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은 가톨릭 최대의 ‘명절’이다. 축하와 덕담이 넘쳐나는 시기다. 교황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2일 이를 바꿔놓았다. 그는 이날 16세기 프레스코화가 가득한 바티칸의 클레멘타인홀에서 교황청 내 기관에서 근무하는 추기경·주교·사제 등을 강하게 질타했다. 언론들이 “준엄한 비판”(영국 가디언)이라고 썼을 정도다.
교황은 먼저 “교황청을 전세계 교회의 작은 모델이자 하나의 ‘몸’(신체)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곤 교황청이 15가지 질병에 걸려있다고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영적 치매’ ‘정신분열증’ ‘장례식에 간 듯한 얼굴’ 등의 다채로운 수사를 동원했다.
교황은 “불사(不死)의 존재로 병에도 안 걸리며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자기도취부터 지적했다. “자기 비판과 자기 갱신, 자기 혁신이 없는 교황청은 병든 육체”란 이유에서다. 교황은 또 영적·정신적으로 경직되는 것 또한 질병으로 꼽았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이와 함께 축하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감성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제들이 신과의 만남을 잊는 걸 영적 치매로 규정하며 “이곳 그리고 바로 지금만 생각한다. 자신의 열정·변덕·광기에만 의존한다. 주변에 담을 쌓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우상의 노예가 된다”고 진단했다. 지위 고하를 나타내는 제의(祭衣)의 색깔과 존칭, 외양을 삶의 1차적 목표로 삼는 듯한 태도도 우려했다.
교황이 ‘존재론적 정신분열증’이라고 명명한 병도 있다. 이중생활·위선 등이다. 교황은 “영적 빈곤함과 진부함의 전형적 모습”이라며 “이런 질환에 걸리면 목회자로서의 봉사를 포기하고 관료적인 일에만 몰두하며 실제 사람들과의 접촉을 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장례식에 간 듯한 우울하고 딱딱한 표정은 가톨릭 신도는 물론이고 행정 조직과 교구 등 개인과 조직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말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십’을 테러에 빗댔다. 그는 “직접적으로 말할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이 사람들 뒤에서 말한다”며 “험담은 사탄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또 전체보다는 파벌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는 ‘암’으로 비유했다. “구성원을 노예로 만들고 (조직의) 균형을 깬다”는 의미에서다. 이와 관련 AP통신은 “2012년 교황청 집사가 기밀 문서를 폭로한 사건에 대해 전임 교황 베네딕토16세가 3명의 측근 추기경들에게 밀령을 내려 진상 조사를 한 결과 때문일 것”이라 분석했다. “조사단은 교황청의 권력 투쟁과 음해 등 온갖 비리를 조사했으며 그 결과는 두 명의 교황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 조직이나 조직원들에게도 적용될 법한 얘기도 했다. “일만 열심히 하지 말라”거나 “계획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세우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보스에 대한 지나친 찬미도, 과도한 물질적 추구도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바티칸의 관료주의에 물들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선 교황청의 개혁이 더 절실한 과제일 수 있다. 더욱이 교황이 올해 이혼·동성애 등 가족 이슈에서 교회가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가 오히려 반발만 사고 물러난 일이 있었다. 당시 바티칸 주변에선 “바티칸 내 일부 전통주의자들의 저항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날 발언을 일종의 ‘개혁 연두교서’ 쯤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바티칸 전문가인 카를로 마로니는 “교황청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하겠다는 교황의 성명서”라며 “개혁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교황의 의도, 원칙들은 제시했다”(뉴욕타임스)고 평가했다.
이날 교황청 인사들은 대개 어두운 표정이었고 연설 후에도 아주 어색하게 박수를 쳤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