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태우며.....
fabiano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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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6 00:07
이제 마지막의 낙엽을 태우며......
오래된 학창 시절, 이효석님의 同名 제목의 수필을 읽어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읽는 느낌은 늘 같으니.....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猛烈)한 생활의 의욕(意慾)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게면서 즐거운 생활감(生活感)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리 속에 띄운다.
음영(陰影)과 윤택(潤澤)과 색채(色彩)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한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想念)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感傷)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에를 깊게 파고,
다 타 버린 낙엽의 재를---죽어 버린 꿈의 시체를---땅 속에 깊이 파묻고,
엄연(儼然)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