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끓여주는 미역국
당신의 생일에 씁니다. 세월이 참 많아 흘렀소.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이란 것을 꾸렸소.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으로 살아가는 일에 많이 서툴렀던 것 같아요.
나는 늘 세상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치열하게 살았어요.
그것이 가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여겼어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당신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작은 외로움을 습관처럼 가지고 살았었지.
우스운 일이지만 이제야 당신의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너무 늦었소? 사과의 마음을 전하기는...
기억하오? 당신이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
당신이 끓여주는 미역국 한번 먹어보았으면 그랬던 것. 내 오늘에야 그 숙제를 한다오.
당신을 만난 것이 올해로 42년이오.
젊은이들 참 길고도 긴 세월이라고들 하겠지만 바람처럼 지나간 느낌이라오.
큰 놈이 군에 가고 작은 놈이 대학에 들어가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녀석들이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구려.
때로는 어머니로, 때로는 친구로 안내로, 또 때로는 나의 조력자로 긴 세월 내 곁을 지켜준 당신.
당신에게 사랑과 정성을 담아 밥 한 끼 대접합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야 정말로 좋은 것,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나를 이해해주기 바라오.
이제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거요.
그것이 몇 년이든 며칠이든 우리 괘념말자구요.
그저 매일 함께 쌀을 씻어 밥을 짓고 마주보고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행복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사람, 당신의 예순여덟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칠십이 넘어서 철든 남편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