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1914) 사진- 1부
제1차 세계대전(World War2).
1914년 7월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 1918년 11월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으로, 약 4년간 주로 유럽을 전장(戰場)으로 하여 싸운 전쟁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 의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에 있으며 1개월 후에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였다.
그것에 대해 범슬라브주의를 표방하는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자세를 보이자 3국 동맹에 의해 오스트리아와 동맹관계에 있던 독일은 기선을 제압하여 8월 1일에 대(對)러시아 선전포고하였다. 한편, 영국ㆍ프랑스는 3국 협상에 의해 러시아를 지원하였기 때문에 전쟁은 영국ㆍ프랑스를 둘러싼 결과가 되었다.
그 위에 영국과 동맹관계에 있던 일본도 선전하고, 11월에는 터키가 독일 측에 참전하였기 때문에 전쟁은 아시아에도 파급되었다.
당초 독일은 단기 결전을 생각하였지만 9월초 마르누회전에서 프랑스가 승리하자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져 장기적인 참호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교전국은 징병제에 의한 병력 증강이나 경제력의 총동원을 추진한 ‘총력전’ 체제가 구축되고, 독가스, 전차, 폭격기 등 파괴력이 높은 무기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피해가 급증 하였다. 또한 유트랜드 해전에서 영국에 제해권을 빼앗긴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단행한 결과 피해를 받은 미국이 1917년 4월에 대(對)독일 참전하여 협상국 측이 우위에 섰다.
한편, 전쟁으로 피폐한 러시아는 1917년 11월의 혁명에서 볼셰비키 정권이 성립하여 ‘무(無)합병ㆍ무(無)상금ㆍ민족자결’의 강화를 제창하고 전선을 이탈하였다. 이러한 반전으로 혁명의 기운은 독일에도 파급되었으며 1918년 11월에는 키르군항에서 일어난 수병의 반란을 계기로 독일의 제정이 붕괴되어 전쟁은 종결을 맞이하였다. 결국 이 전쟁은 양방에서 6,300만 명의 병력이 동원되었으며 854만명이라는 전대미문의 전병사자(戰病死者)를 낳았기 때문에 전후에는 윌슨(Thomas Woodrow Wilson) 등의 제창으로 국제 연맹이 창설되었지만 대(對)독일 강화를 규정한 베르사유조약에서는 배상금이 부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