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fabiano
이야기
0
2126
2017.03.17 12:17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아래의 글은 인터넷 웹서핑 중에 최경탄 작가님의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에서 만난 것으로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인데 나는 내 블로그 <맨날 추억에 사네>에 걸맞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메일로 최작가님께 연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보냈는데 어제, 답신이 왔다.
일단, 몇 가지 포스팅해 보라는 말씀으로 나는 내 블로그에 <인생만화경> 카테고리에 담아 보고 싶다.
최경탄 작가님의 <인생만화경>은 우리 세대에게 공감을,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와 삶의 흔적을 느끼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추억의 삼천
포 시절(216)
167. 목숨 살린 미제 속옷
신동헌 선생님은 틈만 나면 김용환 선생님을 찾아가서 그림을 보여주며 조언을 듣고는 했다.
김용환 선생님은 “만화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스케치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선생님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조언을 생각하며 스케치를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은 학구열에 서울대 건축학과를 다녔지만 6ㆍ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대학 공부를 중단하게 된다.
북한은 탱크를 앞세워 물밀듯 밀어닥치더니 삽시간에 서울을 점령했다.
미처 피난을 못 간 선생님은 잠깐 길거리로 나왔다가 그만 인민군에 잡히고 만다.
그 후 선생님은 인민군에 편입돼 한동안 인민군 행세를 하게 된다.
그리고 몇 달 후 인천에 상륙한 미군들이 서울에 입성하게 되자 인민군은 뿔뿔이 흩어졌고 부대가 흔적 없이 없어진다.
그때 선생님은 인민군복을 입고 태연하게 거리를 다니다가 미군에게 인민군으로 오해를 받고 잡힌다.
전쟁은 살벌했다. 그때 양 군은 포로를 잡아들였고, 귀찮으면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쏘아 죽였다.
이때 선생님은 미군에게 자기는 인민군이 아니고 그들에게 잡혀 군복만 입은 거라고 말해야 하는데 영어를 하지 못해
쩔쩔맸다.
자칫하면 총살을 당할지도 모른다. 앞에 있는 사나운 눈매의 미군은 바로 총을 쏠 기세였다.
그 순간 선생님은 갑자기 바지를 내린다. 미군과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바지를 내린 선생님은 속옷을 가리키며 “made in USA”라고 외친다.
전에 미군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줄 때 친하게 지냈던 스티브라는 병사가 선물해 준 것이었다.
영어를 모르는 선생님은 자기는 미군과 친하게 지냈다는 증거로 속옷을 보여준 것이다.
미군은 속옷을 확인하고는 약간 경계심이 풀렸는지 사형시키지 않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낸다.
죽음 직전에서 한 미군이 선물한 속옷이 선생님을 살린 것이다.
선생님은 2년 동안 포로 수용소에 있다가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으로 반공 포로 석방에 가세해 옥살이를 마치게 된다.
서울로 올라온 선생님은 김용환 선생님의 추천으로 잡지사에 작품을 하게 된다.
그때 동생인 신동우 선생님과 함께 만화를 그리게 된다. 두 분은 금방 인기작가로 자리 잡았다.
내가 선생님 작품을 처음 보게된 것은 학원 잡지이다. 학원에는 ‘가라사대’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었다.
내용은 한국 속담을 이용해 간단하게 만든 작품인데 상당한 재미와 교훈을 줬다.
그리고 아리랑 잡지에 ‘너털주사’, 다른 잡지에 ‘럭키 칠봉이’ 등을 그리면서 일급 작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신동우 선생님은 250쪽의 대형 작품 ‘삼총사’를 출간한다.
삼총사는 펜화로 그린 완전한 삽화체로 신동우 선생님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 작품은 김정파 선생님의 ‘아! 무정’과 함께 최초의 메이저급 작품으로 한국 만화사에 길이 남을 수작이다.
그뿐만 아니라 신동우 선생님은 만화대여점 작품 ‘날쌘돌이’를 내놓으며 큰 성공을 거둔다.
두 형제는 그렇게 1950년 후반과 1960년 초 만화판에서 최고의 인기몰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