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한여름 시골마을의 일곱 빛깔 무지개
fab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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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09:44
앞을 바라봐도 산, 뒤를 돌아봐도 산.
우리나라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주말인 9일 오후 3시 무렵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의 한 마을. 새파란 하늘 곳곳에 하얀 뭉개구름
이 보이지만 따가운 햇살을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영동군 일대는 일조량은 많지만 강수량이 적어 포도재배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전국 포도 재배면
적의 12%를 점유하고 있는 영동군의 포도 수확량은 전체 생산량의 14%를 차지해 우리나라 최대 생
산지입니다.
올해도 7, 8월 날씨가 좋아 영동군의 포도농사는 풍년을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
영동군 내에서 황간면 반대쪽에 있는 학산면 모리 마을.
오후 4시를 지날 무렵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쪽 방향 산 위를 바라보니 먹구름
이 잔뜩 끼었습니다. 비는 30분 이상 쏟아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단비'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강수량이 적어 포도농사에 좋았지만 올 여름 전체적으로 너무 가물었다고 합니다.
포도줄기를 지탱하는 철선에 빗방울이 맺혔습니다.
쏟아진 비는 하지만 아직 파란색을 띤 포도송이에는 맺히지 않고 대신 땅으로 떨어져 낮동안 뜨거
워진 포도나무에 적당한 수분을 공급합니다.
포도 수확 10여일 전에 오는 비는 포도를 더 맛있게 하는 '단비'라고 합니다.
당도도 별로 떨어뜨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포도밭 옆 넓은 공간에 드럼통 절반을 잘라 만든 통 속에 숯을 넣고 그 위에 불판을 얹어놓은 다음
돼지고기를 올려놓았습니다.
저녁 삼겹살 파티가 시작된 것이죠.
한쪽 테이블 위엔 시골에서 재배한 각종 야채가 올라와 있습니다.
소주 한잔에 야채로 싼 삼겹살 한점.
군침이 절로 돕니다.
모인 사람들이 모두 건배를 하고 고기 한점씩을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저기 무지개가 떴다"
모두들 술잔을 놓고 동쪽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해가 질 무렵이라 구름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은 조금씩 검은 색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빨주노초파남보' 일곱색깔 무지개가 걸려있었습니다.
도시에서도 비온 후 가끔 무지개가 생기는 경우가 있지만 지금은 언제 보았는지 기억조차 없습니
다.
파티를 벌이던 사람들이 한명 한명 일어나 무지개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무지개가 선명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어린 아이처럼 환호성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디카로 그 광경을 담기에 열중이었습니다.
마치 '잃어버린 추억'을 되살려 보려는듯...
몇분이 지나지 않아 일곱 빛깔 무지개는 사람의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서쪽 갈기산 봉우리 위 구름이 하루의 마지막 햇빛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10일 아침.
하늘은 어제보다 더 새파란 색깔을 띠었습니다. 피부를 파고드는 햇살은 더 따가와졌습니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릴 모양입니다.
비닐 지붕 아래 새파란색을 띤 포도송이도 마지막 청춘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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