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초초만원(超超滿員)이다.
지난 토요일, 서울에 갔습니다.
큰 아들이 이사를 한대서 이래저래 필요한 생활물품을 정리해서 즈 엄마랑 같이 갔습니다.
작은 아들이 IT 관련 학과를 전공했지만 좀더 배우겠다고해서 제 형과 함께 같이 쓸 집을 구하여
이사짐도 도와 줄겸, 겸사겸사 갔습니다.
5,6년전에 전세방을 구해 주었는데 그동안 부동산이 엄청나게 상승하여 억대를 요구하는 전세금
이여서 일반 서민들이 살 수 없는 강남쪽을 제치고, 적당한 전세를 물색하다보니 강서쪽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두 아들이 합쳐서 사는 집이라 웬 짐들이 그리 많은지....
정신없이 나르는 통에 눈 깜짝할 사이에 손 탄 에어컨과 가스렌지.
새벽에 일어나 옥상에서 바라본 공간이 없는 시내의 모습에 숨이 콱 막히고.....
쓸고 닦고 대청소하고 정리하는 법석 통에 이틀 날짜가 후딱 지나고 오늘 오후에야 시골 집으로
내려왔지만 마음은 다소 씁쓸하기만 합니다.
제 학창시절인 그 시절 1960년대 중반에 서울의 인구가 대략 380만명 정도였지만 작가 이호철씨가
1966년도에 발표한 소설의 제목이 <서울은 만원이다>였습니다.
그 시절만 하여도 소달구지가 사대문 안 동네에 심심치 않게 다녔고 초가집도 몇 채 볼 수 있었고
느리긴하지만 대중교통으로 전차도 운행하고 있었던 서울은 이미 만원이었습니다.
뻔질나게 열차를 타고 서울을 왕래했던 터라, 그 시절 시골에서 뿌리뽑힌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서울로....망우리 공동묘지까지 만원이었던 상황이었지만 결코 뿌리 내리기가 쉽지 않았던
서울이었습니다.
결코 낯선 땅은 아니지만 또한 고향도 아닌 곳이 서울이기도 했습니다.
빚에 쪼들려 야반도주한 동네 친구녀석은 끝내 서울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고향아닌 타향에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도 풍문에 듣지만 눈감으면 코베어 가는 세상보다 더 험한 눈뜨고 있어도
코베어 가는 세상이 너무도 야속하기만 합니다.
불도저라고 불리웠던 김현옥시장, 두더지라고 역시 불리웠던 양택식시장의 그 시절에 보리밥에
나물 먹고 이빨 쑤시며 휘황찬란한 밤거리의 종로, 명동거리를 누벼도 특별시민이라고 자긍심을
갖던 그 시절에도 온갖 못된 잡놈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름답다는 서울찬가는 유행했습니다.
세월은 흘러흘러 자동차가 귀했던 그 시절엔 자가용 굴리는 것은 특권층이거나 재벌 쯤으로 알았던
시절이지만 요즘에야 필수적인(?)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폭발적인 인구팽창에 따른 댓가로 자동차가 너무 많아 車,車,車 가 모여 轟音(굉음)이 그칠 사이가
없는 나날이며 여유로운 공간이 없는 거대한 서울입니다.
시골집에서 한 바퀴 돌아 온 462 Km의 거리가 짧은 거리가 아니지만 가는 곳곳이 자동차의
행렬이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도 車, 車, 車....
예전엔 유료주차장을 꼭 이용해야 했지만 이제 서울의 아들에게 가면 주차장소가 할당된 아파트가
있으니 비싼 주차료는 안물어도 되겠지요.
뱀꼬리에 발 달린 말(蛇足), 車가 없었던 그 시절엔 어떻게 살았을까?
이래저래 서울은 超超滿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