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금순이의 두 얼굴[영화로 본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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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금순이의 두 얼굴[영화로 본 한국사회]<21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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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본 한국사회] <1>금순이의 두 얼굴
1514992845414443.jpg**영화로 본 한국사회 필자 안정효**

21세기 대중문화의 총아로 떠오른 `영화''는 사회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작가이자 영화 마니아로 알려진 소설가 안정효씨가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변천사를 들여다본 대하 시리즈를 연재한다.
안씨는 시리즈의 프롤로그 격인 `금순이의 두 얼굴''을 시작으로 이념, 사랑, 남자, 여자, 범죄 등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코드들을 한국영화 태동기 시절 작품부터 2003년 근작을 통해 살펴볼 예정이다.
■안정효
▲1941년 서울 생
▲소설가·번역가
▲서강대 영문과 졸, 코리아 헤럴드·주간여성·코리아 타임즈 기자 역임
▲서강대·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역임
▲`하얀전쟁''으로 문단 데뷔 후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이 생애'' 등 작품 발표, 미국·일본·독일 등에서 번역 출간
▲`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7권 완간, 앞으로 영화와 관련한 40권의 저서 구상중

**고난의 세월 코믹하게 ''변신''**

1962년에 당시의 평균치 제작비였던 400만원의 돈을 들여 최학곤이 극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 `굳세어라 금순아''는 1.4후퇴 당시에 흥남부두에서 이산가족이 된 남매가 따로따로 남한으로 내려와 거친 세파를 해치며, 전후 세대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고달프게, 하지만 씩씩하게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두 남매는 영화 내내 서로 애달프게 찾아다니지만, 아슬아슬하게 길이 엇갈리기만 할 뿐, 좀처럼 만나지를 못한다. 그러다가 참으로 굳세게 살아가며 버티던 금순이는 병들어 자리에 눕고, 친구를 통해서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오빠가 달려갔으나, 끝내 여동생은 오빠의 품안에서 슬프게, 그리고 길게 마지막 흐느끼는 말을 남기며, 오빠만큼은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숨을 거두고, 오빠는 동생더러 죽지 말라면서 “금순아!” 소리치고 ‘몸부림’치며 펑펑 울어 댄다.
그리고는 40년이 지난 다음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영화가 다시 나왔다. 하지만 “다시” 라는 말은 이런 경우 사용하기가 어렵겠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흥남부두에서 오빠를 잃어버린 금순이가 지금까지 굳세게 살아있다면 이미 칠순의 나이에 접어들었겠다. 그리고 요즈음 영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굳센 금순이 세대에 속하는) 어느 칠순 노인이 극장에 걸린 21세기 판 `굳세어라 금순아''의 간판을 보고, 고달프고 슬프고도 추웠던 전쟁 시점이 생각나서, “바람찬 홍남부두”라는 노래 가사를 KBS `가요무대''에서 들은지 얼마 안되어 어떤지 가슴이 뭉클하여, 언젠가 “메리구릭마스(Merry Christmas)”를 드높이 소리치며 웃겼던 희극배우 구봉서 선생이 양념으로 조연을 맡아 더욱 마음을 절절하게 만들었던 옛날의 금순(金錞)이 영화가 생각나서, 꼬깃꼬깃 쌈지돈을 꺼내 표를 사서 극장으로 들어갔다고 상상해보자.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집안 살림은 빨래더미 속에 팽개치고 방바닥에 널펀하게 자빠져 잠만 자려는 현대판 금순이의 모습을 보면 할아버지 관객은, “도대체 저런 한심한 여편네가 세상에 어디 있나” 쯧쯧거리며 혀를 차게 된다. 그리고는 ‘부창부수(夫唱婦隨)’ 라더니 요즘 세상에서는 ‘부창부수(婦唱夫隨)’인 모양이어서, 서방이라는 놈도 또한 계집 못지않게 한심하여, 가족의 삶은커녕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면서, 둘이 엎치락뒤치락 놀아나는 꼬락서니를 보면, 세상은 말세가 지났어도 한참 지난 모양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도대체 요샛것들은 주변에 본받을만한 인물이 그렇게도 없는지 하필이면 저렇게 한심하고 막 가는 인간 말종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돈들이고 시간 들여 영화를 만들고, 그리고 이런 망나니 영화를 왜 돈까지 내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열심히 구경하는지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런데 조금만 더 버티고 앉아 영화를 계속해서 보던 노인 관객의 입에서는 “어렵쇼”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어렵쇼’란, 영어는 정신없이 부지런히 배우면서도 우리말은 잘 모른다고 자랑하는 요즈음 젊은층에서는 별로 안 쓰는 말이어서 21세기 금순이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모르겠지만,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았네”라는 뜻으로서, 정신적인 시체처럼 살아가던 말종 부부는 금순이가 아기를 들쳐 업고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엄청난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며, 떠들썩 치고받고 집어던지면서 상점과 뒷골목에서 난장판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논리성 따위는 따져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으면서 황당한 설정을 따라 찧고 까불어대며 웃기기와 조폭을 버무리는 원초적 공식에 충실한 현대 금순이의 모습이 관객을 끌어 모은다.
21세기 초에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았던 사극 `황산벌'' 또한 대단히 “거시기”한 영화이다.
사극이란 본디, 모든 영화 분야 가운데 목에다 힘을 가장 많이 주고, 초등학생들로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좌우명을 읊어가며 군신(軍神)이나, 인신(人神)으로 섬기는 주인공을 내세워, “반복되는 역사”로부터 “과거에서 미래를 배운다”는 토인비(Arnold Toynbee, 1916-1981)적 교훈을 깨우치는 개봉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던 대표적인 분야였다.
하지만 `황산벌''에서는 그런 20세기적 사극의 철옹성이 무참하게 무너진다.
우리는 임권택의 출세작 `장군의 아들''을 분기점으로 해서 한국 영화에 나타나는 영웅상의 변천을 지켜보았으며, 폭력의 영웅화는 이른바 조폭 영화의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영웅이라는 개념이 군신으로부터 `조폭 마누라''로 이어지는 샛길을 빠져나가는 사이에, 이제는 국운을 어깨에 짊어졌던 명장들까지도 `웃기는 조폭''의 모습을 슬그머니 닮아가는 듯한 인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거시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황산벌''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거시기 어법(語法)''을 잠깐 살펴보자면, `거시기''라는 말 자체가 거시기한 거시기는 모조리 거시기하다는 거시기여서, 서당(書堂) 천자문 교육 식으로 꼼꼼히 따지던 옛날과는 달리, 엄청난 정보와 자료를 대충 기계로 범세계 정보통신망(Internet)을 거쳐 검색해가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새롭고도 동시에 고루한 한 가지 양상이라고도 하겠는데, 어쨌든 전자놀이(Computer Game)에 길든 관객을 웃기기 위해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과 김유신 장군을 망가뜨려가면서 역사성을 가지고 거시기하게 장난치는 화법을 보면 보수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흥남부두 금순이 세대는'' 아무래도 마음이 거시기할 수밖에 없겠다.
그렇다면 건더기가 없어서 경박한 세대의 영화관(映畵觀)은 어떠한가?
두 편의 금순이 영화를 비교해 보았으니, `황산벌''의 시대적인 무대가 되었던 백제-신라 전쟁을 다룬 작품들 가운데, 원조 `굳세어라 금순아''가 선을 보였던 시절, 그러니깐 한국 사극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에 간판을 내걸었던 영화를 살펴보자.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려 했던 충신 계백 장군 애기가 부분적이지만 비상한 삽화로 들어갔던 `낙화암과 삼천궁녀'', 화랑정신으로 장열하게 전사하는 김유신 장군의 아들애기를 담은 `원술랑'', 잡혀간 부모의 원수를 갚으러 백제성으로 숨어들었다가 적국의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화랑 어진랑의 이야기 `화랑도'', 사랑하던 기생을 버리고 삼국통일을 하기 위해 말의 목을 벤 김유신 장군의 젊은시절 이야기 `천관녀''- 만일 이 작품들을 회고전 형식으로 요즈음 활동이 왕성한 영화인들에게 줄줄이 보여준다면, 아마도 그들은 이런 평을 하리라.
“정말 촌스럽네요. 그런 식으로 조잡하게 영화를 만들었으니 외화에 관객을 모두 빼앗겼겠죠.”
이렇게 ‘옛날’ 영화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그때는(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여건이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 이해해 달라”는 변명은 통하지가 않는다, ‘지금’도 10년이 지나면 ‘그때’가 될테니 말이다
모든 시대는 주어진 여건이 따로 있고, 그래서 저마다의 시대에 태어난 모든 영화는 그렇게 주어진 ‘지금’을 반영하고, 이렇게 저마다 다른 시대를 충실히 반영하는 영화를 놓고, “옛날 영화는 촌스럽다”거나 “요즈음 영화는 경박하다”고 비판하는 행위란 어쩌면 무의미한 짓일지도 모른다.

http://blog.empas.com/plo6699/541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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