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컴퓨터의 핵심, CPU
홈 > 블로그 > 내 블로그 > 유용한 창고
내 블로그

컴퓨터의 핵심, CPU

fabiano 0 1233  

 

blank.gif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PC는 과거 오락실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게임보다 더 현실같고 뛰어난 그래픽의 3D 게임은 물론 영화와 음악, 인터넷 등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렇게 컴퓨터가 멀티미디어의 중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컴퓨터의 속도와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성능을 이렇게 발전시킨 원동력은 CPU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PC용 CPU는 매년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램, 메인보드, 그래픽 카드 등의 주변기기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1980년대, 1990년대의 CPU의 어제를 통해서 PC용 CPU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

 

webz_round01.gif blank.gif webz_round02.gif
blank.gif

1. 보다 빨리, 슈퍼 컴퓨터를 개인용 컴퓨터로 만든 1980년대

 
webz_round03.gif blank.gif webz_round04.gif

메모리 전문 기업으로 1968년 창립한 인텔은 일본의 닛폰계산기로부터 8개의 칩으로 구성된 계산기를 주문받고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1년에 인텔은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4004를 출시한다. 2250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4004는 4비트 데이터 버스와 12비트 어드레스 버스가 사용된 CPU로 이후 인텔에서 출시한 CPU의 기본이 되었다. 다음 해에 24핀 세라믹 DIP 패키지로 판매된 4040은 4004의 기본 골격에 몇가지 기능이 추가된 제품으로 계산기에 주로 이용되었다. 이후 1972년 최초의 CPU인 4004보다 10배나 빠르면서도 가격은 큰 차이가 없는(360달러) 8비트 CPU인 8008이 출시되었다. 3300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8008은 Mark-8이라는 가정용 컴퓨터에 채택되면서 PC에 사용되는 CPU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었다.

 

H79_00.jpg

▲ 1972년 출시된 Xerox Star PC

 

이후 1975년 4500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8080이 출시되었으며 첫 개인용 컴퓨터인 알테어(Altair)에 사용되었다. 8080은 8비트 데이터 버스와 16비트 어드레스 버스를 사용했다. 이때 출시된 알테어 컴퓨터는 395달러에 판매되면서 출시 몇 개월만에 수만대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까지 출시된 인텔 CPU는 진정한 PC를 위한 프로세서가 아니었다. 인텔은 범용적으로 사용될 CPU를 출시했을 뿐 PC를 겨냥한 상품을 개발했던 것이 아니다. 실제 인텔의 1980년 이전까지의 대부분 매출은 메모리에서 나왔을 뿐이며 인텔은 1970년대까지 줄곧 CPU보다는 메모리 생산에 주력했다. 이어 1978년 인텔은 PC를 위한 CPU인 8086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8086은 1MB의 메모리를 사용했으며 4MHz에서 12MHz까지 다양한 속도의 제품으로 개발되었다. 이어 1979년 인텔은 IBM PC에 사용되는 CPU인 8088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PC 프로세서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게 8086, 8088 프로세서를 장착한 컴퓨터를 가리켜 XT(eXtended Technology)라고 불렀다. 1980년대초에 애플과 IBM이 개인용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PC 시장이 개막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텔은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저가 정책으로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메모리에서 CPU로 사업의 방향을 선회하기에 이른다. 이같은 인텔의 선택은 적중하게 되어 1987년부터 사업이 흑자 구도로 돌아서게 되었다. XT에 주로 사용되었던 8088은 내부클럭 16비트, 외부클럭 8비트로 설계되었으며 5~10MHz의 속도를 냈다. 이때 출시되었던 XT는 1980년대 후반에 국내에 소개되어 8비트 컴퓨터 시대를 개막해주었다.

H79_01.jpg

▲ 인텔 8088 프로세서

 

인텔은 1982년 80286을 출시하면서 진정한 16비트 시대를 개막했다. 80286은 12~20MHz의 속도와 16MB의 메모리 관리를 지원하며 IBM PC에 사용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에 이른다. 286을 가리켜 AT(Advanced Technology)라고 불렀으며, 특이점은 이전의 인텔 프로세서에서 동작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실행할 수 있었다. 즉, 이것은 이후 인텔 CPU는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세서를 개발하면서도 이전 CPU에서 동작하던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을 지원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86 컴퓨터는 6년간 전세계적으로 1500만대가 팔리면서 PC 시장이 커질 수 있는 성장 동력을 마련해주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8비트 컴퓨터인 MSX나 애플이 게임기로서 아이들에게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하지만, AT의 보급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1989년 정부는 IBM PC를 교육용 PC로 채택하면서 16비트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학습기기, 교육자재로서 컴퓨터가 부각되기 시작하며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AT가 급격히 보급되었고 한국의 PC 시장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H79_02.jpg

▲ IBM의 AT PC

 

이후 인텔은 1985년에 32비트의 연산과 가상 모드를 사용하는 (80)386을 개발했다. 386은 275,000개의 트랜지스터가 장착되어 초기 CPU인 4004에 비해 122배나 많은 집적도를 자랑했다. 반도체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숫자가 매년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처럼 14년만에 100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386은 32비트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여러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을 지원했다. 초기 출시했던 386 프로세서는 386DX로 내부, 외부 속도 모두 32비트를 지원하는 가장 빠른 프로세서였다. 하지만, 386은 초기 고전을 면치 못한다. AT의 성공으로 인하여 신제품이 눈에 띄지 못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제조사들 역시 새로운 프로세서를 사용한 컴퓨터를 제조하는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386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인텔은 보다 저렴한 보급형 프로세서인 386SX를 출시해 외부 속도를 16비트로 낮추면서 AT에서 사용하던 기존 주변장치를 이용해 컴퓨터를 조립할 수 있도록 하며 386 알리기에 적극 나섰지만 호응이 없었다. 보다 빠른 CPU만 만들면 저절로 팔릴 것이라 생각했던 인텔은 1989년에 신문광고로 386 알리기에 적극 나선다. 286보다 빠른 386의 속도를 알리는 광고를 하면서 286 죽이기에 앞장선 것이다. 이때부터 인텔은 CPU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H79_03.jpg

 

1971년부터 출시되기 시작한 CPU는 1975년 8080 프로세서로 개인용 컴퓨터에 사용되었고, 1982년 80286으로 본격적인 PC 프로세서로 거듭날 수 있었다. 불과 10년 사이에 CPU는 놀랄만한 속도로 성능이 빨라졌다. 하지만, 386 프로세서에 이르면서 인텔은 기존 제품인 80286과 여러 경쟁업체들의 CPU에 의해 주춤하기에 이른다. 1985년 전까지는 'CPU의 역사 = 인텔의 역사'나 다름없었는데 새로운 경쟁자들이 참여하면서 CPU는 속도 이외의 또 다른 이슈를 요구받게 된 것이다.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하던 인텔호에 처음 제동을 걸었던 것은 경쟁업체의 CPU가 아닌 인텔 자신의 CPU인 80286이었다. 80286의 성공에 후속 모델인 386이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인텔은 적극적인 광고와 캠페인을 통해서 컴퓨터 속에 들어가 보이지 않던 인텔의 CPU를 알리는 마케팅을 시작하며 386 CPU를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webz_round01.gif blank.gif webz_round02.gif
blank.gif

2. 속도는 기본, 멀티미디어 시대를 개막한 1990년대

 
webz_round03.gif blank.gif webz_round04.gif

이어 1990년대 초에는 386 마케팅이 성공하며 286보다 더 많은 386 프로세서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CPU 시장이 커지면서 후발업체들의 참여도 점차 가시화되기에 이른다. 인텔의 CPU 독주에 제동은 걸었던 인텔 호환칩 시장은 AMD, Cyrix, IDT 등이 뛰어들면서 혼탁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이들 CPU 제조업체들은 인텔의 CPU 이름인 386, 486을 상표로 사용하면서 브랜드에 편승하였다. AMD의 AMD386, Cyrix의 6x86 등은 인텔의 숫자를 이용한 상표를 흉내낸 제품명들이다. 이에 인텔은 586 프로세서부터는 독자적인 브랜드인 펜티엄을 사용하면서 경쟁사들이 브랜드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인텔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마케팅을 1991년부터 시작했으며, 그 캠페인이 바로 '인텔 인사이드'이다. TV, 신문 등의 매체에서 연일 인텔 광고와 PC 제조사와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붙이는 크로스 마케팅을 전개하면서 1991년 한 해에만 2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H79_04.jpg

 

그와 함께 새로운 CPU도 끊임없이 출시한다. 1989년 486, 1993년 펜티엄, 1995년 펜티엄 프로, 1997년 펜티엄II, 1999년 셀러론과 펜티엄III, 2000년 펜티엄4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성능과 기능의 프로세서 개발에도 주력했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인텔 호환칩 업체들과의 경쟁으로 인텔은 속도 개선에 주력한다. 1993년 펜티엄이 출시된 이후에는 AMD의 K6와 Cyrix의 6x86 등의 프로세서가 출시되면서 인텔보다 저가의 프로세서를 제공하여 보급형 PC 시장을 잠식하였다. 인텔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인텔 못지 않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프로세서를 인텔에 비해 더 저렴하게 출시하면서 CPU 시장은 단지 속도만을 경쟁의 화두로 삼기에는 뭔가 부족해졌다. 특히, 80% 이상의 시장 점유율로 독주하던 인텔은 1994년 486DX의 부동소수점 오류와 1995년 펜티엄 프로의 부진, 1997년 펜티엄II의 버그 등으로 인하여 친인텔 사용자들의 우려와 함께 호환칩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인텔은 펜티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펜티엄 이후에 제대로 된 프로세서를 출시하지 못해 경쟁자들의 추격을 받았다.

H79_05.jpg

 

1993년도의 펜티엄 프로세서는 60/66MHz에서 시작하여 200MHz까지 출시되었다. 펜티엄 CPU의 등장과 함께 데이터 버스가 64비트로 늘어났는데, 물론 FSB(Front Side Bus)가 64비트로 늘어난 것일 뿐 CPU 자체는 여전히 32비트로 동작했다. 이 때문에 당시 대기업 펜티엄 PC의 광고에 사용된 '본격적인 64비트 컴퓨터'라는 광고 문구가 과장된 것이라는 논쟁이 일기도 했다. 아무튼 당시 펜티엄 보드는 이러한 이유로 32비트 72핀 램을 두 개씩 짝지어 사용해야 했다. 1995년에 펜티엄 프로가 출시되었지만, 당시 널리 사용되던 윈도우95에서 기존의 펜티엄과 비교해 뚜렷한 성능향상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호응을 받지 못했다. 인텔 CPU 중에 가장 실패한 프로세서라는 오명 아래 급히 멀티미디어 기능을 보강한 펜티엄 MMX를 개발한다.

 

펜티엄 MMX는 P55C라는 모델명을 가진 프로세서로서 기존의 펜티엄에 57개의 새로운 명령어를 추가함으로써 특히 멀티미디어 분야에서 큰 성능 향상 효과를 볼 수 있던 CPU였다. 펜티엄 MMX 프로세서는 150, 166, 180, 200MHz 제품이 널리 판매되었으며 사람들에게 MMX라는 개념을 인식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펜티엄 MMX 프로세서가 처음 발표될 당시만 하더라도 2000년 말 펜티엄4 프로세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응용 프로그램들의 지원을 받지 못해 성능 향상의 폭이 미미했지만 날이 갈수록 MMX 프로세서를 지원하는 응용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MMX 프로세서가 기존 프로세서보다 더 뛰어나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었다. 펜티엄 프로 이전까지는 CPU의 화두는 클럭 속도와 성능이었지만, 펜티엄 MMX 등장과 함께 프로세서에 부가적으로 제공되는 기능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AMD K6 MMX, Cyrix 6x86 M2 등의 프로세서들 역시 인텔의 MMX 기술을 이용하여 멀티미디어 기능을 대폭 강화시켰다.

H79_06.jpg

 

이후 펜티엄 프로의 실패와 펜티엄 MMX의 성공에서 교훈을 얻은 인텔은 1997년에 펜티엄 II를 출시하였다. 코드명 클라매쓰로 불리던 펜티엄II는 0.35 마이크론 공정에 512KB의 L2 캐시를 내장했다. 펜티엄II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프로세서와는 다른 특이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프로세서는 S.E.C(Single Edge Contact)라 불리는 카트리지 형태의 패키지로 제작되었다. 소켓 방식의 CPU가 슬롯 방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이러한 외형 덕분에 CPU의 파손을 줄이고 방열이 쉬워졌다. 펜티엄II는 233, 266, 300MHz, 400MHz 제품이 널리 판매되었으며 후에 데슈츠 코어(0.25 마이크론, 512KB L2캐시)로 개선되면서 더 높은 클럭의 제품들도 널리 판매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소켓 방식에서 슬롯 방식으로 설계를 변경한 진정한 이유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대한 강력한 특허를 이용해 인텔 호환칩 업체들이 인텔이 지배하고 있는 프로세서와 메인보드 시장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인텔은 펜티엄II가 사용하던 슬롯1 방식을 진화시켜 슬롯2를 펜티엄III 프로세서에 적용시켜 나가며 CPU 시장을 독점하려 했다.

H79_07.jpg

 

하지만, 슬롯 방식은 메인보드 제조사들의 보드 설계에 대한 라이센스 비용으로 인한 단가 상승 등으로 가격이 비싸 점차 외면 받기에 이르른다. 게다가 1990년대 하반기에 세계적인 불황과 경기침체 그리고 PC 시장의 안정화가 이루어지며 프로세서 시장 역시 급격히 냉각되었다. 고성능의 비싼 CPU보다는 저렴한 CPU가 인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저렴한 가격으로 컴퓨터를 조립할 수 있는 호환칩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인텔은 이같은 시장 변화로 인해 1998년 저가형 시장을 겨냥해 펜티엄Ⅱ를 기반으로 L2 캐시의 용량을 낮춰 보급형 CPU인 셀러론을 내놓았다. AMD 역시 셀러론에 맞서 97년에 K-6, 98년에는 K-7 애슬론을 출시하면서 인텔을 반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K-7 애슬론은 AMD가 처음으로 자사 고유의 칩셋을 사용한 제품으로 인텔보다 가격은 싸지만 성능은 더 좋은 프로세서라는 야심을 가지며 출시한 상품이다. 이후 AMD는 인텔을 뒤?는 것이 아니라 인텔을 앞서는 기술(최초의 1GHz 프로세서 출시, 64비트 PC용 프로세서 출시)을 선보이며 인텔을 위협하며 시장 점유율을 두자리 숫자로 만들 수 있었다.

H79_08.jpg

 

1999년 카트마이(Katmai)라는 코드명으로 개발되어 출시된 펜티엄III 프로세서는 기존 펜티엄II 프로세서에서 70여개의 새로운 명령어(SSE)를 추가함으로써 멀티미디어를 비롯한 응용 프로그램에서 더 높은 성능을 제공해 주었다. 특히 펜티엄III는 기존의 MMX 명령어가 정수 처리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에 비해 부동 소수점 연산에 대한 대비까지 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프로세서의 고른 성능 향상을 꾀할 수 있었다. 이렇게 프로세서에 대한 멀티미디어 기능은 지속적으로 보강되었으며, CPU의 핵심이 되는 코어(Core)에 대한 기술 수준도 높아졌다. 즉, 트랜지스터의 집적도가 강화되고 아키텍처 또한 개선되었다. 인텔의 코어는 초기부터 펜티엄III에 이르기까지 크게 6번 변화하였다. 1995년 펜티엄 프로가 출시되면서 6세대 코어인 P6가 등장하며 펜티엄II, 셀러론, 펜티엄III의 기술적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1999년 AMD가 7세대 프로세서인 코드명 K7인 애슬론을 출시하면서 2000년에 인텔보다 앞서서 1GHz의 장벽을 넘어섰다. 99년부터 K7과 펜티엄III는 MHz 경쟁으로 서로 역전을 거듭하며 더 빠른 클럭의 CPU를 출시하면서 기술적 우위를 과시했는데, 결국 승자는 AMD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펜티엄III의 설계가 P6에 기반하고 있어 아키텍처의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H79_09.jpg

 

AMD의 애슬론 프로세서는 더 이상 AMD를 인텔의 호환칩 메이커로 부르지 못하도록 만들어준 강력하고도 성공한 마이크로 프로세서이다. 애슬론은 여전히 인텔의 x86 계열 프로세서와 호환성을 가진 아키텍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인텔의 그것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여러 특징들을 가짐으로써 서로 경쟁적인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특징들로는 강화된 3D Now!, 수퍼 스칼라 부동 소수점 처리장치, 200/266MHz FSB 채택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애슬론 XP는 MS의 새로운 운영체제인 윈도 XP와 공동 마케팅을 벌리면서 PC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에, 2000년 인텔은 P7 코어 기반의 7세대 프로세서인 펜티엄4를 출시하면서 AMD의 추격에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펜티엄4는 넷버스트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프로세서로 20 스테이지의 파이프라인 구조를 기반으로 해 기존의 프로세서에 비해 클럭 속도를 혁신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AMD는 2003년 32/64비트 겸용 칩인 애슬론64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64비트 시대를 개막했다. 역시나 인텔의 허를 찌르며 64비트 PC 시장을 개막한 것이다. 인텔도 이에 가세하며 AMD는 무서운 2인자로 CPU 시장에 돌풍을 불러일으키며 다소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던 CPU의 발전을 이끌고 인텔을 견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H79_10.jpg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PC 시장이 침체 일로에 접어들면서 CPU 역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인텔과 AMD는 1GHz, 64비트, 듀얼 프로세서 등을 화두로 삼으며 지속적인 CPU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아래 두 기사가 2000년대의 CPU를 말해주고 있다.

▶ 모바일 프로세서 : 데스크탑의 아류가 아닌 진정한 모바일 프로세서. 메롬

▶ 듀얼 프로세서 : 2006년 하반기를 장악한 인텔 CPU. Conroe

0 Comments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37 명
  • 오늘 방문자 14,269 명
  • 어제 방문자 15,226 명
  • 최대 방문자 15,226 명
  • 전체 방문자 1,613,631 명
  • 전체 게시물 10,948 개
  • 전체 댓글수 35,463 개
  • 전체 회원수 74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