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휴전회담 - 1951. 7.21.
fabiano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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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6 15:31
1951년 6월 23일 소련의 국제연합 대표 J.A.말리크의 제의에 따라 회담장소를 개성으로 정하고, 그 해 7월 8일 예비회담, 7월 10일부터 본회담이 열렸다.
그 후 2차례에 걸쳐 이 회담은 중단되었으나, 국제연합군 측에서 새로운 회담장소로 판문점을 제안하여, 10월 8일부터 판문점에서 회담이 계속되었다.
아래의 포스팅은 영국의 사이트에서 발췌한 것으로 <"Cease Fire" hits sag> 제호의 비디오클립이 있으나
유료(有料)로서 비디오클립의 스틸사진만을 게재하였다. (아래 하단에 주소가 있습니다.)
개성휴전회담 당시의 회담장 분위기와 각국의 취재를 위한 특파원, 종군기자, 리포터의 모습이며
보기 드문 북한 공산여군(女軍)과 남일(南一)대장의 모습이 있는데 비디오클립에서는 남일대장의
미소띤 모습이 있다.
개성회담장에 모인 공산진영의 보도진.
"Cease Fire" Hits Sag라는 제호의 비디오클립.
회담장으로 가는 공산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
공산, 자유진영의 보도진들이 모여 정보취득과 취재에 임하고 있다.
북한의 공산여군(共産女軍).
중국공산당 취재기자와 호주군 종군기자.
영국 "Daily Worker" 특파원, 마이클 샤피로(Michael Shapiro).
공산진영 대표, 남일(南一)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