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그때 그 시절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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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코윈 테일러 사진첩에서(1908 - 1922)>②

fabiano 9 3380  
 
아래의 사진들은 대한제국 1908년 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22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코윈 테일러(Corwin Taylor) 부부가 찍은 것으로 손자인  Ewing Bevard Taylor씨가 남가주대학 한국헤리티지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오리지널 사진은 흑백사진으로 정교한 수작업으로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 진 것이다.

따스한 질감의 이 사진들은 당시의 우리나라 풍습과 일상이 그대로 전달되어 정겨운 추억에의 정감을
느끼게 한다.

 
 
Wash.jpg
 
A building on a palisade.jpg
 
江건너 정자(亭子)의 모습이 보인다.

Taylor_nobookHstone bridge.jpg
 
송림(松林)과 석교(石橋).

Taylor_box45num38Young trees, Kongju.jpg
 
수천년간 땔감으로 나무를 베다보니 山은 늘, 황폐화 되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서는 조림(造林)사업을 장려하였다.   충남 공주.

Taylor_box45num44thatched church.jpg
 
초가지붕의 교회.  1800년대 말엽에 설립된 듯 하다.
1870년대, 쇄국정책을 폈던 조선은 사학(邪學)이라 하여 초창기 천주교를 핍박하고 박해하였다. 

Taylor_box21num15shovel.jpg

Old Korean church, Seoul.jpg
 
오래된 교회.  1900년대 이전에 설립된 듯...

Taylor_paichai10recitation hall.jpg
 
배재고등학교 강독실(講讀室).

Taylor_paichai12chemical laboratory.jpg
 
배재고등학교 화학실습실.

Taylor_paichai09Pai Chai, drill grounds.jpg
 
배재고등학교.  체육시간.

Taylor_paichai07 dormitory.jpg
 
배재고등학교 기숙사.

Taylor_paichai08Pai Chai, athletic field.jpg
 
배재고등학교 운동장.
 
Taylor_nobookAEwa Haktang recitation hall.jpg
 
이화학당  Recitation hall.

Taylor_nobookKWreath drill at Ewa Haktang.jpg
 
이화학당 화관(花冠) 연습 장면.

Lower grade girls, Ewa Haktang school.jpg
 
이화학당(梨花學堂). 학생들.

Ewa Haktang Girls
 
이화학당.
Modernism의 영향으로 여성들도 신학문을 배우려는 열의가 가득하였다.

9 Comments
은하수 2011.02.07 13:32  
요즘 우리 산 많이 좋아졌지요
fabiano 2011.02.07 23:27  
꽤나, 귀중한 사진입니다. 그 시절을 사진을 통하여 보는 역사적인 자료이니...
네로 2011.02.07 23:36  
근디요ㅡㅡㅡㅡㅡ  전  우리의ㅣ 누님들이  저  쪽빠리들의  노리개로  전락한거밖에는  생각이  안 나네요,,,,,  아무래도  피해 의식이  쫌  쎈가,,,,,ㅎㅎㅎㅎ    쪽빠리들이    갈 쳐준거는 많다고 하는데,,,조족 지혈,,,,,    아무리 구래두,,,,,,쪽빠리는    쪽빠리여,,,ㅎㅎㅎㅎㅎㅎ물과 기름,,,,,,,섞일수 없는 존재,,,,,,,  머나먼  미래에는  우리가  흡수할수박에 없는 존재,,,,,가능은 허 것지유~~~~~~~ㅋㅋㅋㅋ
fabiano 2011.02.08 10:57  
나무를 땔감으로 안하니 산은 제법 산다워지고...
fabiano 2011.02.08 11:03  
생존경쟁의 법칙이 인간사회 곧, 국가의 질서에도 적용되었으니... 어두웠던 과거지사가 우리 민족에게 자각과 자성을 일깨우게 했음을 또한 배웁니다. 두번 다시 그러한 과거지사는 되풀이 말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Neptune 2011.02.12 10:35  
민둥산과 얕으막한 돌다리와 초가집은 한국의 상징이 아니었을까요. 근대문명을 뒤늦게 받아들인 한국인은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큰다리공사도 한국의 건설사들이 해내고 있습니다. 한국은 100여년만에 용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환골탈태하고 더욱 새로워지면서 발전하여야 합니다.
fabiano 2011.02.12 20:06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보면 참으로 답답한 느낌입니다.우물안 개구리식의 사고방식이 빚어낸 결과이지만... 어쨌던 오늘날엔 한국인의 저력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정치분야에서도 진정한 정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뒤돌아 보고 크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피어나라 2011.03.06 22:19  
디지틀 이미지로 살짝 분장을 하니 보기에 더 좋습니다.파비아노님..무슨 일이 있어도 두가님처럼 문을 닫으시면 안됩니데이..;;이 좋은 자료 보러 오는 사람들 심정 헤아려 주이소. 노파심이 생겨서요..*
fabiano 2011.03.06 23:17  
산전수전 겪은 세월입니다. 할 수 있는데까지 하려고 합니다.  노파심은 접어 두시고...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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