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③
홈 > 블로그 > 내 블로그 > 한국전쟁
내 블로그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③

fabiano 0 2285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사진(3)
 
아래의 포스팅은 국립중앙도서실에서 미국의 NARA의 기록사진자료실의 수많은 사진박스 속에서
찾아 낸 전쟁 중의 인간군상- 피란민, 고아, 군인들(국군, 유엔군, 인민군), 종군기자, 민간 노무자들의
모습과 전쟁의 와중에 다시 열린 장터, 상여꾼, 추수 중인 아낙네들 등 전쟁 중의 삶의 모습이 담긴 기록사진이다.

000061.jpg
 
미군들을 위한 한국 민간 단체의 위문 공연. 1950년 7월30일.

 

000062.jpg
 
부상당한 북한군 포로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인천 포로수용소 병원 운동장에 모여 있다.
전쟁 포로(POW, Prison of War)를 뜻하는 POW글자가 땅바닥에 쓰여져 있는 것이 보인다. 1950년 10월3일.

 

000063.jpg
 
서울을 떠나 피난길을 떠났던 난민들이 나룻배를 타고 다시 한강을 건너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1950년 10월2일.

 

000064.jpg
 
나룻배로 한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피난민들. 1950년 10월2일.

 

000065.jpg
 
대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떠나는 평양 시민들. 1950년 12월3일.

 

000066.jpg
 
얼어붙은 한강 피난길. 무너져 내린 한강 철교. 1950년 12월28일.

 

000067.jpg
 
한국군 6사단 야전 병원의 간호병들이 초겨울 툇마루에 나와 햇볕을 쪼이며 휴식을 즐기고 있다. ' 6사단 야전 병원은
평양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이진동 중위가 지휘관으로 있는 병원' 이라는 사진 설명이 곁들여 있다. 1950년 11월29일.

 

000055.jpg
 
감시 받고 있는 북한군 포로들' 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사진.
장소는 밝혀져 있지 않고 촬영 날짜만 1950년 7월1일이라고 적혀 있다.

 

000056.jpg
 
열차 화물칸에 올라탄 피난민들.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남자, 남정네들 틈에 끼어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근심스러운 낯빛의 아낙네 등 전쟁이 빚어낸 한순간의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50년 7월5일.

 

000057.jpg
 
전란을 피해 대전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전쟁 소식을 얻기 위해 미 문화관 앞에 모여 있다. 미 문화관 안에서는 남한의 정부 관리들이 피난민 집결과 이동 상황 등을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1950년 7월6일.

 

000058.jpg
 
노획된 북한군 장비가 밧줄에 묶인 채 기차 야적칸에 실려 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미 병사. 1950년 7월10일.

 

000059.jpg
 
한국군 1군단 1사단 소속 병사들이 한 폐가 입구에 지뢰를 묻고 있다. 1950년 7월22일.

 

000068.jpg
 
안동 부근 낙동강변 산 언덕에서 진지 구축 작업을 하다 휴식중인 민간인 노무자들. 1951년 1월17일.

 

000070.jpg
 
<런던 노동자 신문(London Daily Worker)> 소속 공산군 측 종군 기자인 앨런 위닝턴(Allen Winnington)(파이프를 문 이)과
함께 공산군 측의 최종 휴전협정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유엔군 참전 기자들. 1952년 10월 9일.

 

000071.jpg

 

포로 교환 장소를 협상하기 위해 판문점 중립지대에서 만난 유엔군 측 협상 대표 클라이드 영(Clyde G. Young) 미군 대령과

북한군 측 오흥산 상좌. 1953년 4월12일.

 

000071a.jpg

 

000072.jpg
 
휴전 협정 서명을 나흘 남겨놓고 한창 공사중인 조인식장 건물. 그동안 협상장으로 사용해 왔던 새 건물 터 뒤쪽의 목조 건물은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될 조인식장으로 쓰기에는 장소가 비좁아 새 목조 건물을 따로 짓게 되었다. 1953년 7월 23일.

 

000073.jpg


휴전 후 포로수용소에서 인천항으로 수송되어 온 인민군 포로들. 삼엄한 감시 속에 LST에서 내리고 있다. 이들은 인천에서

판문점으로 이동, 포로 송환 협정에 따라 북한으로 돌아갔다. 미군은 ' 빅 스위치(Operation Big Switch)' 라는 작전명으로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유엔군 포로들과 남한에 수용되어 있던 공산군 포로들을 교환하는 군사 작전을 펼쳤다. 1953년 8월 8일.

 

000074.jpg
 
휴전 후 중국군 반공 포로들은 고향이 아닌 대만을 송환지로 택했다. 대만으로 향하는 수송선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중국군 반공 포로들. 1954년 1월22일.
 

 

000076.jpg
 
휴전 협정 예비회담장으로 쓰였던 개성의 한옥. 1951년 8월20일. 같은 해 10월25일 휴전 협정 회담장은 판문점으로 옮겨진다.

 

000081.jpg
 
부산 포로수용소 제1캠프에 막 입소한 한 포로가 바지 앞단을 연 채 디디티 소독을 받고 있다. 1952년 3월24일.


 

000082.jpg
 
미 군용 침대로 만든 좌판 위에 옷감을 늘어놓은 길거리의 작은 포목점. 1951년 3월19일.
 
000083.jpg
 
1951년 이른 봄, 폐허가 된 전주의 한 마을 길가에서 모닥불을 쬐는 아이들. 1951년 3월1일.

 

000084.jpg
 
유엔군 초병들이 강 건너편에 집결하고 있는 수송대 차량을 바라보고 있다. 1951년 3월1일.

 

000089.jpg
 
개성 휴전 예비회담 열이틀째 날인 1951년 7월13일, 회담장 마당 촬영기 옆에 서 있는 중국군 젊은이.

 

000085.jpg
 
고무신을 팔고 있는 대구의 한 노점상. 1951년 3월1일.

 

000086.jpg
 
피난길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전주의 한 가족. 1951년 3월1일.

 

000088.jpg
 
개성 휴전 예비회담장의 한 사무실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북한군. 1951년 7월13

 

000087.jpg


눈이 채 녹지 않은 1951년 3월1일 이른 봄, 전주.

 

0 Comments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1,093 명
  • 오늘 방문자 2,608 명
  • 어제 방문자 2,773 명
  • 최대 방문자 15,226 명
  • 전체 방문자 1,662,857 명
  • 전체 게시물 10,948 개
  • 전체 댓글수 35,463 개
  • 전체 회원수 74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