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선생과 영어
황보(皇甫) 선생과 영어(英語)
황보(皇甫) 선생님.
성씨는 황보, 이름은 찬(燦)이시다.
그러니까 황보선생님을 만난 것은 61년 초반, 중학교에서였는데 영어과목을 담당하셨다.
6.25전쟁 통에 부산으로 한많은 피난살이를 하던 시절에 전장터로 향하는 열차엔 미군들이
던져주는 검, 초컬릿, 비스킷, C레이션을 받아먹느라 그들과 말도 안되는 엉터리 영어로
"할로, 오케이, 찹찹?"
"유 아 베리베리 굳!"
손짓,발짓을 해가며 그들이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지만 그래도 몇마디는 알아 듣는지
웃으면서 손짓하는게 통하는 것이라고 자부심(?)을 가진 기억이 난다.
열차가 지나는 건널목 너머로 큰 제재소가 있었는데 그 뒤가 삼일극장이어서 동네 형들과 월담하여
그 시절에 상영되는 영화는 거의 다보았었다.
1952. 부산 피난시절의 범일동.
(* 제 대문사진의 뒷쪽에 당시의 제재소가 있고 목재 쌓은 곳 뒤쪽에 삼일극장이 있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양키파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론레인저>, <OK목장의 결투>...등등
내용도 모르고 그저 본 것이지만 영어로 나오는 대사가 몇마디는 들은 풍월로 귀에 익었고
자주 접하는 영화속의 풍경인지라 눈에도 친밀한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의 도시가 낯설지 않았다.
아뭏튼 월담하여 본 미국영화는 배우며 감독의 이름을 줄줄이 꿸 정도로 헐리웃 키드가 되었는데
59년도에 한적한 고향마을로 이사오면서부터 필름없는 영사기가 되었다.
두어 해의 국민학교 생활을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영어를 배우게 되었는데 진작에 영어에
대해서는 시골촌놈들보다는 한발 빠르게 풍물을 접한지라, 당연히 월등하게 촌놈들보다는 실력이
나았고 여기에 미국까지 다녀오신 황보선생을 만났으니 금상첨화격이었다.
당시의 영어교과서는 고광만 지음의 <Standard English>, <Union English>, <Advanced English>...
등의 교과서가 쌍벽을 이루었는데 우리는 <Standard English>를 배웠다.
< I am a boy.>
< You are a girl.>
<What is your name?> <My name is Lee Jong Cheol.>
< What?>
⊙.⊙....?
<Oh, My name is Jong Cheol Lee.>
서양식으로 이름을 거꾸로 하는 것을 잠시 망각했더니 대뜸 <What?>.....
이 황보선생께서 발음에 상당히 무게를 두어 조금만 틀리면 불호령을 내렸는데 급우들 모두가 앵무새마냥
무조건 따라하는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워낙 열악한 시골 중학교의 형편이니 스파르타식으로
달달 외우게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서 황보선생의 학습방법이 숙제로 그날 배운 <Lesson 12> 문장을 통째로 외워 오라는 것이었는데
영어수업 시간에 교과서 안쪽에 만화나 다른 소설을 읽는 시골촌놈들이 얼마나 황당해 하는지....
다음 날, 남녀공학의 오십여명이나 되는 학급에서 나와 함께 달달 외운 서너명 빼놓고는
죄다, 앞산봉우리에 열번이나 구보를 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거의 십년 가까운 세월을 부산에서 보내며 매일같이 보는 美軍들이며
영화구경은 영어학습의 기초를 단단히 만들어 준 셈이지요.
5일장이 열리던 그 시절, 장마당엔 책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50년대의 조잡한 인쇄로 박은 <장화홍련전>
<임꺽정전> <홍길동전> <조웅전> 등의 소설류와 <아리랑> <여원> <학원> 등의 잡지와 함께 구석진 곳에
안현필 著 <五力一體英語>
理想社에서 발행한 영어콘사이스와 <五力一體 英語> 참고서도 자리잡고 있었는데 모친을 졸라서
콘사이스와 영어참고서를 구입하여 재미있게 공부를 한 추억이 생각납니다.
이 글은 2008년 1월 15일 조인스 블로그에 올렸던 포스팅으로 조회 수, 1465회 추천 14 댓글 32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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