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철도 관사에만 가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막연한 그리움이 생겨났다.

먼 하늘에 붉은 노을 사라지고/ 갈매기떼 길을 찾아
날아들 때/ 이리저리 방황하며 나부낄 때/ 샛별 등대
저만치서 빛납니다

초등학교 때 꿈을 키우며 부른 노래는 스무 살이 되고 불혹을 넘어 이순(耳順)이 될 외로운 아침이 되어도 잊지 못한다. 친구의 부음으로 문득 삶이 아파오면 솔순 이파리처럼 간이역은 가로등 같기도 한, 상가(喪家)의 깜박거리는 불빛처럼 쓸쓸한 역이 된다. 연착한 기차는 인생 지각생처럼 내 삶을 등뒤로 자꾸만 밀어낸다.

어둠의 끝자락에 매달려오는 기차는 고향 동구밖을 지난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1960년대 새마을 운동 얘기에 열이 올랐다. 미나리꽝엔 그때처럼 돌미나리가 새파랗게 총총 돋아나 있다. 동촌역에서 철길을 따라 대구역까지 걸어왔다. 푸른 스무 살 연애시절이 어느새 가슴에 다가와 있다. 솔숲 산에서 후두둑 내리는 소낙비를 맞으며 쏘다니다 철둑길을 걸으며 하루의 반나절을 꼬박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역에는 사람의 사랑과 숨결과 체온이 함께한 흔적도 남아있다. 역 주변엔 여인숙이 많았다. 여인숙은 씁쓸하게 젖은 날 젊은 시인의 눈물 같은 집이다. 새 이정표를 찾아 길 떠나며 하루를 묵어가는 쓸쓸한 잠자리가 있는 역은 삶의 포장마차 같은 곳이다. 바람처럼 왔다 다시 열차에 올라 어둠 속으로 떠나가는 길목엔 구절초 같은 사랑이 숨어있다.



박해수 < 詩人 > jockey@donga.com

1 Comments
fabiano 2005.06.20 16:05  
사진만 보면 꼭 고향같은 심천(深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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