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餘白)
가을 끝자락에서
다소곳이 바람에 나부끼어 한 잎 두 잎 거리 위를 말없이 구르다가
발길에 채이는 낙엽의 속삭임은 인생의 허무와 무상이 그 속에 들어 있는 양,
또 인생을 비웃는 조소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껴안고 싶으리만치 다정한 듯
귀여운 듯이 느껴진다.
없어진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슬픈 일일지 모른다.
신록을 자랑하던, 푸르게 무성했던 잎사귀들이 누렇게 물들고 말라서
떨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밟히어야만 할 저의 운명을 말없이 다소곳이 받고 겨울바람에
나부끼며 거리를 구르는 낙엽은 인생보다는 훨씬 영리한 듯 불행도 불만도 없이
제 갈 길을 굴러가는 폼이 한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金光洲 <落葉과 같이>
낙엽이 거리 위를 뒹군다는 것은 가을이 깊어가고 그 끝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낙엽은 우리에게 어떤 추억거리를 간직하게 한다.
또한 낙엽을 보면 무엇인가 사라져 버리는 상실감이 들기도 한다.
여름 내내 푸름을 뽐내며 싱싱하게 서있던 나무들이 하나 둘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때면 가슴 한 편에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즉 영원하지 않은 인간의 생명을 새삼스레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낙엽은 상실감만을 주는 것도 아니다.
낙엽이 쌓인 산길을 걷노라면 그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낙엽을 밟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떨어진 나뭇잎인데 썩어 없어질 것인데 낙엽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사고의 즐거움을 준다.
그냥 포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지나 온 삶의 자리를 생각하며 홀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낙엽은 썩어야 제 맛이다.
썩어서 없어져야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그러나 낙엽은 인간의 시야에서 결국은 사라지지만 결코 죽는 것이 아니다.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생명력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곧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북이 쌓아놓은 낙엽을 태우며 그 연기를 맡으면 맹렬한 생활의 의욕이
생긴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글 신성근 신부
Les Feuilles Mortes (古葉) - Yves Mont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