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 부산풍경과 사람들(KOREA PICS 1951-1953) photos by David
fabiano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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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3 11:41
그때 그 시절 - 부산풍경과 사람들 (KOREA PICS 1951-1953) photos by David Foster
아래 포스팅은 한국전쟁(1951-1953)에 참전한 美軍, David Foster씨가 찍은 부산풍경으로
질곡스러운 그 시절, 일상적인 부산 사람들의 모습과 1945년 일본의 항복문서를 조인했던
당시, 최강의 美 전함 미주리號(Missouri)의 위용과 부신항 정박 장면을 촬영했다.
(1) 부산 사진에 대한 권위가 있는 tata님에 의하면 오른편 정면에 부산공회당 건물이 보이는 중앙로 도로변이며
왼편에 대청로 입구가 보이지 않으므로 현재의 부산우체국 건너편으로 추정하며
왼쪽 언덕 위에는 현, 코모도호텔 일대에 있던 일제강점기 당시의 부산요새사령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왼편에 대청로 입구가 보이지 않으므로 현재의 부산우체국 건너편으로 추정하며
왼쪽 언덕 위에는 현, 코모도호텔 일대에 있던 일제강점기 당시의 부산요새사령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2) 오른쪽 천마산 배경인 이곳은 옛 부산세관에서 본 풍경으로 옹두산 언덕이 보인다.
도로 건너편은 미군 226 보급창으로 지프 뒤편의 시설물이 (22)번 사진 오른편에 나온다.
즉, 이 장면은 (22)번 사진의 왼쪽 끝 차량 뒤편에서 오른쪽으로 본 모습이다.
즉, 이 장면은 (22)번 사진의 왼쪽 끝 차량 뒤편에서 오른쪽으로 본 모습이다.
이 사진 촬영자는 거리에서 뜨거운 음식을 팔고 있는 아낙네들이라는 사진설명이다.
그러나 시기상, 5~6월경으로 보이며 아마도 갓쪄낸 감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3) 뒷면의 나무판자에 <환영 아이크>라는 영문 팜플렛이 보인다.
(4) 당시, 미군들은 분뇨통을 싣고 가는 우마차를 <Honey wagon> 이라고 하였다.
(5) 아마도 고추가루를 빻는 듯, 절구질하는 한 아낙이 복면을 하고 있다.
(6) 실개천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들. 빨래는 주변의 철조망에 널었다.
(7) 소규모의 전쟁포로 캠프. 철조망에 빨래가 널려있는데 주변의 한국 아낙들이 널어 놓았다.
배경에 황령산의 사자봉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대연동으로 추정된다.
(8) 이 사진을 촬영한 David Foster는 이곳에서(메시지센터)에서 18개월 복무하였다.
옆의 한국인 소년은 하우스보이로서 이름은 <유성두>라고 한다. 생존해 있다면 70후반의 나이일 것이다.
(9) 미군 226 보급창 기지의 미군 클럽, Bamboo Rail. 226 보급기지는 옛 부산역 남쪽이면서 옛 세관 서편으로
왼쪽 태극기 뒤편에 보이는 능선이 (23) 사진 중앙의 구봉산 북쪽 엄광산 연결부분이다.
(10) 일련의 이 사진을 촬영한 David Foster. 아래 사진과 같은 곳이다.
(11) 현 동래우체국 자리에 있던 우시장 입구로, 뒤편에 군용차량들 있는 곳이 현재의 동래중학교 자리이며,
그 사이에 명륜교차로에서 유락여중 방향으로 난 도로변 가로수들이 보인다.
그 사이에 명륜교차로에서 유락여중 방향으로 난 도로변 가로수들이 보인다.
왼편으로 낮아지는 금정산 능선은 만덕고개로 연결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12) 사과를 팔고 있는 이곳은 서구 보수천 부성교 난간(부평교차로 복개로 입구)으로서
왼편에 부산대학병원 방면 전차 선로와 함께 현재의 한전 중부산지점이 된 남선전기 사옥이 보인다.
왼편에 부산대학병원 방면 전차 선로와 함께 현재의 한전 중부산지점이 된 남선전기 사옥이 보인다.
(13) 골목 끝, 2층 건물에 광복장(光復莊)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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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정면에 보이는 산은 보수산이다.
(19) 美 합중국 대통령 당선자인 아이젠하워의 한국방문 환영 아치. 한국방문(1952. 12. 2~5)
(20) 美 합중국의 대통령 당선자로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는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이승만대통령과 회담하였다.
(21) Wedding Day. 어느 한국 해군 장교의 결혼식으로 생각된다.
(22) 부산 세관
(23) 美 육군 226 보급창 기지의 일부. (29) 사진과 같은 장소이다.
(2) 사진에서 언급된 언덕 위 옛 부산요새사령부 건물들이 구봉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4) 미군부대에서 비서직으로 근무했던 한국 여성으로 Miss Han이라고 한다.
(25) 부성교에서 상류 방향으로 얼마 안 떨어진 곳으로, 오른쪽으로 몇십 m만 가면 부성교이다.
돌출된 시설물 오른쪽에 비해 왼쪽은 축대를 쌓은 돌들이 훨씬 둥근 면이 많은 것은 축대가 허물어진 것을
복구했기 때문으로 추측되며 이러한 축대의 특징으로 인해 이런 장소는 항상 쉽게 식별할 수 있다.
(26)
(27)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당시, 중부경찰서. 건너편의 건물들은 60년대, 중앙로 확장으로 철거되었다.
(28) 오갈데 없는 피난민들이 건물 추녀 밑에 가마니를 깔고 임시 거처로 삼았다.
(29) 사진속의 어린이는 미군 병기중대 건물 한켠에서 추운 겨울 밤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견 당시 벌거벗은 상태였으며
먹을 것과 옷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은 1970년대 말에 옛 세관 자리에서 남쪽으로 부산대교 접속도로를 내었으므로
226보급기지 중에서도 (23)사진과 (29) 사진에 나온 이곳은 현재의 삼성생명 건물 부근으로 추정한다.
226보급기지 중에서도 (23)사진과 (29) 사진에 나온 이곳은 현재의 삼성생명 건물 부근으로 추정한다.
(30) 팔송에서 청룡정수장 위를 지나 범어사로 올라가는 길이며
나뭇짐에 걸려 있는 가까운 언덕이 오늘날의 영락공원 일대이다.
나뭇짐에 걸려 있는 가까운 언덕이 오늘날의 영락공원 일대이다.
(31) 늘,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가는 한국의 아낙들이었다고 촬영자인 David Foster는 말한다.
촬영자인 David Foster씨가 범어사 방면으로 가는 도중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32)
(33) 가운데 원효봉이 왼쪽 의상봉 아래 바위들 쪽에서 이어져 있으며
(31) 사진보다 좀더 왼쪽 풍경이 나와 있으며, 금정구 구서동 인근으로 추정한다.
(31) 사진보다 좀더 왼쪽 풍경이 나와 있으며, 금정구 구서동 인근으로 추정한다.
(34) 범어사 아래 사하촌의 다랭이논일 것으로 추정한다.
(35)
(36) 그 시절의 유엔군 묘지. 오른쪽의 정문은 현재의 부산문화회관 앞 터널과 매우 가깝다.
왼쪽으로 길게 보이는 언덕이 부산문화회관 일대이다.
(37) 유엔군 묘지로 가는 길목.
(38) 그 시절, 우리 세대의 누이들은 어머니를 대신하여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다.
(39) #36. 37. 38, 40 사진에 이어 이곳은 유엔군 묘지 주변으로 생각된다.
(40) 늦가을, 벼 타작하는 모습.
(41) 궤짝에 도르래를 달아 어린 동생을 태우고 놀기도 했다.
(42) 놀이터가 없었던 그 시절엔 하수구에서도 장난하며 놀았다.
(43) 오른쪽의 두 아이들은 형제간이다.
(44) 전쟁고아들.
(45) 날뛰기를 하고 있는 그 시절, 우리 세대의 누이들.
(46) 놀이터라고는 없던 그 시절엔 아이들이 노는 곳이 곧, 놀이터였다.
(47) 호주軍. 옛 부산역 구내. 1952.
(48)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軍이 1953. 7.27. 휴전협정에 따라 귀향하는 모습. 부산.
(49) 부산항 앞 바다에 정박한 미주리(Missouri)號.
(50) 당시, 세계최강의 전함 미주리號의 위용.
(51) 당시, 미주리號가 정박하였던 곳은 주변 풍경으로 보아 태종대와 신선대 사이에 정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52) 당시, 다른 미군들의 앨범에서도 멀리서 찍은 미주리號의 정박 사진이 발견된다.
(53)
(55) 일련의 사진을 촬영한 David Foster씨. 그는 미국 North Carolina, Lincolnton에 살고 있다.
(56) David Foster씨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