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蘭溪) 박연(朴堧)의 묘소에 가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515번지.
조선 왕조 문신(文臣)이자 악성(樂聖)인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난계(蘭溪) 박연(朴堧 1378∼1458 (고려 우왕 4∼조선 세조 4).
세종을 도와 음악을 정비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박연은 악률에 정통하여 세종 7년(1425) 아악의 율조와 악기의 그림,
악보를 같이 실은 『악서』를 편찬하였고, 1427에는 편경 12매를 만들어 자작한 12율관을 따라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는 피리의 일종인 적(笛)과 거문고, 비파의 연주에 뛰어났으며 조정의 조회 때 아악을 연주하도록 하는 등 국악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시문집 <난계유고>, <가훈(家訓)>이 있다.
[난계유고(蘭溪遺稿)]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음악가인 박연(1378∼1458)의 시문집.
활자본으로 1권 1책이다. 초간본은 1822년(순조 22)에 박연의 16대 손인 박경하가 펴냈으며, 발문은 김조순과 김노경이 썼다.
내용은 시·소·잡저이고 부록으로 시장(경상 또는 유학이 정통하고 언행이 바른 선비들의 시호를 정할 경우 의논하여 임금에게
아뢸 때, 그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적은 글)·신도비명(임금이나 직위가 높은 관리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사람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에 새긴 글) 등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39편의 상소문은 거의가 악기·음률·악제 등 음악에 대한 것들로 <세종실록>에서 뽑아 낸 것으로 보인다.
중간본은 1903년(광무 7)에 후손인 박심학이 수집하여 편찬하였다. 여기에는 초간본의 발문과 함께 김학진과 송태헌의 발문이
실려 있으며, 발문 이외의 내용은 초간본과 같다.
조선 전기 세종 때의 음악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예절 연구에도 훌륭한 자료가 된다.
규장각 도서,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난계사에서 산길을 따라 박연 묘소까지 약 800m가 된다.