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 恨많은 부산 피난살이
그때 그 시절 - 恨많은 부산 피난살이
1950. 6. 25. 새벽,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약, 3년 여에 이르는 기간은 정말, 피눈물나는 세월이었다.
필자도 당시, 어린 시절이었지만 질곡의 그 시절은 여전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래의 사진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름을 알 수 없는 美軍이 촬영한 것으로 질곡의 그 시절을
사진으로 잘 말하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1) 1953년. 부산 어느 길거리의 풍경으로 길가에는 음식을 파는 아낙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지게를 진 사람이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이고 열살 남짓의 한 소년이 털빠진 군용담요로 만든 의복을 입고 서 있다.
그 시절엔 모든 것이 품귀했고 특히, 먹거리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짬빵을 걸러 만든 <꿀꿀이 죽>도 한몫을 했다.
(2)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흔히 <14후퇴>라고 불리던 당시, 북한 전역에서는
남한으로 피난민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부산지역으로 몰려 들었다.
(3) 해산물을 위탁 판매하는 海陸(해륙), 海通商社(해통상사)의 간판이 보이는 건물을 배경으로
길거리에서 여러가지 물품을 파는 좌판 장사꾼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질곡스런 그 시절의 모습과 대조된다.
(3A) 이 사진은 위 (3) 사진과 동일한 장소로 길 건너 기와집의 벽에 <해륙물산> <해통상사> 라는 상호가 씌여있다.
(4) 1953. 영도다리 입구의 좌판 풍경. 그 시절, 전화선 일명 삐삐선이라는 전선으로
장바구니를 만들어 팔기도 했으며 꽤나,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5)
(6) 1953.
(7) 부산 역(驛).
(8) 부산 역전.
(9) 배경의 언덕에 당시, 해병대 사령부가 있었다. 이곳은 부산 국제시장 네거리로 추정한다. 1953.
(10)
(11)
(11A)
(11A1) 대신동.
(11A2) 대신동
(11B) 왼편에 영도로 가는 영도다리가 보인다.
(11C)
(12)
(13) 사진 (12), (13)은 행정구역상, 동대신洞 이다.
(14) 1952년 부산 소재, 美軍 21 후송병원. 이 부속국민학교는 해방 후, 美軍에 의하여 징발된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네티즌에 의하면 이곳은 당시, <부산사범대학교 부속 국민학교> 정문이라고 한다.
해방 후, 이 부속국민학교는 동대신동으로 이전, 교명을 <화랑초등학교>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5) 美軍 흑인 병사 뒷편 교문 명패에 <부산사범대학교 부속국민학교> 라는 간판이 희미하게 보인다.
(15) 참조 사진.
(16) Pusan Korean War 21st Hosp Wards Mar 1953.
사진 (14) 관련, 美 21 병원의 부속 건물로 추정된다.
(17) 사진 (16)과 동일 장소로 추정된다.
(19) UN軍 묘지로 가는 길.
(20) UN軍 묘지. 1953.
(21) 사진 왼편으로 <美 5공군사령부>가 있으며 사진에 보이지 않으나 그 너머로 못골이 있었다. 아래 참조사진.
참조사진 <그때 그 시절, 부산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