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주한 미 첫 여성 대사 내정자 스티븐스 이야기
fabiano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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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07:11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 지명자에게 33년 전 영어를 배웠던 백원규 예산중 교사가 당시 스티븐스의 얼굴(맨 아래 오른쪽)이 실린 앨범을 보고 있다. 아래 사진은 당시 스티븐스의 공무원 인사 기록 카드. [대전일보 제공] | |
여성으로서는 사상 첫 주한 미 대사에 내정된 캐슬린 스티븐스(55)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선임고문이 한국과 맺은 인연의 첫 장면이다. 스티븐스의 부임 첫해 3학년으로 그에게서 영어수업을 들었던 ‘제자’ 백원규(48·영어) 예산중 교사는 28일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스티븐스는 대사로 지명된 뒤 “70년대 중반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한 적이 있어 한국과는 각별한 관계”라고 말했다. 미국이 파견한 평화봉사단은 주로 농촌에 한 명씩 배치돼 교육·기술지도 활동을 했다. 스티븐스는 2년간 이 시골학교에서 하루에 두세 시간씩 영어를 가르쳤다.
낯설고 물선 이국땅을 찾은 미국인 처녀가 현지 학생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서양사람이 신기해 주변을 맴돌던 학생들은 막상 이 미국 선생님이 자신에게 말을 걸면 얼굴이 빨개진 채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골 학교 생활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려던 이방인의 노력은 계속됐다. 항상 온화한 얼굴로 학생들에게 먼저 말을 걸며 다가가려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백 교사의 회상이다.
그는 또 “선생님은 학생들이 태권도를 연습하면 지켜보다 직접 배워보겠다며 체육관을 찾기도 했다”며 “수업이 끝나면 동료 선생님들과 테니스를 같이 치면서 친분을 다졌다”고 전했다.
스티븐스에게서 영어를 배웠던 학생들은 이제 중년이 됐다. 백 교사 외에 김창호(48·과학), 천세형(47·체육), 박찬일(46·과학) 교사가 현재 예산중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천세형 교사는 “주한 미 대사에 내정됐다는 보도를 보고 행여나 싶어 앨범을 찾아봤는데 그분이 맞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선생님의 활동을 생각하면 대사 일도 잘 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보기에 ‘키가 커 천장에 닿을 것만 같은 여선생님’은 학교 주변에서 홀로 자취 생활을 했다고 제자들은 기억했다. 옆집에 사는 두 살 위의 ‘이순호’라는 여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휴일이나 방학 때는 부여·홍성·공주 등 인근 마을을 함께 돌아다녔다. 한국을 좀 더 이해해 보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과학교사였다가 퇴직한 신성현(65)씨는 “우리 막내아들 돌잔치 때 찾아와 떡을 먹고 즐거워하는 등 마을 주민들과도 곧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한국을 찾을 때 서툴렀던 한국말은 2년 뒤 곧잘 구사할 정도가 됐다.
예산중의 76, 77년 졸업생 앨범에는 스티븐스의 당시 앳된 얼굴이 실려 있다. 이 학교 교무실에는 스티븐스가 부임하면서 작성한 ‘공무원 인사기록 카드’도 남아 있다. 다른 선생님이 대신 작성해 준 듯한 이 카드에는 ‘성명 심은경, 본관 Arizona’라고 적혀 있었다.
이 학교 박종완 교장은 “스티븐스가 대사로 정식 부임하면 꼭 초대해 바뀐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22일 차기 주한 미 대사로 공식 지명된 스티븐스는 의회 청문회를 거쳐 상반기 중 한국에 부임할 예정이다.
예산=신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