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남파간첩 한 명이 검거되었다.
간첩사건에 미인계까지 겹쳐 저잣거리의 술안주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예전에 매년 수십명씩 검거되던 간첩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제 간첩 한 명 잡았으니 국내 간첩은 완전히 일망타진되었다는 말인가.
역사를 10여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황장엽씨가 북한 권력서열 21위로 지목했던 송두율은 민주화의 영웅이 되어 국내로 들어왔다.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고 외쳤던 강정구 교수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 변호하고 나섰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가보안법은 이제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고 외쳤다.
이러한 좌파 일색의 분위기는 공안기관의 해체 내지는 축소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당시(2000년) 807명이던 보안수사 경찰관은 현재 절반도 안 되는 374명으로 줄었다.
1998년에는 보안담당 경찰 115명이 특진했는데 지난해엔 고작 6명에 그쳤다.
보안사범에 대한 검거 실적도 급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 인원은 2003년 152명에서 작년 15명으로 줄었다.
국가정보원은 2006년에 민주노동당 간부들이 연루된 일심회 사건으로 10명을 검거했다.
그런데 국정원장이 그 사건으로 인해 옷을 벗었다.
간첩 잡는 기관의 수장이 간첩을 잡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간첩 잡은 사람을 간첩으로 몰고, 간첩을 간첩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되레 누명을 씌우는 세상에서 누가 간첩을 잡으려 하겠는가.
동서독이 통일되기 직전, 서독에는 3만여명의 동독 간첩이 암약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도 이에 못지않은 간첩이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상황이 이럴진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들은 이번 간첩 검거를 두고 공안정국, 매카시즘 운운한다.
다시 한번 냉정하게 따져 보자.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자 수는 1만4000여명에 이른다.
올해에만 3000여명의 탈북자가 몰려올 거란 예상이다. 이들 중에 ‘이중간첩’, ‘꽃뱀간첩’은 몇 명이나 될까.
또 그 이전부터 암약해온 고정간첩은 얼마일까. 간첩 원정화가 검거됨으로써 이 땅의 간첩은 모두 사라진 걸까.
만시지탄이지만 국정원장은 ‘간첩보안사범 수사를 강화해 안보수사기관 본연의 정체성을 되찾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국방부도 군내 방첩활동을 강화하고 장병 대적관 확립에 주력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국방부도 대북 경각심이 무장해제된 사회 분위기와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가르쳐온 불온 교육환경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면책이 되는 건 아니다.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군대마저 뚫린다면 국민들은 누굴 믿고 단잠을 잘 것인가.
결론은 자명하다.
지난 10여년 동안 북으로 보낸 햇볕은 북한의 옷을 벗기지는 못하고 오히려 우리 옷만 벗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가 보내준 따스한 햇볕을 먹고 자라난 것은 북쪽의 간첩이요, 시들어간 것은 남쪽의 공안조직이었던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이제라도 초토화되다시피 한 공안조직을 손질하고 강화해야 한다.
벗은 게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재빨리 바지를 추슬러야 하지 않겠는가.
황장엽씨는 10년 만에 간첩을 잡은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했다는데, 이것은 환영할 일이 아니라 슬퍼하고 분노해야 할 일이다.
(konas)
신원배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부회장·해병대예비역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