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에 돌아온「나는 열일곱살예요」박단마(朴丹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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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만한 일은 46세(본인은 그렇게 말하지만 친지는 3세쯤 더 되는 것으로 귀띔)라는 연령에 비해 너무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굴엔 실오라기만큼도 주름살이 없다.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측근의 찬사에 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미국에서는 20대 처녀로 알고 있어요. 27세쯤으로 보고 있다나요.-』
한국에서 그가 「히트」시킨 노래가 『나는 열일곱살이에요.』그의 노래제목처럼 항상 열일곱 처녀로 있는 것일까?
아닌게 아니라 박단마씨는 『얼마전에 그 곳 미국인과 약혼(約婚)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24세의 아들, 21세의 며느리 그리고 2살반 된 손자가 있는 「할머니」라고 그녀는 결코 생각키지 않을 듯하다.
신랑 될 사람은? 이 질문에 그녀는 숨김없이 『아주 마음씨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보다 10년 연상인 「보브」란 사람. 박단마씨의 아들 「리키」박 씨와 함께 자동차상을 하는 사람이란다.
약혼기간은 상당히 지났지만 결혼은 심사숙고중. 『이번에 결혼하면 이제는 죽을때까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혼하겠다』는 것. 그녀는 『마지막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이 「마지막 결혼」이란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묘한 여운을 풍긴다. 박단마씨의 파란많은 애정생활을 집약하는 것 같은 느낌.
13년전, 당시 가요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박단마씨는 10세난 혼혈아 아들을 앞세우고 도망치듯 모국을 떠났다. 아들의 아버지가 미군(당시 헌병중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아들을 임신 시킨 뒤 한국을 떠난 「리키」중위는 아들이 10세가 되도록 오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면 돌이 날아 왔어요.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죠』
『아들이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트기라고 따돌려 놓기 때문에-결국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결심이 선거죠』
울면서 떠났던 그 때를 회상하면서 그녀는 말을 잊었다.
13년 동안 한번도 오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거란다.
미국에 오는 고국사람들 편에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소식을 들어도 믿어지지 않았단다. 『지금도 사실은 혼자 외출하기가 겁나요』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녀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가는 짐작할 수 있는 일.
10세 아들과의 「정처없는 도미생활」도 이제는 확실한 기반이 잡힌 것 같다.
자동차상을 하고 있는 아들은 「캘리포니아」에서 4만「달러」짜리 집을 갖고 있고 월수입 3천「달러」 이상. 미국 사회에서도 중류급 이상이다.
아들 며느리와 별거, 「할리우드」근교 「아파트」에서 살고있는 그녀는 지금도 내키면 무대에 서서 노랠 부르지만 그 수입 아니라도 삶을 즐길 여유는 갖고 있다는 이야기. 그녀가 사진으로 보이는 「아파트」의 실내장식은 연예인의 그것답게 화려하고 아늑했다. 작년말엔 「유럽」일주 공연의 연예단에서 초청을 받았으나 귀국준비 때문에 거절했다는 것. 『앞으로도 얼마든지 떠날 기회가 있다』고 자신에 차있는 말씨다.
가느다란 청음(淸音), 소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이 질문에 박단마는 『성대는 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는 목소리가 굵어진 대신 훨씬 박력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그녀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귀국공연과 「레코드」취입을 통해서 곧 알 수 있게될 것 같다. 1개월 가량 머무를 예정이던 그녀는 서울 시민회관 공연과 박춘석(朴椿石)씨와 약속한 「레코드」취입을 위해 7월말까지 체류할 예정.
그와 같은 또래의 가수는 사실상 거의 퇴역한 지금이지만 박단마씨는 전혀 그럴 기색이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노래는 이제부터」라는 말투다.
『처음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는 막연했어요 거기서 6개월동안 공연하고 「로스앤젤리스」로 갔는데 그 땐 더욱 막막하더군요』
박단마씨가 두 번째 결혼한 상대가 이 「로스앤젤리스」에서 「호텔」을 경영하던 미국인이었다.
『거리에 나가야 아는 사람도 없고 길도 모르고 일할데도 없고-그런 때 친절을 베풀어주니 천주처럼 믿게 되더군요』
한국에서 맺어진 「리키」중위와는 그뒤 「샌프란시스코」서 만났단다. 무척 서로 그리워 했지만 그땐 이미 늦은 몸들. 「리키」씨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돼있고 박단마씨 또한 새 살림을 차린 뒤였다.
현재의 약혼자 「보브」씨는 『나같은 미인은 이 세상에 또 없는줄 알고 있다』고 자랑할만큼 그녀는 소녀적이다.
-미국인 며느리는?
『아들이 나를 좋아하니까 며느리도 퍽 따르고 있어요. 한국에 오겠다고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고 있어요. 손자 녀석도 한국말을 곧잘 한답니다』
그의 아들 「리키·주니어」역시 10세때 떠난 한국을 잊지 못한다고 자랑했다. 이번에도 동반하고 싶었지만 『내가 먼저 가보고-』다음으로 약속했다는 것.
[선데이서울 70년 6월 7일호 제3권 23호 통권 제 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