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를 지나며....
fabiano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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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7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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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AP통신의 기자들에 의하여 묻혀진 역사의 현장이 전세계의 뉴스에 올랐던
노근리사건 현장을 지난다.
그 이전에도 피해자들이 몇 차례 제기하고 보상을 요구하기도 하였으나 관계 당국에 의하여
번번히 묵살되었다.
2001년 1월 12일 노근리 사건 한·미양국조사단은 공동 발표를 통해 노근리 사건이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는 사건 실체를 인정했으며 Bill Clinton 美 대통령은 이날 노근리 사건에 대한 성명을 발표,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사격명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식으로 명령체계에 따른 학살이란 사실은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2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2004년 7월부터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한편 1999년 9월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의 실체와 진실을 파헤쳐 전세계에 알린 3명의 AP기자는
이 보도로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한편 美 국방부는 노근리 사건에 대한 수사를 16개월 동안 진행한 끝에 노근리 양민학살은
"불행한 비극"이지만 "의도적인 학살"은 아니었다고 결론지었다.
국방부는 이어 겁에 질린 한국전쟁 참전 미군들이 상부의 명령 없이 총기를 난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해 5월 AP통신은 지난 1950년 John Muccio 주한 美대사가 美 국방부에 '미 방어선 북쪽에서
피란민이 나타나면 즉시 경고탄을 쏘고 그래도 저항하면 발포할 것'이라고 보고한 서한이
공개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60년대 중반에 월남파병을 하였는데 월남 전투현장에 피난민을 가장한 베트콩의 테러
공세에 우리 한국군들의 희생이 무척 커서 차기 작전에 베트콩 침투정보가 있으면 비극적이지만
피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쟁의 비극은 우리가 이해하여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