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zabeth Keith - 시집가는 날 (1920년대)
fabiano
그림, Flash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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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4 19:13
▷ 우리에게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920년대에 벌써 우리 한국사람을 누구보다도 다정한 눈으로 그린 엘리자베스 케이드(Elizabeth Keith)라는 영국 출신의 여류 화가가 이곳 한국땅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는 케이드는 한국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누구보다도 여실하게 화폭에 담았는데, 특히 전통 혼례의 풍속화에 흠뻑 심취했던 것같습니다. 아래 첫번째 그림은 멀리 뒤로 보이는 것이 동대문인 듯하니 아마 청계천 어디쯤을 지나가고 있는, 꽃가마 혼례 행렬인데 길에서 노는 아이들, 냇가에 앉아서 빨래하며 쳐다보는 여인들, 심지어는 길바닥에 물을 쏟아붓는 아낙네의 모습까지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군요. ▲ Marriage Procession, Seoul, 1921 / By Elizabeth Keith ▷ 혼례식이 열린다는 소문에 접하면 케이드는 일찌감치 현장을 찾아가서 목좋은 곳에 자리잡고 앉아서 왁자지껄하게 진행되는 혼례의 각 장면을 세세히 관찰하며 실감있게 글로도 썼으려니와 그림을 마치 사진을 촬영하듯 자세하게 그렸습니다. 케이드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랑 신부 말고도... 큰 솥에 펄펄 국수를 끓여서 오는 손님마다 한그릇씩 퍼주고, 손님이 먹다 남은 것을 다시 솥에 붓기도 하는가 하면, 옷 치장도 못하고 하루종일 일만하는 신부의 어머니, 애들을 모조리 들쳐업고 끌고 드낙거리는 동네 아낙들, 마당에서 천방지축 신나게 노는 애들 하며… 한폭의 풍속도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 Country Wedding Feast, 1921 / By Elizabeth Keith ▷ 아래 그림은 보시다시피 1938년에 그린 그림인데, 케이드는 정밀하고 세련된 필치로 새색시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대부분 유화도 수채화도 아닌 칼라 에칭화입니다. 어쩌면 생전 한번도 보지 못한 신랑을 처음 만나는 혼례식날, 하루종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눈을 내려깔고 웃지도 못하며 하루를 지내는 새색시를 이 벽안의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측은한 여자”라고 다른 글에서 표현했다는군요. 부모님이 정혼해준 평정배필을 신혼초야에나 겨우 촛불밑에서 흘깃 바라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애처로운 새색시의 모습을 오늘날 이땅의 여성들은 과연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상상만 해도 시쳇말로 생뚱맞다고 할 수밖에요... ▲ Korean Bride / By Elizabeth Keith, 1938 ▷ 아래의 그림은 제작 연도가 1919년이니 아마 케이드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려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체있는 집안의 부인이 정장을 하고 어느 대가집 혼인잔치에 참석하여 홀로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그 당시 벌써 점차 사라져가는 한국 고유의 풍습을 아쉬워하며 열심히 스케치하던 백인 처녀 화가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의 까마득한 옛날 이땅의 풍물을 벽안의 화가가 그리고 있던 모습을.... ▲ Wedding Guest, Seoul / By Elizabeth Keith, 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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