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에 오르다 (2)
일전에 4월 5일자, 세상사는 이야기에 <비봉산에 오르다>의 제목으로 포스팅 했는데 이번에는
비봉산 서쪽의 모리(毛里) 동네에서 출발하여 등정했습니다.
길에서 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산인데 정상으로 갈수록 경사가 심하고 바위가 많습니다.
눈 앞에 마주 보는 건너에 갈기산이 있으며 강건너 천년사찰 영국사가 있는 천태산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또한 강건너에 호탄리라고 불리우는 동네 뒷산의 독수밧골에 본인의 장인, 장모님의 영원한 안식처가 한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약 3년 전에 큰 산불이 난 쓰라린 상흔이 역력히 보이는데 다소 마음이 언짢기도 합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 어느 하루, 우중충한 날씨이기는 하나 산행엔 좋은 날이었습니다.
고독한 사나이의 나홀로 산행이었지만 멀리 보이는 山의 풍광에 호연지기를 느꼈습니다.
- 비봉산(飛鳳山)의 유래
영동에서 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양산면(陽山面) 가곡리(柯谷里)는 이른바, 각골 이씨로 통하는 인천(仁川) 이씨들의 집단 부락인데
이 가곡리가 백 수십 호나 되는 큰 마을이 오랜 옛날부터 부촌으로 살림살이에 걱정이 없고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켜 출세한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애초에 이 각골에 터를 잡은 조상의 은덕이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도 터를 잘잡은 덕택이라 전해 온다.
오랜 옛날부터 강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양산고을은 신라와 백제의 싸움터였다.
벌판이 넓고 비옥한데다, 금강 상류의 아름다운 경치가 예부터 손 꼽혀 온 양산은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
안동(安東)의 하회(下回)와 함께 제1급의 명당으로 소개될 만큼 조건이 두루 갖춰진 고장이다.
각골 이씨 선조가 가곡리에 터를 잡기 위해 이곳에 와 사방을 둘러 보고 있을 때 한 쌍의 봉황새가 바로 마을 뒷산으로 날아 올라가니
각골 이씨 선조는 '옳다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봉황은 길한 새라 하지 않는가?
기름진 논밭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 그리고 뛰어난 인근의 산세에 이씨 선조는 더 주저하지 않았다.
각골 이씨 선조가 가곡리에 터를 잡고 봉황이 날던 산을 비봉산(飛鳳山)이라 이름을 붙였으니 그산이 바로 오늘의 가곡리 뒷산 비봉산(482m)이다.
가운데 보이는 마을이 학산면 소재지이다.
영동군 테마 마을로 선정된 금강모치 마을. 영동군 학산면 모리(지내리).
호탄리 마을. 뒷편으로 영국사가 있는 천태산이다.
갈기산(595m).
茂林知好樂齋, 조블 茂林子의 고향마을. ( ↑ )
오른쪽의 호탄교를 건너서 직진하면 옥천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 501 지방도로)
해발 595m의 갈기산.
江의 왼쪽으로 나있는 길이 금산 방면으로 가는 길이다. ( #68 도로)
江건너 마을이 호탄리이며 아래 동네가 곡천마을이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 전경.
江건너 틸 마을. 양산면 수두리.
흑염소를 방목했다는데.... 배설물은 볼 수 있었다.
비봉산 서쪽 봉우리.
江건너 보이는 천태산 기슭. 약 3년전의 산불로 처참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올라가는 산 중턱에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방도로에서 본 비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