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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발전에 대하여 >........마광수

fabiano 0 1288  

< 1 >

시저가 독재정치를 하면서 로마의 황제가 되기를 꿈꾸자, 브루투스는 공화제를 살리기 위해 시저를 암살했다. 시저가 칼을 맞아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부르짖었다는 말, “브루투스, 너 마저도!”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브루투스는 시저의 심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저를 죽였다. 사정(私情)보다 대의를 중시하겠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시저의 부하였던 안토니우스의 대중 연설 때문에 곧바로 역적이 되어야 했다. 안토니우스는 시저의 유언장을 로마 시민들 앞에서 공개하여 시저의 불타는 애국심을 상기시킨 결과, 브루투스는 ‘나쁜 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브르투스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안토니우스에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


시저의 죽음은 공화정을 부활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제정의 확립을 촉진시켰다. 시저 사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티격태격 싸우더니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했고, 잇따른 내전에 지친 로마 국민들은 옥타비아누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18세기 말 루이 왕조의 학정에 지친 프랑스 국민들은 혁명을 일으켜 루이 16세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출범시켰다.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할 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국민들은 열정과 희망에 들떠 조국의 ‘민주화’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가 등장하여 공포정치를 실시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처형하자 점차 실망하게 되었다. 또한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끊임없는 내전 또한 ‘민주화’에 대한 회의와 염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로베스피에르 이후 치열한 권력 다툼 끝에 암살과 처형이 반복되자 돌연 나폴레옹이 나타났다.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를 통해 황제로 선출되고 국민들은 왕정복고를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3선 개헌 이후 독재정국을 굳혀나가자 4.19 혁명이 일어났다. 이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이기붕은 아들 손에 죽었고 이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했다. 곧바로 ‘단군 이래 최대로 자유가 보장됐던’ 민주정이 실시됐다. 그러나 잦은 데모와 정치인들의 내분을 핑계로 곧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상하게도 학생세력은 별 저항을 보여주지 않았다. 장면 정권이 아주 짧게 지속되어 너무 성급한 쿠데타라는 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박정희씨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까지 단행해 가며 독재정국을 굳혀나가자 박정희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김재규가 브루투스 처럼 나섰다. 김재규는 박 대통령을 저격했고, 자기는 권력 탈취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민주화에 대한 열망 때문에 박 대통령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1980년 ‘서울의 봄’ 시절에는 곧바로 민주화가 달성되는 듯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두환씨가 등장했고 초고속 대통령이 되었다.


중국의 경우, 한나라 말기에 동탁이 독재정치를 하자 조조 등 지방 제후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동탁을 죽였을 때 국민들은 환호하며 조조를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조조는 동탁 못지 않는 독재자가 되어, 아들 대(代)에 가서 아예 한나라를 없애버리는 단초를 만들었다.


역사는 언제나 지루한 반복의 연속이다. 열렬한 민주화 운동 끝에는 반드시 독재자가 나타난다. 대개는 국민들이 원했거나 방조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를 총통으로 뽑은 것도 국민들이었고, 나폴레옹을 황제로 뽑은 것도 국민들이었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일단 ‘독립’이나 ‘민주화’를 쟁취하고 나면 독재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역사에 길이 남는 진정 명예로운 애국지사가 되려면 일찍 죽는 게 낫다. 김구 선생은 설사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독재정치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사람의 일은 모른다. 그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됐다면 또 다른 형태의 가부장적 독재를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걸출한 지도자’의 도래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자체에 문제가 있다. 요즘도 우리 나라의 몇몇 예언가들은 21세기에 한국에서 ‘세계적인 지도자’가 출현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지도자’나 ‘영웅’이나 그게 그건데, 한 사람의 힘으로 국운의융성이나 세계 제패가 이루어 질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도대체 ‘세계제패’ 따위의 말을 함부로 하는 국수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발상자체가 이 대명천지에 어떻게 가능한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치적 독재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의 독재든 누구나 독재를 원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요, 촌스러운 사회다.



< 2 >

역사는 발전하는가. 사상사를 통해서 볼 때 역사의 진보 또는 발전을 믿었던 낙관주의적사상가들은 대개 귀족신분이거나 기득권 엘리트들이었다.

이성에 의한 역사발전을 믿었던 헤겔은 살아 생전 명예와 지위를 누릴 대로 누렸던 운좋은 사람이었고, 헤겔과는 반대로 염세적 인생관과 부정적 역사관을 가졌던 쇼펜하워는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교수로 출세하는데도 실패했던 국외자였다.


볼테르나 베르그송같은 역사발전론자들도 다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며 별 풍파를 겪지않는 삶을 누렸다. 이성적 낙관주의의 시조라고 할 수있는 데카르트는 온종일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며 사색에 빠져도 사치스런 생활이 보장됐던 유한계급의 인물이었다.


마르크스는 다소 예외가 될 수도 있다. 그는 소망하던 교수자리도 못얻고 평생을 가난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본주의의 당연한 붕괴에 따른 공산주의 낙원의 도래를 확신했다. 그러나 그 역시 부정 적 인간관에서 그의 유토피아니즘을 출발시켰다고 볼 수 있는데, '자본가 들에 대한 미칠듯한 적개심'이 없었다면 그의 사상은 나올 수 없었기 때문 이다. 그러니까 그는 공산주의적 이상사회의 도래를 확신하는 '발전적 역사관' 을 핑계로, 가진 자들에 대한 미칠듯한 적개심과 분노를 교묘하게 해소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민심이 천심'이라할때, 내가 보기에 역사의 발전을 믿는 이들은 '민심'을 형성하는 쪽에 들지 못한다. 그들은 대개 소수의 귀족 엘리트이거나 기득권 문화인들이기 때문이다. '민심' 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민중'들이다.


민중엔 도시의 소시민도 들고 농촌의 농민도 들고 공장의 노동자도 든다. 이런 민중들 대다수는 모두다 역사의 전진방향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세계 도처에서 요즘 종말론적 예언들이 활개치고 기득권 지식인들이 미신이라고 코웃음치는 갖가지 점술(占術)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특히 교회가 많고 절도 많고 유사종교도 많다. 그리고 점술가들이 유난히 활개치며 주요 일간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대개 다 말세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는데, '민심이 천심' 이라고 볼 때, 이런 현상을 그저 '합리적 지성의 미숙 또는 부재에서 오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넘겨버릴 수만은 없다.

이런 현상의 진짜 원인은 아직도 우리나라엔 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나 가렴주구(苛斂誅求)가 많고 법을 빙자한 자유권의 침해가 많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민중들이 생활의 피로에 지쳐 신음하고 있다.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민중들에게 '이성' 을 강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앞으로 닥쳐올 유토피아를 설명해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우리나라 경복궁의 장려한 건축미가 민중들을 배부르게 할 수 없고, 그들의 허기진 성욕을 달래줄 수도 없다. 수세식 변기를 공급해봤자 도시의 소시민들은 여전한 박탈감에 시달리게 마련이고, 고상한 철학책이나 전문서적에 매달리면서도 박사 실업자들은 지성의 상아탑 즉, 대학을 증오한다.


역사는 어쨌든 발전한다는 믿음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실용적 쾌락(또는 행복) 을 무시하고, 전체주의적 힘의 추구나 소수 지배 엘리트의 문화만을 역사 안에 편입시켜 생각하는 자들의 오만한 자아도취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전쟁에서 싸우다 죽어간 억울한 영혼들을 '영령(英靈)'이라고 추켜세우며'역사발전에 이바지한 거룩한 희생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허무하게 죽어간 무명의 졸병들이 사후에 추앙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국은 사후에 오는게 아니라 살아생전에 와야만 한다.


2차세계대전 때를 상기해 보면, 그 전쟁은 독일군에게도 성전(聖戰)이었고, 연합군측에게도 성전이었다. 일본의 가미가제(神風) 특공대원들도 천황의 성전승리를 위해, 그래서 역사를 발전시키기 위해 꽃같은 젊음을 날렸다.


데모하다 죽은 이한열군을 역사발전을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열사로 떠받든들 그에게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비행 사들은 '역사발전' 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투하명령을 받았고, 원폭에 죽어간 히로시마 시민들은 지금 '원자폭탄에 의한 비극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죽어간 의로운 희생자들'로 추모되고 있다.


역사는 물론 발전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문화나 이념의 진보를 구실로 일반 민중들이 끊임없이 희생돼 간 것 이 지금까지의 역사였다.


피라미드의 장려한 건축미보다 피라미드를 짓다 죽어간 노예들의 억울한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역사는 발전할 수 있다. 식욕과 성욕의 고른 충족, 그리고 인권의 고른 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을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의 진보를 말할 수 있다.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171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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