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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표 산나물, 아들이 보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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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물을 펼쳐 말리는 어머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2007 강기희

산나물은 어머니를 위한 것, 팔 수는 없어

밤이 제법 깊었다. 조용한 시간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던 일을 멈추고 거실로 나가본다. 평소 같으면 한밤중일 시간인데 어머니께서 깨어 있다. 거실 바닥엔 냉장고에서 꺼낸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이거 뭔데?"
"어, 냉장고에서 꺼낸 것들이다."
"냉장고? 이건 산나물이잖아?"

어머니는 냉동실에 얼려놓은 산나물을 죄다 꺼내놓고 있었다. 그것들은 지난해 봄 산자락을 헤매며 뜯는 산나물이었다. 삶아서 말리기보다 살짝 데쳐 얼려놓은 것이라 요즘 같은 계절엔 구할 수도 없는 귀한 것들이었다.

"말려서 팔았으면 해서 꺼냈다."
"이걸 팔겠다고?"
"그래, 냅두면 뭐하니."

어머니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얼음덩어리처럼 굳어 있는 산나물을 녹이고 있었다.

"안돼!"
"안되긴, 나물이야 봄에 또 뜯으면 되지."
"이거 얼마나 귀한 건데, 장터에 가서 사려고 해도 없는 나물이야. 이렇게 귀한 거 집에서 먹어야지 왜 팔아."

산나물로 인해 어머니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어머니는 말려서 팔자고 하고 아들은 절대 안 된다며 버텼다. 냉동실에 넣어둔 산나물은 말린 것과 달리 녹이면 산나물 특유의 향기를 그대로 맡을 수 있는 그야말로 귀한 산나물이었다.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산나물

말린 산나물이야 장터에 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생으로 보관한 산나물은 돈을 아무리 준다 한들 살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산나물을 냉동실에 보관하는 이들이 없기도 하지만 먹으려고 보관했던 것을 팔 사람도 없기 때문이었다.

산나물은 나물취를 비롯해 엄나무 순인 개두릅과 곤드레나물, 참두릅, 미역취, 딱주기 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것들을 뜯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머니는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돈이 아무리 궁해도 먹을 건 먹고 삽시다. 우리도 맛있는 거 먹으면서 살아야지."
"요즘 장터에서 팔 게 없어 그러는데 안 되겠냐."

어머니의 말에도 아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기실 산나물은 아들을 위해 마련해둔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산나물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보관해둔 것이었다. 예전 어머니와 따로 살던 때도 아들은 해마다 봄만 되면 어머니를 위해 산나물을 보내곤 했다.

날 것을 그대로 보내면 한 번에 다 드시기에 데친 것을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한 달 분량씩 나누어 보냈다. 산나물을 뜯을 수 없으면 고향인 정선 장터까지 가서 사서라도 그렇게 했다.

냉장고에 보관한 산나물도 작년 5월부터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마련해 놓은 것들이었다. 어머니가 반찬이 없거나 입맛이 없을 때 한 묶음씩 꺼내 드시라고 보관해둔 것인데 그것을 팔자고 하니 아들도 슬그머니 부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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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동실에 보관해 놓았던 2006년의 봄. 산삼 부럽지 않은 맛을 간직하고 있다.
ⓒ2007 강기희
더구나 보관할 공간이 없어 말려둔 고사리나 나물은 이미 어머니가 장터에 가지고 간 터라 집엔 먹을 산나물도 없었다. 더구나 며칠 뒤면 오곡밥을 먹어야 하는 정월대보름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집에서 먹어야 할 것까지 팔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건 어머이 드시라고 냅둔 거지 팔자고 한 게 아니여. 그러니 팔면 안돼."

아들의 확고한 표정에 어머니는 산나물을 다시 냉장고에 넣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지난 1월 말에 있었던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안 되겠다, 산나물 팔아 쌀이라도 사자"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머니는 그 사이 몇 번이고 내게 눈치를 줬다. 괜히 냉장고 문을 열고 닫거나 장날 팔 게 없다며 푸념을 했다. 그럴 때면 아들은 슬며시 자리를 떴다.

지난 2월 초 어느 장날엔 가지고 나간 것들을 하나도 팔지 못해 빈손으로 들어온 일도 있었다. 그런 날은 어머니와 아들은 몇 마디 대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손을 가늘게 떨면서 시종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하루종일 장터 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하나도 팔지 못하는 일이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날이면 점심식사까지 하지 않아 아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아무리 그래도 식사는 해야지. 굶어 가면서 그럴 일 뭐 있어. 앞으로도 그럴 거면 장터에 가지마."
"심심한데 뭐하냐, 노는 거면 조금씩이라도 움직거려야 건강하지."
"건강하자고 장터 나가면 식사는 제때 챙겨야지."
"오늘은 하나도 못 팔았으니 그렇지.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식이라고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삶에 아무 도움도 못 되어 드리니 그게 더 비참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자식들은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관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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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나물을 발에 널어 말리고 있다.
ⓒ2007 강기희

설 명절을 보내고 어머니는 다시 냉장고에 든 산나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눈치를 모를 리 없는 아들은 그때마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것을 어머니가 쓴다고 하는데, 어머니 뜻대로 하게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잃어가는 어머니의 입맛을 살려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무심한 날이 며칠 더 흘러갔다. 사흘 전이었다. 아침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깨어보니 어머니께서 냉장고에 있는 산나물을 꺼내놓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팔아서 쌀이라도 사 먹어야지."

어머니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산나물을 팔아 쌀을 사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아들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쌀이 떨어져 가고 있었구나. 그 순간 아들은 어머니께 산나물을 두고 드시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해. 나물로 쌀 바꿀 수 있다면 그게 더 낫겠지. 나물이야 봄에 또 뜯으면 되지 뭐."

아들의 말이 있자 어머니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산촌에 살았던 어머니이지만 산나물은 아들이 더 잘 알았다. 무서움을 많이 탔던 어머니는 예전부터 산나물을 뜯으러 갈 엄두도 못 냈던 사람이다.

"꺼먼 건 뭐냐?"
"그게 곤드레여. 어머이가 좋아하는 거잖아. 그거 좀 남겨둘까?"
"됐다, 이왕 팔려면 다 팔지 남겨서 뭐하누."

아들은 산나물을 종류별로 구분해 놓았다. 어머니는 그것들을 밖에 내다 널었다.

"그냥 팔지?"
"대보름인데 말려서 팔아야지."

그냥 먹는 게 더 맛있는 것을 어머니는 굳이 말리려고 했다. 말리고 나면 그것이 자연산인지 수입품인지 사람들이 알 까닭이 없는데 어머니는 말리기를 고집했다. 어쨌거나 이제부터는 어머니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생각에 어머니가 하는 일을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장터 나간 어머니 얼굴이 봄꽃처럼 환하게 피어났으면...

말린 나물들은 나물을 날것으로 오래 보관할 수 없어 말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어머니는 모르는 듯했다. 날 것으로 애써 보관했던 나물이 말라가는 과정을 보는데 마음 한켠이 뭉클했다.

장터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이 먹어야 할 것을 먹지 않고 가지고 나온 어머니의 나물을 귀한 것이라고 이해할까. 혹여 누군가는 나물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할머니, 이건 수입산이죠?"하며 어머니의 속을 뒤집어 놓지는 않을까.

어머니가 아무리 "이거 우리 아들이 가리왕산에서 고생스럽게 뜯은 거여"라며 며칠 전 냉장고에서 꺼내 말린 것이라고 한다고 믿어줄까. 누군지 어머니의 말을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정선 장날을 맞아 장터에 나갔다. 해가 떠오르기도 전인 오전 7시였다. 장터는 여러 곳이 비어 있었지만 어머니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장터에 어머니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쉬는 사람이 있어 그 자리라도 넘겨받아 아들이 아끼던 나물 다 팔았으면 좋겠다. 산나물 판돈이 쌀이 되든 자반고등어가 되든 어머니의 얼굴이 봄꽃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그런 하루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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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이 뜯은 어머니표 산나물. 품질은 아들이 보증한다.
ⓒ2007 강기희


[오마이뉴스 강기희 기자]

2 Comments
남해지킴이 2007.03.24 16:07  
자신이 좋아하지만 항상  가족을 생각하는 어머님이 계셔서 푸근 합니다.
fabiano 2007.03.24 17:43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안하는 자식넘들이 이 글을 읽고 무엇인가를 깨달았으면 좋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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