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사진 (2)
fabiano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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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2 11:59
아래의 포스팅은 국립중앙도서실에서 미국의 NARA의 기록사진자료실의 수많은 사진박스 속에서
찾아 낸 전쟁 중의 인간군상- 피란민, 고아, 군인들(국군, 유엔군, 인민군), 종군기자, 민간 노무자들의
모습과 전쟁의 와중에 다시 열린 장터, 상여꾼, 추수 중인 아낙네들 등 전쟁 중의 삶의 모습이 담긴 기록사진이다.
미 병사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지긋이 두 눈을 내리깐 채 곁불을 즐기는 털모자의 노인. 1950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서울 근교. 이 노인과 모닥불 온기를 나누고 있는 미군들은 미 제1기갑사단 8기갑연대 소속 병사들이다.
1950년 12월24일
1950년 12월24일
중국군의 남진을 피해 다시 서울을 떠나는(1.4후퇴 직전) 피난민 대열. 이고 지고 들고 떠나는 단촐하기 짝이 없는
여느 피난 보따리에 비해 차곡차곡 잘 꾸려져 우마차에 한가득 실린 피난 짐더미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1950년 12월28일.
1950년 12월28일.
1951년 1월 5일, 서울을 등지고 남쪽으로 뻗친1· 4후퇴 피난민 대열.
피난민 실은 배가 들어오기 직전의 부산 항만. 피난민 틈에 섞여 있을지 모를
가족이나 친척을 찾기 위해 선착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
1951년 1월18일.
1951년 1월18일.
미 해병대의 구호품 선적선이 실어온 옷가지들을 배급받기 위해
1만2천500여 명의 포항 시민들이 시청 앞에 모여들었다. 1951년 2월14일.
미 해병대 1사단이 설치한 구호품 배급소에서 옷가지, 신발, 장난감 등을 한두 점씩 받아든 피난민 아이들.
1.4후퇴 직후인 1951년 2월15일 촬영된 사진이다. 전란의 참화를 피해온 8천 명 피난민 아이들 중
일부인 이들은 한결같이 계집아이들은단발이고, 사내애들은 까까머리들이다. 1951년 2월15일
헝겊으로 둘러멘 기관총 부대 집결지로 가는 한국군 7사단 5연대 소속 기관총 사수들.
1951년 2월16일.
1951년 2월16일.
참전 벨기에 군인들이 상여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1951년 2월23일.
한 한국군 장교가 전주의 사단 본부 마당에서 대형 지구본을 놓고 한국 전쟁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1951년 3월1일.
1951년 3월1일.
서울 재수복 직후인 이른봄, 장터 길거리에 좌판 약국을 다시 연 노인.
전란의 생필품으로 인기를 모았던 디디티도 보인다. 1951년 3월19
서울이 재탈환되면서 장터도 다시 열렸다. 쌓아올린 4단 좌판과 양철통에 그득한 김치 포기.
ACME 뉴스 픽쳐 서비스의 사진 기자 짐 힐리(Jim Healy) (안경 쓴 이)가 개성 정전협정 회담장으로 들어가는
인민군 해병 장교들을 촬영하고 있다. 1951년 7월31일.
판문점 근처의 논에서 추수를 하고 있는 두 아낙네.
논두렁 위로 헌병 두 명이 걸어가고 있다. 1951년 10월30일.
부두 하역장에서 탄약을 옮기는 한국인 노무자들. 1950년 7월6일.
후방에서 막 수송되어 온 미제 105밀리미터 곡사포를 전선으로 급히 이동시켜 가는 한국군.
1950년 7월6일.
1950년 7월6일.
남행 피난길을 재촉하는 피난민들. 1950년 7월7일
병사들은 전방으로, 피난민은 후방으로. 6·25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7일.
낙동강 전선을 순찰중인 미 24사단 24정찰대 소속 M-24 탱크 승무원들
청주의 한 마을에 진주한 미군을 환영하는 주민들. 1950년 9월23일.
서울 동쪽. 전란 3개월만에 잿더미뿐이다. 1950년 9월28일
인천 상륙에 이은 서울 수복 직후의 서울역 앞 남대문 전차길. 1950년 9월
전주 민간인 학살 현장. 시신더미 속에서 남편을 찾아낸 한 여인. 1950년 9월29일.
즉석에서 만든 지게로 탄약을 운반하고 있는 미 병사와 한국인 노무자. 편안한 모습으로 지겟짐을 능숙하게 지고
서 있는 한국인과 어정쩡한 자세로 두 다리를 버틴 미 병사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다.
1953년 2월19일.
1953년 2월19일.
예비회담장 유엔군 측 지역에서 영국 종군 기자 에릭 다운톤(Eric Downton)(맨 왼쪽)과 네덜란드 종군 기자
알프레드 반 쉬프링(Alfred Van Spreng)이 북한군 파견장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있다. 1951년 7월16일.
한 한국군 병사가 빈 민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밥상 앞에 늘어 놓은 것은 일본에서 생산된 전투 식량들이다.
1951년 8월9일.
공산군과 유엔군 양측의 휴전 협정 파견장교들이 지도 위에 군사분계선을 그리고 있다. 조선인민군 장춘산 상좌와(왼쪽)와 유엔군을 대표한 미 해병대의 제임스 머레이 대령.
1951년 11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