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스터즈(The Kim Sisters)와 프랭크 시나트라
김시스터즈 멤버는 숙자, 애자와 이난영씨의 오빠(작곡가, 이봉룡) 딸인 민자씨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한국전쟁 휴전직후, 1954년에 미군부대에서 연예활동을 시작하였다.
숙자, 애자씨는 고전음악 지휘자이며 대중가요 작곡가로 활동하던 아버지 김해송(1911-1950)씨와
해방 전부터 <목포의 눈물>로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어머니 이난영(1916-1967)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해송씨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공산군에 납치되었다.
어머니 이난영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미군부대에서 가수생활을 하던 중,
노래에 재능이 있는 숙자, 애자 두 딸과 조카 민자를 가수로 키우려는 생각이 떠올랐다.
두 딸과 조카 민자는 영어를 몰랐으나 노래로써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당시, 13살, 12살, 11살이었던 세 아이들은 첫 노래로 호기 카마이클(Hoagy Carmichael)의
, 를 불렀다.
초기의 로큰롤과 대중적인 노래를 부르게 된 김시스터즈 자매들은 정기적인 공연을 하였다.
1958년, 김시스터즈 자매의 재능을 발견한 미국의 에이전트가 라스베가스 선더버드 호텔의 쇼에
출연 계약을 맺었으며 월 400$의 보수를 받았다. 선더버드호텔 공연 1개월 후, 김시스터즈는
라스베가스의 유명 호텔에서 출연교섭이 들어 오기 시작했으며 클럽 스타더스트 에서 8개월 공연하였다.
1959년, 김시스터즈는 유명한 Ed Sullivan show에 출연,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김시스터즈>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4년 동안 <김시스터즈>는 에드 설리반 쇼에 22회 출연 하는 등
가장 인기있는 연예인 중의 하나로 성공의 가도를 달려왔다.
또한 , 등의 유명 잡지와 다른 잡지에서도 다투어 <김시스터즈>의 특집을 게재하였다.
노래를 불러 미군병사들에게서 초컬릿바를 받던 그 시절의 <김시스터즈>가 주당 13,000$의 출연료를 받는
성공적인 연예인이 되었다.
<김시스터즈>는 춤도 잘 추었고 28개나 되는 수많은 악기들을 다룰 줄 알았으며 라스베가스 어느 곳에서나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활동하던 중 70년대, 자매들의 결혼과 함께 화려했던 <김시스터즈>의 시대를 마감하였다.
The Kim sisters.
밥 호프. 오른쪽에 윤복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