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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호랑이 30마리 잡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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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전설적인 사냥꾼 얀코프스키
1946년 수렵금지될 때까지 가족 3대가 한반도서 사냥
표범 곰은 100여마리 잡아


[조선일보]

모스크바에서 250㎞ 떨어진 블라디미르시엔 95세를 훌쩍 넘긴 전설적인 호랑이 사냥꾼이 살고 있다. 러시아인 발레리 얀코프스키.
1863년 그의 할아버지가 연해주에 정착하면서 사냥을 시작한 이 가족은 호랑이 수렵이 금지된
1946년까지 3대가 근 80년간 한반도를 무대로 사냥의 역사를 이어갔다.

아직도 아이 같은 피부를 가진 얀코프스키는 기억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호랑이만 30마리, 표범과 곰 등 100여 마리를 잡았다”며 4시간이 넘도록 사냥꾼 가족의 역사를 말했다.

“별의별 일이 다 있었죠.
1940년엔 백두산 호랑이 사냥 허가를 받으러 일본 행정부 만주지사엘 갔는데, 일본 경찰 책임자가
내게 ‘당신이 최고의 호랑이 사냥꾼이라는 걸 알고 있소. 자, 이 ‘맹수’를 잡아오면 돈은 달라는 대로 주리다’ 하면서 사진 한 장을 내밀었어요.
김일성 사진이었어요. 나는 ‘네 발 달린 맹수만 사냥합니다’라며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얀코프스키의 할아버지는 연해주에 정착하면서 황제의 명을 받아 나비를 채집했었다.
나비를 잡기 위해 온 산을 다니다가 사냥의 고수가 됐다.
하지만 이 사냥꾼 가족은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부침을 겪었다.

“우리 가족은 중국과 한국 국경을 수없이 넘나들며 호랑이와 표범, 곰 등을 사냥했어요.
야생 사슴을 잡아 방목하면서 연해주에서 처음으로 사슴 농장을 했고 말 목장도 경영하며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 터진 뒤 ‘자본가 세력’으로 낙인찍혀 러시아 땅을 떠나 청진으로
야반도주를 해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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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에서도 그의 가족은 사슴 농장을 운영하면서 녹용을 팔고 호랑이 사냥을 통해 다시 돈을 벌었다.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자
얀코프스키는 소련 25군 스매시부대 통역으로 일하며 김일성과 북한 주요 인사들을 대부분 만났다.

“1945년 10월 14일 모란봉 경기장에서 김일성이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보였던 날을 기억합니다.
치스타코프 소련군 사령관 등
소련군 거물들이 모두 등장한 뒤 김일성이 맨 마지막 순간 나타나자 군중이 꽃다발을 던졌습니다.
이 모든 건 당시 소련군이 준비하여 이뤄진 것이죠.”

소련군이 진주한 북한 땅에서 얀코프스키의 비운은 또 시작됐다. 일제의 스파이로 몰린 것.
그는 1946년 다시 추코트카로 유형갔으나 탈옥해 시베리아와 주변 지역을 맴돌다 현재 살고 있는
블라디미르에 정착했다.
그의 가족은 1945년에도 ‘한반도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냥꾼’으로 국제 사회에 알려지기도 했다.

(모스크바=정병선특파원 [ bs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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