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人의 독립軍 飛行士
fabiano
History &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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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4 21:15
1920년 4월 27일 字의 독립신문에 6인의 비행사가 비행기 앞에 서있는 사진과 함께 "대한이 처음으로 가지는
비행가 6인"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에 의하면 한국의 6인의 비행사들은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비행학교를 1920년 2월에 마치고,
곧 설립된 윌로우드 한인 비행학교에서 연구 교수에 종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쩌면 1921년 도쿄의 오쿠리(小栗) 비행학교를 마치고 1922년 12월 10일 여의도 에서 비행한
안창남 보다 1여년 앞서 비행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인 최초의 조종사로 알려진 안창남 과 금강호]
1917년 4월 17일 독립신문을 보면 상해 임시정부의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은 "앞으로의 승리는 하늘을
지배하는 자에게 있다."고 확신하였으며, 결국 1920년 2월 20일에 캘리포니아주 윌로우드 비행사 양성소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이 양성소 설립에는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쌀 생산업자인 재미교포 김종림씨가 3만 달러를 쾌척한것을 비롯
많은 해외동포들이 지원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20년 5월 비행기 2대와 미국인 기술자 1명 그리고
한인 비행사 6인의 교수진을 조직하여 비행학생 19명으로 운영을 시작하였습니다.
[꼬리날개에 태극마크가 선명한 양성소의 훈련기]
1920년 7월에는 1회 졸업생 25명이 배출되었고, 1922년 6월에는 학생이 41명에 달하였으며 1923년에 다시
11명의 졸업생을 배출, 비행기도 5대로 늘어났으며 무선통신장비까지 갖출수 있었다고 합니다.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통한 항일무력투쟁을 목표로하여 우리의 비행기로 "동경에 날아가 쑥대밭을 만들겠다."
라는 일념으로 조종훈련에 헌신한 비행사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계보에 포함되는 것은 항일 독립사
뿐만 아니라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귀중한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독립군 조종사들이 한인 비행사 양성소에 주기된 비행기 앞에서 찍은 사진]
Source : 월간항공 1992년 8월호, 50~5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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