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크 강제수용소의 삶 (Life in the Gulag)
fabiano
History &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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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16:57
굴라크(러시아어: ГУЛаг, gulag)는 소련에서 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정부기관이다.
이는 Glavnoye upravleniye ispravitel'no-trudovykh lagerey i koloniy의 약자로
번역하면 "국가 보안국 교정 노동 수용소의 주 관리 기관"이다.
원래는 기관의 이름이었지만 점점 강제 노동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앤 애플바움(Anne Applebaum)은 굴라크의 역사(Gulag : A History)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국가 보안국의 한 지국으로, 강제 노동 수용 및 관련된 구금과 수용, 감옥에 운송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수용소는 모든 종류의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있으나, 굴라크 시스템은 정치범 수용소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는 데 쓰이고 있다. 수감된 자들은 수백만명에 이르지만 서방에 알려진 것은
“국가 보안국의 한 지국으로, 강제 노동 수용 및 관련된 구금과 수용, 감옥에 운송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수용소는 모든 종류의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있으나, 굴라크 시스템은 정치범 수용소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는 데 쓰이고 있다. 수감된 자들은 수백만명에 이르지만 서방에 알려진 것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73년에 쓴 《수용소 군도》(The Gulag Archipelago)를 통해서이며,
작품에서 솔제니친은 흩어진 수용소들을 군도에 비유하고 있다.”
작품에서 솔제니친은 흩어진 수용소들을 군도에 비유하고 있다.”
최소한 476개의 수용소 집합체가 있었으며, 각각은 수백개, 심지어는 수천개의 개별 수용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5~7백만명의 수용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약 10%가 매년 죽었다.
아마도 최악 수용소 집합체는 북극해 연안의 콜야마, 노릴스크, 보르쿠타에 있는 것이었다.
5~7백만명의 수용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약 10%가 매년 죽었다.
아마도 최악 수용소 집합체는 북극해 연안의 콜야마, 노릴스크, 보르쿠타에 있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굴라크 수용자는 양심수가 아닌 범죄자들이었지만, 양심수의 수도 상당히 많았다.
무단 결근이나 좀도둑질, 정부에 대한 농담만으로도 굴라크에 수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무단 결근이나 좀도둑질, 정부에 대한 농담만으로도 굴라크에 수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정치적인 수감자의 약 절반 정도는 굴라크 감옥으로 별도의 재판 없이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1921년에서 1953년 사이에 소비에트 비밀 경찰이 조사한 경우와 관련해서,
피고인을 감옥에 들어가게 판결한 사례의 수가 이백 육십여만 명이 넘는다.
1929년부터 1953년까지 다 합하여 아마도 1천 8백만명이 "굴라크"를 거쳤으며,
수백만명이 먼 곳으로부터 이곳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글 출처: 위키백과
아래 사진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굴라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