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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이를 언제부터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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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김용태 최고회의 경제고문은 당시의 잣대로 평가하면 상당히 앞서 나가는 거목이었다. 혁명이 성공하자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 판단하고 혁명정부에서 이탈해 남이섬에 들어가 나무나 심겠다면서 몸을 숨겼다. 그러다가 박정희 의장에게 붙잡혀 ‘너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거냐’고 호통을 당하고 최고회의 경제고문직을 수락하게 됐다.

하지만 구속시킨 경제인들을 석방하면서 여권까지 만들어주자고 했다가 박 의장과 맞선 것은 두 사람이 영원히 돌아설 수도 있는 최대의 위기 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시대에 여권을 만든다면 특권층이었다. 그런데도 박 의장을 만나 구속자들에게 여권을 만들어주자고 했다는 것은 돌출행동이었고 의외였다.

더구나 그들은 부정축재자로 인식된 인물들이었고 혁명주체들이 벼르고 있던 상황까지 감안하면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 의장이 신경을 곤두세울 충분한 이유가 됐던 셈이다.

“그동안 쌓여 있던 얘기, 어차피 두판 잡은 거니까 헌병대에 잡아넣은 경제인들을 보고 느꼈던 점도 솔직히 다 얘기하고, 왜 여권을 만들어주자고 하는지, 내가 계획하고 있던 걸 전부 다 말씀 드린 거여. 물론 각하는 군 생활에 젖어온 양반이고, 단순히 생각하면 경제인들은 바깥 물정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여권을 만들어주자는 건 탈출을 시키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경제인들을 어떻게 활용해야겠다는 스케줄이 있었단 말이여. 그래가지고 이미 언성은 높아졌고, 도저히 오해 받고 물러날 수는 없겠어. 떠날 작심은 했지만 각하가 어떻게 생각하든 내 진심은 전부 말씀 드려야 되겠더란 말이오.”
 
민간인이 군인들 틈에 끼어 혁명까지 동참했다면 ‘간뎅이가 부었거나 백치거나 딱 둘 중에 하나였다’는 것이 그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작심하고 대들 때는 각오를 했다는 것인데, 박 의장과 맞섰던 내용을 김용태 전 장관의 회고를 토대로 재구성하면 이러했다.

“제가 보기에 혁명정부는 구속시킨 기업인들을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어 재산 일체를 환수하겠다는 것 같은데, 물론 혁명을 했고 구악을 일소한다는 차원에서 그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자본이 형성돼 있지도 않고 부자기업이라고 해봐야 영세성을 겨우 벗어날 정도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 재산을 환수한들 얼마나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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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1961년 경상남도 수해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이놈이 단단히 미쳤구나. 그러면 환수도 하지 말라는 것이야?”

“저는 썩 좋은 생각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예정대로 이달 말(6월 30일)에 석방을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으니 그 전에 전부 환수는 하시겠지만 그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환수하기보다 경제인들 스스로 공장을 세워 사회에 내놓도록 하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경제인들 구속은 재산환수가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제재건에 그들을 활용하자는 게 목적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물론 경제인들 중에는 권력과 결탁해 과욕을 부린 사람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런 사람은 환수가 아니라 처단을 하십시오. 그러나 제가 알고 있기로 대부분 구속자들은 양심적이었습니다.”

박 의장은 다시 담뱃불을 붙여 물면서 김 고문의 얘기를 들어주려고 무척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김 고문을 노려보며 던지는 말도 길지가 않았다.

“대부분이 양심적이었든 결탁을 했든 그런 평가는 자네가 안 해도 돼! 여권을 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야.”

“해외출장을 보낼 생각이라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출장을 보내겠다는 목적이 뭐야!”

김 고문은 작심한 듯 박 의장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각하, 우리한테 자본이 있습니까, 기술이 있습니까? 그동안 수없이 생각해보고 연구해봤지만 선진국들을 찾아가서 자본과 기술을 끌어오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혁명을 한 우리가 선진기술과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길을 어떻게 열겠습니까. 더구나 혁명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까지 노려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혁명주체들이 뻥뻥거리며 큰소리는 치고 있지만 기업을 압니까, 기술을 압니까, 차관 관계를 압니까. 이 땅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면 모르긴 해도 전부 먹통이고 맹물이 될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가 해외자본가들하고 협상을 하고, 기술 도입을 교섭할 수 있겠습니까. 기업인들밖에는 없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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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청와대에서 전경련회장단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경제인들은 혁명정부의 자산”

그제야 박 의장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피우던 담배를 짓누르며 김 고문을 주시했다. 그런 모습은 수긍이 된다는 뜻이었다. 김 고문은 내친 김에 박 의장의 재가를 받겠다는 욕심까지 냈다.

“기업을 크게 했건 작게 했건 그들은 요령을 알고 지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러고 외국하고 접촉을 하자면 기업이라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건 상식 아닙니까. 그래야 협상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구속시킨 경제인들이 혁명정부의 자산입니다.”

박 의장은 어느새 김 고문의 논리에 빨려 들고 있음이 분명했다. 계속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국가 재건에 사명감과 의욕을 가지고 덤벼들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고, 방법의 하나로 여권을 만들어줘야겠다고 한 겁니다. 장관도 만들기 어렵다는 여권을, 그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텐데 그럴 때 혁명정부가 직접 만들어주면서 잠시 잘못 생각해 여러분들을 고생시켜 미안하다, 여러분이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를 위해 일해주셔야 할 사람들이다 하고 위로해주면 경제인들 가슴이 얼마나 뜨거워지겠습니까.”

“뭣이! 나더러 사과를 하라는 것이야?”

“각하, 의욕과 사명감에 불타도록 격려하는데 그걸 사과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제가 생각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래도 제가 경제인들을 탈출시키려는 모사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각하 뜻대로 하시고 저는 떠나겠습니다.”

“시끄러워! 떠나는 거 좋아하네. 정주영이가 누구야? 정주영이를 언제부터 알았어?”

김 고문은 황당했다. 난데없이 정주영이가 박 의장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예상도 못한 일이었지만 구속되어 있는 사람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처럼 추문하고 있다는 건 기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박 의장은 확신하고 있는 듯이 몰아댔다.

“정주영이 측에서 자네 형을 찾아가 필동에 있는 경제고문실이 누추하니까 정주영이가 가지고 있는 동아일보 옆 건물을 줄 테니 그걸 쓰라고 했다면서! 정주영이도 해외출장 대상이야?”

“각하, 누구 보고를 받으셨는지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저의 형을 처단하십시오. 각하도 집무실이 없어서 원호처 건물 꼭대기를 빌려 쓰고 계시는데 설령 그런 로비가 있었다고 한들 제가 감히 받아들일 수나 있는 일이겠습니까.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고 정주영이는 미군 공사를 주로 해서 달러를 많이 벌었다고 되어 있지만 박흥식씨나 정재호씨나 그런 경제인들에 비하면 한참 밑입니다. 일본에서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는 이병철씨나 이원만씨에 비해도 한참 떨어집니다. 제가 명색이 최고회의 경제고문인데, 상대할 급수가 아닙니다. 누가 보고를 드렸는지 모르지만 대질심문을 해주시고 제 얘기에 한마디라도 거짓이 있다면 저도 처단해주십시오.”

“아니면 됐어. 자네 계획이 그렇다면 예정대로 석방시킬 테니 여권 문제는 종필이하고 상의해봐.”

이렇게 해서 구속된 경제인들은 모두 석방 절차를 밟게 된 것이 비사에 담긴 내용이었다. 그러나 막상 석방시켰지만 한동안은 김용태 고문도 자신의 기대가 너무 앞서갔거나 그들을 과대평가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결론적으로 경제재건에 대한 구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더라는 얘기였다. 모두가 나름대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경제인들이지만 자기들 사업에만 일가견이 있다는 정도였지 혁명정부가 구상하는 경제재건 방안에 대해서는 아예 백지더라는 것이다.

나라 전체가 빈 깡통이었다

그 당시 원로급이었던 이정림 전 대한유화 회장도 “그건 정책인데 정부 구상에 비하면 구멍가게 정도밖에 안 되는 기업을 해온 사람들이 얼마나 식견이 있다고 정책 구상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혁명 직후에는 오히려 기업인들이 경험을 보태는 게 아니라 김용태씨가 경제고문이고 석방시켰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서 어떤 구상이 나오나 하고 경제고문실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분위기였다고 했다.

“박 의장 앞에서는 다들 경제라면 일가견이 있고 저마다 경제부흥에 앞장서겠다고 했는데 일단 형무소에서 나오고 보니까 체계적으로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럴 거 아닙니까. 기업을 하는 거하고 정책을 구상한다는 건 비견할 수도 없고 아예 근처에 갈 수도 없어요. 정책을 세워놓으면 따라가는 건 하지. 그래서 우리 때는 기업인이 정부에 참여한 사람이 없어요. 참여할 생각도 안 했고. 좌우간 그럴 때에 잡혀갔던 이들이 전부 석방됐고 문제도 다 해결됐다니까 이병철씨가 일본에서 귀국했는데, 곧바로 김용태씨를 만났는지 김용태 그 양반이 나를 불러요. 가니까 이병철씨하고 같이 연구해서 협회를 만들고 경제발전 구상도 해보라고 그러는 겁니다.”

이에 대해 김 고문은 당시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지 그때를 소상하게 기억하면서 무엇보다 경제인들이 그때까지도 자기들끼리 친목회 한 번 하지 않고 지내왔더라면서 상당히 놀랐다고 했다.

“나는 우리나라 기업 대표들이 이렇게나 개인주의자들인가 싶어 깜짝 놀랐어. 지금은 상상이 안 되는 얘기여. 서대문과 수경사에 흩어져 수감됐던 이정림씨, 남궁연씨, 조홍제씨, 김주인씨, 그런 분들이 전부 저녁에 석방됐어요. 나도 석방되는 현장에 나갔고. 당시로서는 거물급 기업인들이지. 그래서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고생했다고 위로하고 군인들이 뭘 몰라서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말이여. 그러니까 다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데, 이정림씨가 나서더니 항의 조로 우리가 도대체 부정으로 축재한 게 뭐가 있느냐고, 의외로 심하게 원망을 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다들 석방시켜줘서 감사하다고 하는데 이정림씨가 그렇게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우리 대표냐고. 심지어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그때 내가 놀란 거야. 기업을 하면서 자기들끼리도 왕래가 전혀 없었던 거라. 이래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어. 경제인들끼리 힘을 합쳐도 어려운데 이게 뭐냐 이거지. 그래가지고 당장 경제인협회부터 만들라고 했지요.”

>> 그게 지금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가 되는 겁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협회부터 만들었고, 경제개발 구상은 쉽지가 않아서 한참 연구를 하고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했는데, 결론은 뭐가 있어야지. 아까도 얘기했지만 사람이 있나 돈이 있나 기술이 있나. 사실이 그랬거든.”

이정림 전 회장도 나라 전체가 빈 깡통이었다는 사실만큼은 공감되는 얘기였다면서 기업을 해본 사람이라 오히려 더 막막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전에는 전부 일본인들이 하던 공장이고 한국인들은 얻어먹고 심부름이나 했지 우리가 직접 공장을 돌려본 게 하나라도 있어요? 기껏해야 박흥식씨가 하던 백화점 하나가 있었지만 그것도 제조업이 아니고. 그러다가 해방이 됐을 땐 이제부터 우리가 벌어 먹어야 할 텐데, 해본 경험도 없고, 자본도 없고, 자원도 없고. 그런 상태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싸움질이나 하다가 혁명이 뻥 터지니까 다 도망가거나 숨고. 뭐가 있었겠어요. 막막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지. 그러니 박 의장이 혁명을 해놓고 보니까 진짜 아무것도 없더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해해. 그런데 경제재건에 앞장설 수 있다고 희망은 비쳐놨고, 박 의장이 나가거든 경제인들이 직접 계획을 세워보라고 했는데 큰일 났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오.” 그야말로 불모지였다는 것이다.<계속>

이호 객원기자·작가·leeho52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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