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복무를 피하려 어깨뼈를 어긋나게 한 뒤 수술을 받거나 아랫배 등 특정 부위에 힘을 줘 고혈압으로 위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보충역이나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축구선수 등 100여명이 무더기 적발되었다는 소식이다. 이들은 모두 군 생활 2년하고 나면 선수생명이 끝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답하고 있다. 궁색하고 졸렬하기 그지없다.
이에 대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병무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무비리 사례가 계속 나온다”며 “이는 병무행정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병무행정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현역 복무자들 또한, 병역면제자들을 두고 ‘신의 아들’이라고 비 아양 거린지 오래다.
인류역사와 함께 존재 해 온 것이 군대 조직이다. 때문에 군대 역사만큼이나 역사가 오래 된 것이 병역기피의 역사다. 군복무가 하나의 신분적 특권이었고, 군복무에 대한 대가가 정당하게 주어지는 사회에서는 병역기피가 심하지 않겠지만, 부담만 있고 개인에게 돌아오는 것이 불이익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병역기피 현상은 뽑아도 계속 돋아나는 끈질긴 잡초처럼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해방이후 우리나라 병역기피가 이처럼 뿌리 깊은 이유는 바로 제도권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년대 무분별한 사립대인가와 정원 외 입학을 허용해주고 이들에게 병역연기와 나이가 차면 병역면제혜택마저 줌으로써 소를 팔아서라도 대학에 보내려는 우골탑(牛骨塔)이라는 신화를 남겨 정원 외 입학은 곧 병역기피의 지름길로 통했다.
60년대에는 해외유학인정 선발시험제도가 곧 특권층의 병역기피의 수단이었다. 당시 4~5년간 선발시험을 통과해 해외로 유학한 사람은 모두 7,000여 명인데 이 중 귀국한 사람이 40여명에 불과한 것만 봐도 상류층 자제들의 병역기피와 무관하지 않았다.
병역특례제도가 특권층을 위한 병역기피 수단으로 쓰인 것은 80년대 석사장교 제도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4개월 훈련받고 2개월 전방실습만 받으면 예비역 소위로 제대하는 엄청난 특혜가 주어졌다. 이런 좋은 제도가 있는데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서류를 조작하거나 신검 판정을 위해 뇌물을 쓸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80년대 이후 운동권 출신에 대해 군복무대신 교도소행을 남발한 것도 오늘 날 병역기피의 한 단초를 제공했다. 감옥대신 예외 없는 군복무를 적용했더라면 오늘 날 상황은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등에 대한 병역특례제가 특권층과 산업체, 연구기관의 이해관계에 얽혀 병역기피 악용사례가 발생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도출되자 국방부는 입대 장병 부족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병력특례제도를 전면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처럼 특수층 자제들이 합법적으로 큰 부담 없이 병역의무를 때울 수 있는 제도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병역면탈비리가 고개를 들게 된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 바 일부 연예인, 축구인들의 인위적 신체불구를 조작한 병역면탈행위가 그것이다.
자기 자식들은 군대를 빠지게 하고 남의 자식들만 병역의 의무를 다하게 하는 특권층의 비도덕성과 그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는 법적 처벌과 도덕적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법적 처벌과 도덕규탄만으로 병역면탈을 위한 불법행위가 과연 근절될 수 있을까.
오늘도 내일도 병역기피 시도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제도 자체의 구멍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직도 각종 병역특례제도가 존속되고 있고, 상근예비역처럼 단기 복무가 있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특정종교)에 대한 잇따른 무죄선고와 특례인정, 외국에서의 거주기간을 이용한 특혜, 국위선양자의 병역특혜 등 부모가 조금만 ‘눈을 뜨고 기를 쓰면’ 현역으로 가서 고생할 필요가 없도록 된 상황에서 병역비리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
병역의무의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은 나라의 장래와 젊은이들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이 일은 정부가 1차적으로 짊어져야 할 과제지만, 군대를 다녀온 민주시민들이 좀 더 분발하고 군복무를 필한 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차제에 군복무자 가산점제도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는 것도 바람직할 일일 것이다.
젊은이들이 군복무를 해야만 지도층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사회, 군복무를 영광으로 아는 그런 사회 즉, 흔히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영국의 왕자들이 전쟁터에 나아가 복무하고 중국의 모택동 아들이 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하고, 유엔군 사령관 벤플리트 대장의 아들이 한국전선에서 실종되었던 사례에서 보듯이 말이다.
어깨뼈 탈골로 현역을 기피하려는 젊은이가 많아질수록 60만 현역 장병의 어깨 죽지는 더 늘어질 것이다. 더 이상 현역복무 장병들의 전투의지와 사기를 상실하게 해서는 안 된다. 병역면탈의 잡초를 제거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정책입안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며 국민들의 간단없는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 하겠다.(konas)
권재찬(코나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