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기념우표(2001년)
fabiano
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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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5 10:03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이 시작된 후, 만반의 준비를 끝낸 북한국은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한 달여 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붙이는 등 신속하게 전세를 장악해 나갔다.
낙동강 전선으로 고착화된 전장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한국군은 서울과 원산, 평양까지 탈환하였고 낙동강까지 파죽지세로 밀어 붙이며 곧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장기화될 조짐이 나타났으며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 만반의 준비를 끝낸 북한국은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한 달여 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붙이는 등 신속하게 전세를 장악해 나갔다.
낙동강 전선으로 고착화된 전장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한국군은 서울과 원산, 평양까지 탈환하였고 낙동강까지 파죽지세로 밀어 붙이며 곧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장기화될 조짐이 나타났으며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지루한 전쟁 속에 1953년 7월 27일에 비로소 휴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3년 10개월에 걸친 승리 없는 전쟁은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고 막을 내렸다.
냉전체제가 낳은 동일민족간의 전쟁이었던 6.25는 학살 및 사망으로 37만여 명, 부상자 23만여 명, 납치 및 행방불명자 38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250여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되었다.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마무리된 한국전쟁은 지금까지도 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대치상황을 계속하고 있다.
민족의 비극으로 숨져간 모든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