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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꿀보다 달다

fabiano 2 1822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그림에는 음식 재료가 자주 등장한다. ‘피는 꿀보다 달다’ ‘굶을지언정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다’ 등 먹는 것과 관련된 명언도 많이 남겼다. 자신의 작품을 남들에게 소개할 때도 그는 요리 용어를 자주 끌어오곤 했다.

달리는 자기 자신 외에는 그 어느 누구와도 쉽게 대화할 수 없었던 상처 많은 소년이었다. 달리의 부모는 첫 아들을 일곱 살에 잃었다. 꽤나 총명했고,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형이 죽고 3년 후에 태어난 달리에게는 죽은 형의 그림자가 씌었다고나 할까. 형의 망령에 사로잡힌 부모로 인해 달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자랐다. 부모는 달리가 뭘 잘할 때도 또 못할 때도 늘 “큰 애였더라면…”이라는 말을 꼭 덧붙였다. 그 말이 어린 달리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던지, 여덟 살 때 그는 일부러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 놓는 반항을 저지르기도 했다.

언제나 그는 남들이 볼 수 없는 환상을 봤다. 지하철을 혼자 못 탔고 차들이 자기를 향해 달려드는 환상 때문에 길을 건너는 것조차 무서워했다. 심리적 원인을 캐고 싶었던 달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는 “이건 일생일대의 발견이야. 내 모든 비밀이 풀린 것 같군” 하며, 당시 60세가 된 프로이트를 찾아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갔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젊은이를 프로이트가 만나줄 리 없었고 달리는 매번 헛걸음을 치고 말았다. 그 이듬해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퇴학당했다.

달리는 카탈루냐 사람이었다. 피게레스는 달리의 도시다. 피게레스에서 태어났고, 피게레스 병원에서 운명했다. 그리고 피게레스에 있는 달리 연극 미술관에 자신이 갖고 있는 작품 전부를 남기기도 했다. 달리 연극미술관은 피게레스 시의 주 수입원이다.

이 미술관 덕분에 주변의 레스토랑과 바까지 성업한다. 개관 10년째 되던 1974년에는 미술관 옆에 위치한 옛 성탑 토레 고르고트를 사들여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달리가 참석한 가운데 축제 같은 개막식을 했다. 성탑과 연극미술관 꼭대기에는 커다란 달걀들이 보인다.

살바도르 달리 ‘나르시스의 변신’ 1937, 캔버스에 유채(왼쪽). 살바도르 달리 ‘접시 없는 접시 위의 달걀들’ 1932, 캔버스에 유채(오른쪽).
달걀은 달리의 그림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기도 하다. 아마도 구원자라는 뜻의 그의 이름, 살바도르와 새로운 삶을 뜻하는 달걀에 어떤 심오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르시스의 변신’이라는 작품을 보면, 고개를 숙인 채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슬프게 바라보는 달리의 모습이 나르시스가 돼 왼편에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나르시스와 아주 비슷한 형상으로 손가락이 있고 그 위로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이 보인다. 달걀의 껍데기를 깨고 수선화가 활짝 피어올라와 있다. 타인을 사랑할 수 없었던 외로운 소년 나르시스의 영혼이 수선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접시 없는 접시 위의 달걀들’에서는 접시 위에 달걀 프라이 두 개가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달걀 프라이 하나가 실에 묶여 매달려 있다. 달리는 달걀 프라이를 엄마 뱃속에 있었던 기억으로 묘사한다.

“내게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곳은 파라다이스였다고. 무엇보다 파라다이스는 따뜻했고, 고요했으며, 부드러웠고, 균형이 있었으며, 두터웠고 끈끈했다. 내가 본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이미지는 프라이팬 없이 떠다니는 달걀 프라이였다.

그 이미지는 일생을 두고 환각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살면서 혼란이나 흥분 상태를 경험할 때가 있는데 그 저변에는 반드시 달걀 프라이의 환각이 있었다.”

수수께끼 같은 이 그림 속의 달걀을 해석하려면, 달리가 한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단서가 될 만한 단어는 엄마의 뱃속과 파라다이스다. 그러니까 달걀은 질서가 생기기 이전의 카오스, 즉 무의식의 세계를 뜻하는 모양이다.

달리는 여자 옷 같이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고 다녔고, 익살스럽게 꼬부라진 콧수염으로 유명하다. 한 번 웃기 시작하면 얼굴이 벌겋게 되고 땀을 뻘뻘 흘리도록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뭐가 재미있어 그가 그토록 웃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실 달리의 유머감각은 좀 기괴한 편이어서, 주변 사람은 언제 웃어야 할지 늘 난감해 했다.

살바도르 달리 ‘양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 1933, 캔버스에 유채.

이런 걸 유머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열 살 연상의 여인, 갈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특이한 세레나데 이벤트를 벌였다. 일종의 프러포즈였다. 달리는 벌거벗은 몸에 지저분한 것들을 마구 묻힌 채, 썩은 양파를 양쪽 겨드랑이에 끼었다. 게다가 면도칼로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보였다. 갈라는 아주 깐깐했고 영리하며 매력적이고 야심에 차 있었지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무정한 여자이기도 했다. 그런 갈라에게 달리의 이런 자해적인 유머가 효과를 봤는지, 갈라는 전 남편과 이별하고 달리의 품으로 왔다.

달리는 갈라에게 꽉 잡혀 지냈다. 식사를 하다가도 갈라가 쪽지를 보내면 그것을 읽느라 정신 없었다. 남들 앞에서 말할 때도 연신 갈라 쪽을 쳐다보며 ‘뭐라고 말하지?’ 하고 몇 번이나 묻곤 했다. ‘양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에 나오는 여인의 얼굴이 갈라이다. 1934년에 달리는 뉴욕에서 이 그림을 공개했다. 그때 한 기자가 정말로 궁금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하필이면 왜 구운 갈빗대를 부인의 어깨에 걸쳐 놓았냐고 질문했다. 사람과 고기가 나란히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달리는 “그건 구운 갈비가 아니라 생 갈비에요”라고 대답했다. 다시 기자가 물었다. “구운 갈비이건 생 갈비이건, 왜 갈빗대를 부인과 함께 그렸냐고요?” 머뭇거리지 않고 달리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나는 양 갈비를 좋아하고, 내 아내도 좋아해요. 그러니 그 둘을 함께 그리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나요?” 그의 대답을 듣고 다시 그림을 보니, 눈을 감고 음미하는 표정을 짓는 갈라와 생고기의 만남은 뭔가 진하게 피처럼 비릿하게 관능적이다. 구운 고기는 조리된 음식에 틀림없지만, 생고기는 아직 살덩이로서의 느낌이 남아있는 것 같다.

카탈루냐 요리는 초현실적 상상력의 근원

달리는 스테이크를 거의 생고기로 먹었다. 가끔 식욕을 돋우기 위해 뜨끈뜨끈한 황소의 피를 음료 삼아 마셨는데, 이때 그가 남긴 말이 바로 “피는 꿀보다 달다”였다. 달리가 생고기를 먹고 피 음료에 맛 들이기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는 집안에서 들어가지 못하는 금지된 구역이 있었다. 바로 부엌이다. 그러니 부엌은 달리에게 신비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호기심어린 장소이기도 했다. 가끔 하녀들이 시시덕거리는 틈을 타 그는 재빨리 부엌으로 들어가 생고기를 냅다 훔쳐 달아나곤 했다. 그러고는 숨을 헐떡이며 그 꿀맛 같은 피맛에 도취됐다. 황홀감에 뒤이어 죄책감이 밀려왔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건 어린아이의 성적 환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 글은 어린 달리가 부엌을 관음증적인 시각으로 엿보며 쓴 것이다.

“환각을 일으킬 정도로 뜨거운 어느 여름날 정오였다. 나는 반쯤 열린 부엌문으로 손이 붉은 육감적인 여인네들의 종종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네들의 무거운 엉덩이와 거친 머리채를 재빨리 훑어봤다. 정오의 열기, 여인들의 땀 냄새, 흩어진 포도송이, 끓고 있는 기름, 벗겨진 토끼의 겨드랑이 부분 가죽, 마요네즈를 뿌린 게 다리, 콩팥, 카나리아의 높고 떨리는 음,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점심식사를 알리는 전주곡이 됐고,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향기로 엄습해왔다.”

달리가 좋아했던 카탈루냐 요리는 전통을 그대로 고수하는 편이어서 어떤 음식은 14세기 조리법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 카탈루냐 요리에는 카르타고인, 로마인, 무어인, 프랑크족, 서고트족, 그리스인 등 그 땅을 정복했던 각 종족의 요리가 혼합돼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카탈루냐 요리는 더욱 독특한 맛을 자랑하게 됐다.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이 낯선 요소와의 만남을 통해 익숙치 않은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듯, 카탈루냐 요리도 낯선 재료와 이질적인 소스가 결합해 미식가의 구미를 돋운다. 가령 짭짤한 바다가재에 달콤한 초콜릿 소스를 곁들이고, 달팽이를 토끼고기와 함께 요리하는가 하면, 캐러멜 소스에 돼지 족발을 버무리기도 한다. 재료와 맛이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면서, 맛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폭을 한층 더 확장시킨 셈이다. 달리의 초현실적인 상상력은 서로 낯선 재료들을 어우러지게 하는 카탈루냐 요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주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 Comments
abendort 2015.02.23 01:12  
저는 피가 아니라 파 인줄 알앗습니다.예술가 중에는 단단히 미친 사람이 많습니더 그래야 에술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에술가에게 건전버젼을 요구하는게 무리란 생각 듭니다.
fabiano 2015.02.23 13:08  
Salvadore Dali는 당시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참, 특이한 인물이란 생각입니다. 예술이란 평범한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분야이지만 걸출한 예술의 장인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 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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