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골프 망동과 차지철의 일화
fabiano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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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19:54
<칼럼>농사꾼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골프를 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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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쇠망치에 전기톱까지 등장하며 난동에 가까운 공방을 벌이던 국회가 김형오 의장의 ‘직권상정 유보’ 발언, 뒤이은 박근혜 의원의 질책과 대화종용으로 겨우 진정되자마자 양당 의원들은 회기가 끝나기도 전에 주책과 망동을 부렸다. 며칠 전까지 철천지원수라도 진양 육박전도 불사하고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의원들이 나란히 방송에 나와 언제 다투었던가 싶게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판을 벌여 빈축을 사더니, 이번엔 국회의원들의 해외 골프 여행이 새해 벽두부터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휴일을 이용한 건전한 골프 여행이었다고 자당 의원들을 두둔하는 박지원 의원의 발언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정치인들의 골프 모임은 항상 잡음이 뒤따른다.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정략적인 골프 회동, 일반인들을 몰아내고 고위층만 즐겨서 말썽을 일으킨 황제 골프, 뇌물 수수가 난무하는 부패 골프, 술 취해서 캐디에게 폭행까지 가한 추태 골프, 재해 지역 위문을 핑계로 몰래 즐기다 발각되는 망신 골프 등등, 별별 잡음이 그치지 않는 게 정치인들의 골프 회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들은 골프를 치지 말고 조깅을 하라”는 김용갑 전 의원의 충고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과 격리된 곳에서 은밀한 대화나 금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골프장을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은 운동을 빙자해서 자주 찾는다. 그러나 서민들은 비용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운동이 골프다. 반면에 조깅은 운동화 한 켤레만 준비하면 훌륭한 운동 효과도 내고 동시에 이웃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커피나 음료 한잔으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야말로 서민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서민의 삶과 애로를 보살피고 알아야 하는 정치인이 가장 선호해야 할 스포츠는 조깅이나 등산이라 할 수 있다. 고위층의 골프와 관계된 이야기 중에는 10.26 사태로 고 박정희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 한 당시 경호 실장 차지철 씨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차지철은 당시 중정부장이던 김재규와 권력 다툼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로 죽은지가 40년이 가까운데도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지만, 그가 생전에 남긴 골프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교훈적이라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그가 경호실장이던 60년대 말에 경기도 이천에 새로운 골프장이 개장 되었다. 당시 이천 출신 중에서 가장 출세한 이가 차지철이었고 보니, 이천에 개장하는 골프장 준공식에 그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그가 초청되었고 새로 만들어진 코스의 개시와 품평은 그의 몫이었다. 성대한 준공식과 파티 준비를 해놓고 당대의 권력자를 기다린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시간에 맞춰 골프장을 향해 오던 차 실장이 골프장 어귀에서 돌연 운전기사에게 차를 돌리라 하더니 그 길로 서울로 돌아가버렸다. 그날 준공식은 김이 빠진 채로 진행되었지만, 나중에 알려진 그 사유가 감동적이다. 이천이 고향인 차지철은 골프장을 향해 가던 중에 자기 집 앞을 지나게 되었고, 그 때 땡볕 아래 흰 수건을 머리에 쓰고 밭에서 풀을 뽑고 계시던 어머니를 보았다. 나중에 그는 흰 수건을 쓰고 밭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고는 도저히 귀족놀이 골프를 하러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다. 그 후 차지철은 10. 26 사태로 죽는 날까지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한다. 알려진 효자였던 차지철은 수차 어머니를 서울 집으로 모시려고 애를 썼으나 엄격한 성격의 어머니는 매번 거절하고 시골의 아낙으로 만족하는 삶을 누리시다가 아들의 시신을 거두어야 하는 슬픔까지 겪었다고 전한다. 오직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평생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차지철은 죽은 후에까지 욕을 먹은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러나 나라 일을 하는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되기를 거부하고 평범한 농사꾼으로 평생을 살아가신 그 어머니나 땡볕에 밭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서민의 애환을 깨달아 그 길로 골프를 그만두어 버린 차지철의 정신만큼은 오늘날의 모든 정치인들과 돈 푼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며 골프장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될 만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모두가 어려울 때다. 엄동설한에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내몰린 국민을 조금이라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 정치인들은 당연히 망동을 삼갈 때다. 글/산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