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1년 2월 17일 맥아더사령관이 수원비행장에서 한국군의 정일권, 백선엽장군등과 만나다. 이때 백선엽장군이 맥아더사령관에게 "We go togetger!"라고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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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가급적 북방에서 적군을 저지하고, 인천에 상륙하여 이를 협공한다"는 전략구상 하에, 우선 일본에 있던 미 제24사단을 한국에 급파, 적군의 남하저지를 시도했다.
그러나 북괴군은 최신식 전차와 야포, 그리고 잘 훈련된 보병으로 아군에게 재정비의 시간을 주지 않고 속전을 강행하였다.
후방에서는 게릴라전으로 남한내 불순분자들을 동원하여 UN군 병참선과 통신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병행하였으므로 미군은 피아(彼我)분간이 어려워 혼전을 피할 수 없었다.
'부산 교두보'(차후작전을 유리하게 전개시키기 위하여 설치한 지점 : 경상남북도의 ⅓)를 사수하기 위하여 분전한 약50일간의 진지 사수작전(陣地 死守作戰)을 되돌아 볼 때, 풍전등화 같았던 나라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감사한다.
유엔군의 총반격작전·북진
▲ 1950년 8월 낙동강전선에서 적부대 집결지에 융단 폭격하는 미공군 B-29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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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공군의 폭격으로행동이 완전히 제한된 적군은 9월 총공세가 실패하자 전투능력 상실과 최악의 병참지원, 피로 중복, 영양결핍, 패전감, 무자비한 지휘통솔 등으로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었다.
9월 16일 9시를 기해 미 제10군단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호응하여, 낙동강 전선에서도 UN군 및 국군이 총 반격작전을 개시하였다.
인천 상륙 작전, 서울탈환
9월 15일 새벽 6시 30분 미 해병 제1사단 제5연대의 289명 병력은 인천의 월미도 상륙작전에 성공했으며 이로써 근 3개월의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한다.
6·25남침 3일만에 서울을 잃은 직후, 맥아더 장군은 수원근방 전선을 시찰할 때 이미 인천 상륙작전을 구상하였다. 이 작전이야말로 전략, 전술적인 면 뿐만아니라 정치적, 심리적 효과가 극대에 달할 것이고, 더 나아가 호남 곡창에 있는 전략물자인 쌀을 북괴군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이 한국 국민에게 더 없는 값이 될 것이라고 장군은 역설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세기의 大도박'(성공확율 5천대1)이었다.
맥아더 사령부에서는 상륙작전계획을 구체화하여 워싱턴에 보고한다. 워싱턴에서는 맥아더 장군의 계획을 확인 토의하기 위하여 '콜린스' 장군과 '서먼' 제독을 특사로 극동사령부에 파견한다.
8월23일에 맥아더 장군은 특사단에게 약 한시간 동안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타당성 설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결론을 맺는다.
"만일 나의 판단이 빗나가 승리할 수 없는 방어로 돌입한다면, 나는 몸소 그 곳에 나아가 상륙군이 피나는 좌절을 맛보기 전에 철수시킬 것이다. 그때 유일한 손실이란 나의 직업적인 명예뿐일 것이다. 그러나 인천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인천은 성공한다. 그것은 10만명의 생명을 구할 것읻."
훗날 콜린스 장군은 그 연설이 '감동적인 연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맥아더 장군은 8월 30일 인천상륙작전 명령을 하달한다.
미 해군함정 226척을 포함한 총261척의 상륙작전 기동부대는 약 75,000명을 상륙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여 북진하고 있는 미 제1기갑사단과 인천으로 상륙한 미 제7사단 병력이 9월 26일 서정리(오산∼평택간)에서 합류한다. 한편 같은날, 한미해병대는 연희동 및 마포 쪽에서 중앙청 쪽으로, 미 제7사단 병력 일부는 서빙고, 뚝섬방향에서 서울시내 쪽으로, 그리고 국군 제17연대는 하왕십리로 진출하여 전략요지인 망우리를 점령한다.
9월 27일 새벽 서울시내 곳곳에서 시가전이 전개되는 가운데 6시 10분 한국해병 제2대대 6중대 1소대는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였으며, 9월 28일 10시경(종군기자들에 의하면) 명동의 교회당을 비롯한 많은 교회에서 서울탈환을 축하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로써 89일간 북한 공산군 치하에서 신음하던 서울은 자유를 다시 찾았고, 9월 29일 12시 서울 환도식 이후부터는 눈앞에 다가온 통일만이 남은 과제임을 다짐하며 희망의 10월을 맞는다.
9월29일 맥아더 원수는 서울을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 하에 넘기는 식전에서(환도식)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서 인류의 가장 큰 희망의 상징인 UN기 아래서 싸우는 우리군대는 한국의 수도를 해방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의 전제적 지배에서 해방된 시민은 다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제일로 하는 생활을 영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귀국이 입은 전쟁의 참화에 대하여 전 세계는 깊은 관심과 우의로 단호히 궐기하여 전력을 다하여 귀국을 구원하기로 맹세하였습니다. 육체를 살리려면 정신을 살리지 않고서는 안됩니다. UN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본인은 각하에 대하여 귀국 정부의 소재지를 회복하고, 이에 따라 각하가 헌법상의 책임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한국 국민에 대한 책임을 각하와 귀 정부에 맡기고 본관과 부하장병들은 다시 군무에 전념할 각오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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