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지금 북한은?
홈 > 블로그 > 내 블로그 > 북한(北韓)
내 블로그

지금 북한은?

fabiano 0 1132  

“장사는 전투…능력껏 먹고 살 수밖에”

[식량난 속 北주민 생활記①]“노동자에겐 해외 파견이 출세길”
북한 장마당 쌀 가격이 6월 들어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 때 3000원까지 치솟았던 쌀 가격이 현재는 4월 초 수준인 2400(북한산 1kg)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때 마침 미국의 식량 지원 소식이 전해지고 감자 수확 철이 다가오면서 6월 중순을 고비로 식량 위기가 한 풀 꺾이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당장 굶어 죽는 상황은 아니더라도 주민들의 배고픔은 여전하다. 과연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식량난 와중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데일리NK는 5~6월 북한에서 나온 3인의 증언을 통해 식량난 와중에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들여다 보기로 했다. 인터뷰를 3회 연재한다.
북한 주민 A 씨는 평양 장마당에서 중국에서 들여온 옷가지를 팔고 있다. 그는 최근 장마당 쌀값이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주위에 굶어 죽는 사람을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열 집에서 두 집 정도는 죽으로 버티고 있고, 이마저도 두 끼 밖에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위에 간부들 빼고는 배가 나온 사람이 없다는 말로 현 상황을 설명했다.

“평양 쌀값도 3천 원대까지 올랐지만 5월 하순부터 조선쌀 중에 10분도(정미를 가장 많이 해 미질이 우수한 쌀)가 2천500원, 8분도(중간 질)가 2천400원, 현미 같은 것은 2천300원 합니다. 안락미(동남아 수입쌀)는 2천300원 정도 합니다.

미국에서 쌀이 들어온다고 방송도 나오고 하니까 식량 가격을 내려서 미리 처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강냉이 가격이 아직 1천500원 수준입니다. 장마당에 쌀은 안 부족한데 강냉이는 부족합니다. 작년에 콩을 심으면 두부를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가 많아 너도 나도 옥수수 대신 콩을 심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A 씨에 따르면 평양에서 간부 계층 20%와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 20%, 이들 약 40%는 대부분 입쌀을 먹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년 하반기에 다음해 식량을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식량 가격이 올라도 별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나머지 40% 일반 주민들은 강냉이와 쌀을 일부 섞어 먹거나 강냉이밥과 국수로 대신하고, 최하 계층 20%가 죽으로 버틴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취약 계층으로 분류되는 이 20%의 주민들은 주로 옥수수와 남새(채소), 또는 두부 찌꺼기와 남새를 섞어서 죽을 쒀먹는다. 5월이 지나면서 봄배추가 나와 1kg에 40원 정도 하니까 그래도 조금 수월해졌다고 한다. 두부는 4인 가족이 죽을 끓여 먹을 수 있는 한 뭉치에 200원 정도라고 한다.

“요새 살아가는 방법은 누가 뭐라 해도 장사죠. 행사에 자주 동원되는 중구역이나 주변 사람들 빼고는 열 집에서 일곱 집은 장사를 합니다. 평양 통일 시장에 장사하는 사람만 5~6천명 됩니다. (판)매대가 가로 세로 50센티미터씩이에요. 시장 밖에도 2천명은 됩니다.

"미국에서 쌀 들어온다고 하니 식량 가격 내려"

골목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통일시장은 통일거리 사람들이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은 장사를 할 수 없어요. 통일시장만 해도 기본 8천명입니다. 물론 통일 시장이 크니까 다른 구역 간부들이 물건 사러 오기도 많이 합니다.”

A 씨는 시장에서 공업품(옷가지 등 중국에서 들여온 각종 물품)이나 화장품 장사는 돈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공업품 장사는 보통 하루에 5천원, 한 달이면 15만원 정도 벌이가 된다고 말했다. 하루에 쌀 2kg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돈을 가장 잘 버는 사람들이 수산물 장사라고 한다. 하루에 7~8천 원가량을 번다고 한다. 수산물은 쌀과 돈이 있는 간부들이 많이 사간다고 했다.

취약 계층은 장사 밑천이 없으니 국수나 음식 장사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보통 하루 장사에 1천500원을 번다고 한다. 강냉이 1kg을 살 수 있을 정도다. 또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은 물통을 가져다 놓고, 밥이랑 반찬이랑 술안주를 현장에서 판다고 한다. 악착 같이 벌어야 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장사도 전투라는 생각이다.

“평양 사람들은 장사를 해서 식량을 삽니다. 그런데 식량 사정이 긴장하니까 하루 두 끼 먹고 한 끼를 굶는 집들이 생겼습니다. 쌀을 먹는 집도 예전에는 쌀과 강냉이를 5:5 섞어 먹었는데 지금은 2:8, 3:7로 먹습니다. 그래도 쌀을 섞어 먹는 사람들 중에는 외부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중국 친척이나 일부 탈북한 사람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살기도 합니다. 일부 운전이나 외화벌이 기관에 있으면 돈벌이가 되니까 먹고 살기가 일반 사람들보다는 수월합니다.”

A 씨는 평양시 주변에 있는 한 농장에서 지난해 농장원들이 1년 치 식량의 70%를 분배 받았다고 말했다. 지방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좋은 편이다. 그러나 분배 식량이 부족한 데다 필요한 옷이나 물건을 사야 하기 때문에 식량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개인 텃밭과 뙈기밭이 필수다. 남새 같은 농장 생산물을 빼돌려서 장사를 하거나 평양 외곽 산골을 돌면서 뙈기밭(야산 중턱에 화전으로 일군 밭) 농사꾼들에게 강냉이와 공업품을 바꿔서 이윤을 남기는 일도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A 씨는 장사가 여유롭지 않은 집에서는 가축을 몇 마리 키우거나 약초를 캐고, 집에서 술을 만들어 파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술 찌꺼기는 가축들 먹이라도 쓴다고 한다. 강냉이를 원료로 술 두 병을 해서 팔면 500원 정도가 남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당국이 집에서 술을 담그는 일을 엄격하게 단속하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한다. 술을 만들다 적발되면 인민반장과 함께 추방시킨다고 말했다.

"가장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수산물 장사"

양봉도 한 철 돈 벌이로는 괜찮다고 한다. 아카시아 꽃이 피는 5월이 되면 산에서 꿀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평양시 주변에는 그래도 산에 나무들이 있어 양봉이 가능하다. 한 사람이 보통 15개 정도를 해서 한 달에 꿀 100kg 짤 수 있다. 이러한 꿀들은 대부분 약에 쓰려는 사람들이나 간부들이 사서 먹는다고 한다.

A 씨는 공장 노동자들은 일터에 나가도 배급이 없으니까 자기 능력껏 먹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평양 주민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해외 돈벌이에 나서려고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평양은 러시아나, 중동으로 돈을 벌러 나가는 것이 출세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시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로 일하러 나가는 것이 최고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러시아, 중동,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콩고까지 나가요. 그 사람들은 나가서 3년 만에 들어옵니다. 다시 나갈 수도 있고 그냥 북한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로 콩 농사지으러 간 노동자들은 3년 만에 들어오면서 1~2만 달러는 벌어오는 것 같아요.

그 돈이면 집도 사고 장사 밑천도 크게 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 나간 사람들은 기관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농사도 따로 짓고, 장사도 하면서 악착 같이 돈을 모아요. 최근에 이렇게 돈 벌러 나간 숫자가 주변에 꽤 있습니다. 남성 노동자 100명에서 하나 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외국 나가려면 300~400 달러는 돈을 고여야(바쳐야) 합니다.”

A 씨는 이렇게 돈을 벌어온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힘들게 벌어온 돈이라서 그런지 주변에 인심을 크게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돈을 벌어오면 대부분 ‘돈주 아파트’로 부르는 고급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여유 돈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조선 사람들 사정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고난의 행군 이후에 개인들이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개인 텃밭, 친척 방조, 장사, 해외 파견, 도둑질이든 뭐든 해서 돈이 좀 생겼습니다. 그러니 이제 국가에서 개인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돈을 내라고 합니다. 물건은 부족한데 국가에서 매일 돈을 찍어 내니 물가가 뛰죠. 지금도 신의주에서 물건 잡고 안 놔주지 않습니까? 그냥 세관만 열어주고 안 괴롭히면 백성들 굶지 않는데 참 국가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중국 단둥(丹東) = 정권호 특파원]



“국가와 농민 사이 ‘알곡 쟁탈전’ 치열”


[식량난 속 北주민 생활記②]“농촌은 개인농·도둑질·장사로 버텨”
[2008-06-18 17:58 ]  
B 씨는 황해도 OO군 농장원이다. 그는 북한에서 식량난이 심화되던 지난달 초 중국 친척 방문을 나와 기자를 만났다.

B 씨는 전통적으로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도 식량 절대량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분배가 제대로 안 되고, 농민들이 농장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해 피해도 있었지만 자신이 다니던 농장은 그리 심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식량 생산량 감소 원인에 대해 “이유를 여러 가지로 찾아 볼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들 자체가 열성을 내지 않는다. 자각적으로 일하는 모양새를 찾을 수가 없다. 열심히 일해도 분배가 없으니 기를 쓰고 일할 이유가 없다. 김일성이 죽기 전 80년대는 정보당 강냉이 수확고가 최고 10t까지도 이야기를 했다. 김일성 죽고 그 이후로는 지금 현재는 정보당 잘해야 3t이다. 자연재해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황해도에서는 6월이 되면 밀과 보리 수확이 시작한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식량 위기가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밀과 보리를 생산하면 미리 20kg 정도를 분배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을 수확기에 전체 분배에서 제한다고 말했다.

B 씨는 고난의 행군 이후 10년 동안 배급이 정상화되지 않으면서 북한 농장원들이 스스로 먹고 살 방도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황해도 농장원들의 생존 방식을 ‘개인 농사와 국가 알곡 빼내기, 장사’ 세 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 분배가 턱 없이 부족하자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가족 숫자 기준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할당했다고 말했다. 직접 논과 밭을 떼 주는 방식은 아니다. 작물과 작물 사이 고랑이나 논두렁을 지정해주고, 개인이 콩이나 감자를 심을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농장 분조장이나 반장들은 자신들이 데리고 일할 사람들의 입장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

"가족 숫자 기준으로 농사 지을 수 있는 땅 할당"

“국가가 1년 농사를 짓고 식량을 겉곡으로 어른은 1인당 280kg을 줘야 하는데 120~130kg 주니까 이걸로 1년을 못산다. 그러니까 농장별로 ‘너는 여기에 콩을 심어 먹으라, 너는 여기에 감자를 심어 먹으라’고 지정해 준다. 황해도 재룡군에서는 이것을 먼저 도입했다. 황해도에서 절반은 이것을 도입했다. 분조 단위로 논두렁에 작물을 심어 나눠 먹기도 한다. 논두렁은 국가에 등록을 안 하니까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초급간부들은 농장원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개인 농사로 생산한 감자는 수확량이 국가 농장의 2~3배가 된다고 한다. 사실 강냉이 밭고랑 사이에 심는 감자 생산량이 국가 감자 농장 생산량을 앞서는 셈이다. B 씨는 “개인들이 자기 이해관계와 맞는 일이기 때문에 감자 심는 문제는 열성을 많이 부린다. 최고로 열성을 내기 때문에 50kg 이상을 나눠 갖는다. 이것이 한 참 어려운 6월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경작하는 텃밭이 올해 식량 위기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집 근처에 가꾸는 텃밭과 산 중턱에 일군 뙈기밭에서 지난해 식량 150kg을 생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산간 뙈기밭은 산림감독원과 협의를 해서 나무도 일부 심어주고 생산량의 30%를 주기로 하고 농사를 짓는다. 만약 이 약속을 안 지키면 다음해 농사 지을 땅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B 씨는 이 개인 농사 이외에 주민들의 국가 알곡 빼돌리기를 황해도 주민들의 주요한 생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몇 해 동안 국가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농민들의 대응 방식도 좀 더 과격해졌다고 한다.

그는 “가을에 곡식이 익었을 때 추수해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밭곡식을 먼저 들이친다. 밤마다 나가서 곡식을 거둬서 집으로 뽑아 드린다. 나쁘게 말하면 도둑질인데 사실 이것이 1년 명줄이다. 1년 동안 먹을 강냉이와 쌀을 그렇게 보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농민들이 확보하는 식량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재령평야 같은 곳은 많게는 1t까지 확보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20kg 쌀 포대 50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는 이렇게 확보한 쌀로 생활 용품을 구입하고 도시의 친척들에게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가을이 되면 국가와 농민들 사이에 알곡 쟁탈전이 벌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북한 당국은 3년 전부터 인민보안성 정치대학 학생들을 전국적으로 풀어서 식량 회수 작전을 펼치고 있다.

"훔친 식량 뺏기지 않으려 돼지우리에 숨겨"

B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해서 뺏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지 않다. 지난해에도 식량을 집에 보관하지 않고 돼지우리 바닥을 파서 묻거나, 땅에 묻고 그 위에 마늘 밭까지 조성해 놓고 식량을 지켰다. 작년 수확기에는 국가를 상대로 주민들이 이득 좀 봤다. 그래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에서 고지식한 사람들과 노인들이 이러한 양곡 빼돌리기 경쟁에 뒤쳐질 수밖에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B 씨는 “논밭에서 수확을 하기 전에 밤에 나가서 식량을 채오는 일은 사활적이다. 도둑질 하지 않으면 내가 굶게 되는데 그냥 앉아 있을 사람이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먹는 식량보다 파는 식량이 더 많다. 그런데 식량 보관을 잘 못해서 뺏기게 되면 다음해 살기가 그야말로 고역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작업반(50세대) 마다 5명 정도 있다고 말했다. 작업반장들은 이들을 ‘83’이라고 부른다. 이는 김일성이 인민 소비품을 자체 공장이나 작업반에서 부차적으로 생산하라는 지시가 8월 3일 내려왔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다. 이들은 대부분 국가에서 농장 단위로 내린 후방사업을 담당하기 위해 농장에서 배정하는 경우가 많다. 당국이 국가적인 건설이나 군대 지원 명목으로 돈과 양식, 필요한 물품을 내라고 할 때 이것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산골을 돌면서 개인들이 많게는 2~3t씩 가지고 있는 강냉이와 콩을 시장에서 사들여간 쌀, 기름, 맛내기, 밀가루 등과 바꿔가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보통 kg당 50원에서 100원의 이윤을 남긴다. 하루에 15kg 이상은 사고팔아야 옥수수 1kg을 살 수가 있다.

B 씨는 “개인 농사나 도둑질,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소수는 이런 요령도 없어 해마다 어려움에 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춘궁기 때 끼니를 거르거나, 죽으로 연명한다. 궁여지책으로 양식을 비싸게 꿔가서 살아가기도 한다. 다음 해에도 이런 것이 반복되니까 당연히 빚이 늘어 더욱 곤란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 단둥(丹東) = 정권호 특파원]
0 Comments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55 명
  • 오늘 방문자 3,724 명
  • 어제 방문자 5,436 명
  • 최대 방문자 14,619 명
  • 전체 방문자 1,416,607 명
  • 전체 게시물 10,948 개
  • 전체 댓글수 35,462 개
  • 전체 회원수 72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