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윤을 기억하며...
오늘 아침에 우연히 웹서핑 중에 쟈니윤의 동영상 토크쇼를 접했는데
1991년도에 <쟈니윤 쇼>가 시작된 지 어언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쇼가 시작되고 나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쟈니윤을 닮았다고 한다.
6.25 피난시절을 부산에서 보냈고 그 시절부터 얼마전까지 부산 서면에 있었던 하야리야부대 부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터라, 헐리웃키드였고 미국을 동경했던 꿈많은 꼬마이기도 했었다.
기회가 되었으면 아마도 쟈니윤 선배처럼 미국에 가서 한가락 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쟈니윤 입니다.'
1991년 서울 방송 개국과 함께 시작한 토크쇼 ‘쟈니윤 쇼’는 한국 최초의 토크쇼라는 수식에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새로운 형식의 심야방송이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방송에서는 금기시 했던 성적 농담을 특유의 어눌한 말투와 은유로 한밤중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묶어놓았다.
“제가 미국에 가난한 학생으로 와서 처음 슈퍼마켓에 갔는데, 깡통에 고기그림이 있어서 사서 먹었지요.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줌을 누는데 자꾸 한 쪽 다리가 올라가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가 먹은 것이 Dog food 그러니까, 개밥이었던 것입니다.”
약간은 실없어 보이지만, 사실 진솔한 경험의 산물이다.
눈물의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뼈있는 농담이다. 그의 조크는 그런 식이다.
“한국 사람만큼 조기, 굴비 좋아하는 민족도 없을 것입니다. 오주~~욱~~하면 조기유학을 보냅니까?”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야 한다고 믿는 그의 풍자적 농담이다.
가벼운 말장난으로 시청자들을 현혹하는 요즈음 개그하고는 다르다.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웃음이 판치는 세상에 자니윤의 진솔한 농담이 그리운 것은 왜일까?
당시를 회고하는 사람들은 쟈니윤 쇼를 통해 명사들의 삶의 철학과 세상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세월이 흘러 이제 예전만한 인기는 아니어도 많은 이들에게 건강한 웃음으로 그는 기억되고 있다.
“제 농담으로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행복하기를 희망합니다. 제 농담을 기억하며 잠깐이라도 웃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