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銃을 든 그리스도 - 체 게바라

fabiano 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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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코르미에 對 만테나 안드레아』


장 코르미에와 『체 게바라 평전』은 어쩐지 르네상스의 화가 만테나(Mantegna, Andrea1431~1506.9.13)와 그의 그림 『죽은 그리스도』를 상기시킨다. 두 발, 두 손에 선명한 못자국, 왼쪽 흉골께의 창상(創傷).
낮은 앵글로 죽어 누워있는 그리스도를 발치에서 보는 시선에는 신의 아들에게 덧 씌워졌던 중세의 화려한 아우라도, 바로크의 현란한 색채도 감지되지 않는다.
만테나는 유려한 필치로 참혹하게 죽은 사형수의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묘사된 신체는 짧막하게 줄어들어 그대로 눈에 안겨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눈 앞에 날아온 공을 본 것 같은 심리적 충격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만테나의 '단축법'이다.
장 코르미에는 화가 만테나가 즐겨 구사한 '단축법'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긴다.
그의 작업은 그 동안 체 게바라가 가지고 있던 신적 이미지, 혹은 영웅적 아우라를 걷어내는 걷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동안 체 게바라의 턱 밑에서 그를 우러러 봤다.
과장과 전설, 숭배와 추앙 같은 것들은 27.5도 얼짱각도를 유지한채 시거를 피워무는 그의 모습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들려주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에서 유래했다.
코르미에는 단축법을 사용하여 시선을 그의 발바닥 아래로 옮겨 인물 전체의 모습을 조망한다.
이제, 사실 그대로의 인간, 적나라하게 벗겨진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작가는 수 많은 자료를 활용해 게바라를 찬찬히, 그러나 꼼꼼하게 그려나간다.
편지, 일기, 가족, 동료와의 인터뷰, 현장조사, 당시의 정세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끔 한 자료조사까지...그리하여 예리한 눈썰미로 사본을 그러모아 진본의 모양을 만들어낸다.
나만큼 작지만 가장 거대했던 인간 체 게바라는 이제 영웅의 탈을 벗고 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수對체 게바라』

그는 영웅도 아니고 성자도 아니다. 풍요로운 집안의 아들로 평범한 의학도였던 한 남자일 뿐이었다.
단지 그는 세상의 이면을 볼 줄 알았고 고뇌하도록 양심을 방목 할 줄 알았다.
그 스스로가 심한 천식을 앓았기 때문에 아픔의 서러움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의학도로서의 본성 때문에 치유자로서 더 넓은 길을 헤메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 우연이 없듯,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체 게바라가 된 것은 필연이었으리라.
하지만 체와 에르네스토는 다른 인물이 아니다. 휴머니스트로서 인간을 구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가 가족과 친구에게 쓴 많은 편지들은 다분히 감성적인 그의 모습을 투영한다.
그가 총을 든 것은, 그란마 호의 여든 두 명을 이끌고 한 국가의 정권을 바꾸어 놓은 역사는 그가 세상에 부딪힌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에 대한 세상의 도전이었다고 보아야 옳은 것일 게다.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쿠바의 2인자로 장관과 은행장등 많은 직책을 역임하며 좌충우돌하던 체 게바라.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순결한 혁명의 칼날을 조준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혁명의 동지이자 쿠바의 1인자인 피델 카스트로에게 하나의 편지를 띄운다.
그리고 달리는 기차의 배경처럼 부와 명예, 사랑하는 가족들까지도 버려둔 채 볼리비아의 혁명을 위해 사지로 떠난다.
사회주의와, 쿠바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한 편지의 마지막 문단은 다음과 같다.

“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쿠바에 대한 모든 책임을 벗고, 오직 이상형의 쿠바만을 기억하겠네. 그래서 다른 하늘 아래 내 최후의 시간이 도래한다면, 내 마지막 생각은 쿠바 인민들에게, 특히 자네에게 향할걸세. 자네의 가르침과 자네의 모범에 감사하네. 내 행동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충실하게 간직하려 노력하겠네. 나는 늘 우리 혁명의 대외관계에 집착하곤 했지.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언제나 쿠바 혁명가의 책임을 완수할 것이며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네.
나는 나의 아이들과 아내에게 어떤 물질도 남겨주지 않을 터,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네.
왜냐하면 그들이 먹고, 교육받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줄 것이기 때문일세.”

만테나 그림속의 예수도 이미 2000년 전에 이와 비슷한 행적을 걷는다. 탄생과 동시에 국가에 의해 쫒기는 몸이 된 예수는 무려 33년을 도망자로 살았다. 총만 들지 않았지 그의 생각과 사상은 게릴라와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고위 공무원과 고위 종교쟁이들의 반대로만 하라고 가르칠 정도였으니까
저 유명한 성전정화사건 이후 그의 쫒김은 더욱 본격적인 것이 된다. 예수의 결말은 체의 그것과 흡사하다.
자신의 죽을 운명을 제자들에게 알리고 노새 한마리에 의지해 예루살렘의 성으로 들어간다.
윌리엄 버클리가 멋지게 옹호하듯 그것이 왕권을 주장한 것이었는지, 버나드 쇼의 분석대로 또라이 짓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주인을 갈음하는 하나의 혁명이었으며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비롯한 행위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영웅들의 블루스』

당시에도, 또 서거 이후에도 예수와 체 게바라는 위험한 존재였다.
권력은 위험한 물질을 발견하면 대체로 그것을 제거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체 게바라의 이야기는 1960년에 금지 당했다. 아무도 공공연히 그의 이야기를 열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몰래 그의 이름을 속삭였고 속삭임은 함성이 되었다. 체 게바라의 체! 체! 는 호치민을 가르키는 호! 호! 와 더불어 68 학생운동 당시 제 3세계 민중에게 보내는 연대의 구호였다.
예수의 혁명은 무려 그의 사후 392년간 금지당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말 하는 속삭임이 함성이 되었을 때 저 위대한 로마제국마저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권력은 그들을 당해 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을 다른 방식으로 소거시키기로 했다. 마치 악성 종양처럼 그들의 이미지를 마구 복제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모더니즘 시대의 복제품은 오히려 원본의 위계를 뛰어넘는다.
보라, 오늘날 그들의 얼굴은 세상의 곳곳에 심지어 옷과 상품들에 인쇄되어 소비된다.
그래서 그들은 더 친숙해 졌으나 이와 반대로 오늘날 젊은이들의 가슴팍에서 흔들리는 체의 얼굴과 교회 간판에 나부끼는 예수의 얼굴은 더 이상 불온한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제 나귀를 탄 세상의 왕과 게릴라 영웅은 상품이 되어 진열대 위에서 백치적 미소를 짓는다.
권력은 블루스를 추는 그들을 더 이상 금지하지 않는다.
수전 손택과, 장 코르미에. 전사 그리스도, 총을 든 예수. 이런 구문들로 그들을 뭉뚱그려 애써 공통점을 뽑아내던 현자들의 말장난은 어쩌면 위험없는 시대에 허무를 잊기 위한 유희가 아니었을까...

다시『체 게바라 평전』부록 페이지를 편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그의 마지막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총살되어 침상에 길게 누워있는 흑발의 남자.
그에게 일국의 2인자였던 자로서의 위엄은 없다.
굳게 다물어진 입, 힘 없이 늘어진 다리.. 기껏 헝클어진 머리칼에나 지친 전사의 이미지가 머물고 있을 뿐 그의 모습은 초라할 만큼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

그는.. 아직도 눈을 감지 않은 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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