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1940년
만주사변과 中日전쟁의 침략전을 자행한 軍國主義 일본은 마침내 1941년 12월 진주灣을 기습,
태평양戰爭을 도발함으로써 식민지 한국은 前古에 없는 가혹한 시련과 치욕의 암흑기를 맞는다.
1939년의 국민徵用令 공포에 이어 이듬해 봄, 創氏改名을 실시한 日帝는 <東亞> <朝鮮>을 폐간시켜
언론의 自由를 봉쇄하고 徵兵制와 學兵制를 강행하는 한편, 朝鮮語學會 사건을 일으켜 국어말살
정책의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하의 한국문학은 비록 단명이기는 하나 <文章>과 <人文評論>이 창간되어
崔泰應, 林玉仁, 李無影 등의 新人을 내놓고 강제 폐간당하는가 하면, 기성작가들은 암중모색의
몸부림을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김동리의 <昏衢>는 한국 인텔리의 창백한 내면相을 그린 것이고,
황순원의 <별>은 亡國의 恨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무영의 <흙의 노예>는 일제의 植民統治와
地主의 냉혹한 이중 착취 속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小作人들의 생활상을 묘사하고 있다.
기타 다른 작품들도 그 소재는 다양하나 거의 암담한 분위기가 밑바닥에 짙게 깔려 있었다.
또한 당시 文人들의 자세를 유별해보면, 親日派로 훼절한 李光洙와 崔載瑞 등이 <皇道文學>을
표방하고 反민족적 어용단체인 <朝鮮文人報國會>를 조직하는가 하면 安壽吉, 朴榮濬, 毛允淑 등은
間島에서 망명문단을 형성하였고, 廉想涉, 卞榮魯, 吳相淳, 洪思容, 趙芝薰 등은 처음부터 絶筆하고
김동리,이광수,최태응작품활동을 아예 중단하는 등 여러가지 면모를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