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사진작가北방문기①] 중국사람 '北 어떻게 보나' 관심집중할때
fabiano
사진으로 보는 뉴스
3
1519
2006.09.18 09:46
진저리나는 문화혁명 기억 | ||||||||||||||||||||||||||||||||||||||||||||||||||||||||
[2006-09-15 18:15] | ||||||||||||||||||||||||||||||||||||||||||||||||||||||||
핵과 미사일, 탈북자 문제 등으로 중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7월 북한 미사일 사태 후 북한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비판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사이트에 북한방문기와 사진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전통적인 북중관계에 대한 인식이 중국 대도시 거주자들을 중심으로 많이 바뀌었다. 이들은 북한의 굶주림과 김정일 정권의 폭압정치에 매우 비판적이다. 개혁개방으로 나오면 인민들이 살 수 있는데, '수령'(김정일)이 자기 배만 채우려 개혁개방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물론 현재의 중국은 한국, 미국, 유럽 등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여론 정치'를 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 있지 않다. 그러나 중국사람들이 북한인민과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향후 북중관계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또 이에 따라 북한정권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또 한반도 전체의 운명과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중국인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데일리NK는 그동안 중국 네티즌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도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보도할 계획이다. 중국인들의 관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방문기와 사진설명, 네티즌의 댓글 등을 되도록 의역(意譯)하지 않고 직역한다. 아래의 북한사진과 방문기는 카메라 동호인회 사이트인 '가우재선'(佳友在?)과 북한전문 사이트인 '금일 북조선'(今日北朝?)에 실린 것으로, 최근 중국의 대형 포탈사이트 '망역'(網易)과 중국관영TV (CCTV.com) 인터넷판에도 올라 있다. 이 사진은 아이디 '쇼쇼'(??: 새벽)인 가우재선 회원이 지난해 10월 북한을 방문해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들은 또 중국의 인터넷 랭킹 5위권에 들어있는 싱타오 환구망(www.singtaonet.com)을 비롯해 대만의 인터넷 매체 수백 개에 게재돼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네티즌들의 댓글이다. 한 네티즌은 “북한의 현실은 중국의 20년 전과 같다. 인민이 너무 고생한다”(朝??在是中?二十年前, 人民?苦)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백성이 고생한다. 북한은 응당 개혁개방해야 한다. 중국과 한국에게 좀 배워라”(苦了老百姓 朝????行改革?放,向中?和????)고 촉구했다. 김정일에 대한 비난도 높았다. “김뚱보 독재통치를 뿌리뽑고 민주조선을 실현하자, 그래야 인민에게 출로가 있다”(?除金?子?裁?治,??民主朝?,人民才有出路) 등의 댓글 수백 개가 잇따랐다. 가우재선 '쇼쇼'(??)의 방문기와 사진 설명을 소개한다. 데일리NK 기획실 "비밀스런 국가의 문을 열다" 북한은 가깝고도 잘 알 수 없는 국가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북한에 관한 정보는 점점 적어졌다. 북한은 내부의 비밀스런 면모를 일체 숨기고 있다.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이 나라를 찾기 위해 북한에 들어갔다. 아래의 사진들과 글은 3박 4일간 보고 들은 것이다. 9월 30일 오전 11시 30분. 우리가 탑승한 고려항공기는 1시간 30분을 날아 평양 비행장에 도착했다. 평양 비행장은 크지 않고 아주 조용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대합실에 있는 김일성의 초상화였다.
가이드는 이준(李俊)이라고 부르는 30세 정도의 젊은이로, 북한의 제3국제여행사에 근무했다. 그는 북한에서 4년간 중국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보기에는 아주 무던해 보였다. 우리 일행은 모두 24명인데, 벨기에 사람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사람이다. 이 가이드는 차에 올라 우리의 요청에 따라 '꽃 파는 처녀'를 중국어로 불렀고, 북한 혁명가요를 불렀다. 아주 목소리가 좋았다. 이 가이드는 차에 탄 사람들 중 운전기사를 제외하고 다른 한 '최 가이드'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사실 우리는 차에 오르기 전부터 차의 꽁무니에 앉아 있는 '최 가이드'에 대해 궁금해 했다. 북한을 찾는 관광단마다 이렇게 말 수가 적은 '가이드'들이 한 사람씩 섞여 있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행을 따라 다녔다.
대형 선전화와 구호판들, 정치적 선전성이 강한 선전화들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기념비들이 즐비하다. 이런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전에 문화대혁명 시기에 겪은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마치 세월이 거꾸로 가는 듯했다.
벨기에 친구는 항상 가이드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자기가 호기심 나는 곳을 제멋대로 가보았다. 이 가이드는 우리에게 “경치는 찍을 수 있지만, 허락하지 않는 곳은 찍지 마세요”라고 가르친다. 좋은 곳은 찍게 해주고, 나쁜 곳은 못 찍게 했다. 이 사진들은 그의 허락을 받아 찍은 것이다. 최 가이드는 나쁜 곳을 지날 때면 빨리 차에 오르라고 독촉하곤 했다.
이 3개 호텔의 시설이 중국의 3성급이나, 4성급 호텔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호텔은 보기에도 차이가 아주 많았다. 호텔 앞 주차장에 두 대의 호화 승용차가 있었다. 바로 옆에 한 대의 베이징 지프차도 있었다.
평양은 주요거리를 내놓고, 거의 모든 가로등은 죽어 있었다. 호텔 밖으로는 혼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묵은 29층은 창문으로 멀리 평양의 고층건물과 거리를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평양의 광복거리 전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