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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 핀란드전쟁 (Soviet-Finnish War) (2)

fabiano 0 1547  

 소련 - 핀란드전쟁 (Soviet-Finnish War)  (2)

 

大戰 초기인 1939년 10월, 소련은 유럽의 전화(戰火)에 말려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웃 나라인 핀란드에게 상호원조조약 체결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소련은 특히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방위를 위하여 핀란드에게
국경선의 변경과 핀란드의 만구(灣口)에 있는 항코港을 군사조차(軍事租借)하는 대신
소련 영토인 동부 카레아에 그 두 배에 해당하는 땅을 할양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이 역시 거절당하였다.

 

당시 핀란드 정부는 영국·프랑스·미국이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강경한 태도로 맞섰다.
1939년 11월 28일 소련의 모로토프 외상은 국경분쟁 사건을 발단으로 1932년에 체결된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핀란드에 대하여 개전(開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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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의 국경에 가까운 텔리오키에 쿠시넨의 친소(親蘇)정권인 핀란드 민주공화국 인민정부가 수립되고,
소련 정부는 이와 제휴하여 전투를 계속하였으나 만넬하임(Mannerheim) 元帥가 지휘하는
핀란드軍의 끈질긴 저항을 받고 고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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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프랑스·미국의 신문들은 소련을 일제히 비난하였고 국제연맹은 소련을 침략국으로 몰아 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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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는 핀란드를 돕기 위해 출병을 준비하였고 미국도 소련에게 금수(禁輸)조치를 취하여
국제적인 대(對)소련전쟁으로 발전하려는 양상을 보였으나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독일의 압력을 받고
영국·프랑스 군대의 국내 통과를 거부한 데다 당사국인 핀란드와 소련은 말할 것도 없고
중부 유럽 여러 나라의 여론이 전쟁의 확대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1940년 3월에 강화가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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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소련의 당초의 요구를 무상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브이보르그 이남의 땅을 할양하였다.
그러나 1941년 6월 히틀러에 의한 독·소전쟁이 개시되자 핀란드도 재빨리 소련에 선전(宣戰)하여
잃었던 땅을 되찾기 위하여 일어섰다. 이것을 제2차 소련핀란드전쟁(1941∼1944)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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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농담에 만넬하임에 관한 우스개가 있다.
 
 만넬하임(Mannerheim, 소련-핀란드 전쟁 당시, 핀란드군 총사령관. 후에 핀란드 대통령이 됨), 히틀러, 무솔리니가 베를린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식사 도중 누구의 병사들이 가장 용감한가에 대해서 입씨름이 벌어졌다.

히틀러가 주장하기를 "독일의 병사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오" 하고는 자신의 경호대원 하나에게 창문에서
뛰어 내리라고 명령했다. 그 병사는 "하일, 히틀러!" 하면서 주저없이 뛰어 내렸다.
이에 질세라, 무솔리니도 자신의 경호대원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무솔리니의 병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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