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청량리역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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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의 추억

fabiano 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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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에 대한 추억은 아득한 옛 기억과 맞닿아 있다.
고등학교 때의 무전여행을 떠날 때에 군용배낭에 쌀 한줌과 마른 건빵 같은 비상식품을 싣고 지도 속에서만 보던 낯선 역을 찾아 무작정 떠날 때의 두려움과 또 한편의 기대 같은 것. 그것은 마치 흔들거리는 이를 빼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불안감과 쾌감 같은 것이었다.
새벽녘 근처에는 항상 사창가에서 나온 할머니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이렇게 유혹하곤 했었지.

“젊은이 놀다가, 좋은 색시 소개해 줄게.”

군대에 있을 무렵에도 휴가 나왔다 돌아가던 곳이 청량리역이었다.
그 무렵 버스의 여차장들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곤 하였었지.

“청량리 중랑교가요.”

그 소리를 잘못 들으면 이렇게 들려오곤 했었다.( 이 소리는 우스개 소리로 많이 써먹은 것으로 기억한다) 

차라리 죽는 게 나요―차라리 죽는 게 나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았던 청량리, 청량리역.
그 역의 이름은 저 암울했던 50,60년대의 청춘시대와 연결된다.
아직 6·25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던 참혹했던 전후의 계절, 차라리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싶은 심경으로 무전여행을 떠나고 시골 간이역에 기차가 멎을 때면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무임승차를 하였었지.
항상 사람들로 넘쳐나고, 냄새나는 변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꼬박 밤을 새우던 완행열차.
한참을 자다 눈을 떠도 경기도를 벗어나지 못한 석가여래의 손바닥 안이었지.
때로는 휴가병 열차이기도 했었다.
새벽에 나왔다가 30분정도 시간이 남으면 사창가의 노파 손에 이끌려 판잣집에 끌려가 군화 끈을 풀지도 않고 혁대를 끄르고 엉덩이를 내린 후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 같은 섹스를 했었지. 그럴 때면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을, 아니 이미 죽었을 무성영화에 등장하는 엑스트라와 같은 여인들이 내 엉덩이를 때리며 이렇게 놀려댔었지.
“아따 급하기는, 번개 불에 콩을 튀겨먹었나.”
요강에 오줌을 누고 도망치듯 달려가는 청량리역사. 그때 내 가슴에 줄곧 이런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요.


청춘시절의 잠재된 기억은 평생을 가는 것일까.

몇 십 년 만에 중앙선열차를 타는 청량리역은 옛날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는 초호화판의 현대식 건물이었고, 사창가가 있던 건물은 눈부신 상가로 급변해 있었지만 여전히 내 귓가에는 버스차장의 목쉰 절규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고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요. 차라리 죽는 게 나요―.

( 최인호의 장편소설 '유림(儒林)'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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