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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사진 (2)

fabiano 0 2774  
 아래의 포스팅은 국립중앙도서실에서 미국의 NARA의 기록사진자료실의 수많은 사진박스 속에서
찾아 낸 전쟁 중의 인간군상- 피란민, 고아, 군인들(국군, 유엔군, 인민군), 종군기자, 민간 노무자들의
모습과 전쟁의 와중에 다시 열린 장터, 상여꾼, 추수 중인 아낙네들 등 전쟁 중의 삶의 모습이 담긴 기록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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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병사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지긋이 두 눈을 내리깐 채 곁불을 즐기는 털모자의 노인. 1950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서울 근교. 이 노인과 모닥불 온기를 나누고 있는 미군들은 미 제1기갑사단 8기갑연대 소속 병사들이다.
1950년 12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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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의 남진을 피해 다시 서울을 떠나는(1.4후퇴 직전) 피난민 대열. 이고 지고 들고 떠나는 단촐하기 짝이 없는
여느 피난 보따리에 비해 차곡차곡 잘 꾸려져 우마차에 한가득 실린 피난 짐더미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1950년 12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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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5일, 서울을 등지고 남쪽으로 뻗친1· 4후퇴 피난민 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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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 실은 배가 들어오기 직전의 부산 항만. 피난민 틈에 섞여 있을지 모를
가족이나 친척을 찾기 위해 선착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
1951년 1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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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의 구호품 선적선이 실어온 옷가지들을 배급받기 위해
1만2천500여 명의 포항 시민들이 시청 앞에 모여들었다.  1951년 2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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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템 : 이미지미 해병대 1사단이 설치한 구호품 배급소에서 옷가지, 신발, 장난감 등을 한두 점씩 받아든 피난민 아이들.
1.4후퇴 직후인 1951년 2월15일 촬영된 사진이다. 전란의 참화를 피해온 8천 명 피난민 아이들 중
일부인 이들은 한결같이 계집아이들은단발이고, 사내애들은 까까머리들이다.   1951년 2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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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겊으로 둘러멘 기관총 부대 집결지로 가는 한국군 7사단 5연대 소속 기관총 사수들.
1951년 2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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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벨기에 군인들이 상여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1951년 2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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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국군 장교가 전주의 사단 본부 마당에서 대형 지구본을 놓고 한국 전쟁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1951년 3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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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재수복 직후인 이른봄, 장터 길거리에 좌판 약국을 다시 연 노인.
전란의 생필품으로 인기를 모았던 디디티도 보인다.  1951년 3월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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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재탈환되면서 장터도 다시 열렸다. 쌓아올린 4단 좌판과 양철통에 그득한 김치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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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ME 뉴스 픽쳐 서비스의 사진 기자 짐 힐리(Jim Healy) (안경 쓴 이)가 개성 정전협정 회담장으로 들어가는
인민군 해병 장교들을 촬영하고 있다.  1951년 7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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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근처의 논에서 추수를 하고 있는 두 아낙네.
논두렁 위로 헌병 두 명이 걸어가고 있다.  1951년 10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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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 하역장에서 탄약을 옮기는 한국인 노무자들. 1950년 7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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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에서 막 수송되어 온 미제 105밀리미터 곡사포를 전선으로 급히 이동시켜 가는 한국군.
1950년 7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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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행 피난길을 재촉하는 피난민들.  1950년 7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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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은 전방으로, 피난민은 후방으로. 6·25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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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전선을 순찰중인 미 24사단 24정찰대 소속 M-24 탱크 승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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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한 마을에 진주한 미군을 환영하는 주민들.  1950년 9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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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쪽. 전란 3개월만에 잿더미뿐이다. 1950년 9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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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에 이은 서울 수복 직후의 서울역 앞 남대문 전차길.  195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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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민간인 학살 현장. 시신더미 속에서 남편을 찾아낸 한 여인.  1950년 9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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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에서 만든 지게로 탄약을 운반하고 있는 미 병사와 한국인 노무자. 편안한 모습으로 지겟짐을 능숙하게 지고
서 있는 한국인과 어정쩡한 자세로 두 다리를 버틴 미 병사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다.
1953년 2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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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회담장 유엔군 측 지역에서 영국 종군 기자 에릭 다운톤(Eric Downton)(맨 왼쪽)과 네덜란드 종군 기자
알프레드 반 쉬프링(Alfred Van Spreng)이 북한군 파견장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있다. 1951년 7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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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국군 병사가 빈 민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밥상 앞에 늘어 놓은 것은 일본에서 생산된 전투 식량들이다.
1951년 8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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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군과 유엔군 양측의 휴전 협정 파견장교들이 지도 위에 군사분계선을 그리고 있다. 조선인민군 장춘산 상좌와(왼쪽)와 유엔군을 대표한 미 해병대의 제임스 머레이 대령.
1951년 11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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